가을이다.
엄청 덥고 길었던 여름이 겨우 물러났다.
갑자기 쌀쌀함이 느껴지는 것이 가을이 무척 짧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가을인데, 슬프다.
언제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몰아닥칠지 모르니 되도록 맑고 청명한 가을 날씨를 즐겨야겠다 다짐한다.
남편이 일주일에 하루 쉬는 평일 오후.
두 아들이 학교와 유치원을 다녀온 후 어디를 갈까 생각한다.
첫째 아들은 실내에서 뛰어놀 수 있는 곳을 가고 싶어 한다.
아마 한 달 넘게 가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때마다 두 아들의 의견이 엇갈려 다른 곳으로 갔다.
그래서 남편은 이번엔 첫째가 원하는 곳으로 가자고 하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실내야 언제든 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가을 날씨는 짧기에 되도록 즐겼으면 했다.
내 말에 우리 집 남자들이 동의한다.
이런 날씨는 밖에서 즐기자고!
원터치 텐트, 캠핑용 의자를 챙겨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어서 우리가 그 공간을 차지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텐트를 치고 각자의 방식으로 즐긴다.
남편은 피곤하다며 의자 두 개를 이용해 상체는 기대고 발은 올려놓은 채로 눈을 감고 쉰다.
두 아들은 갈매기 밥을 주고 싶다고 노래 부른다.
갈매기는 갈매기가 알아서 밥을 먹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그래도 주고 싶단다.
과자가 갈매기들에게 좋지 않을 것 같다고 하자, 친환경 갈매기 먹이가 나와서 그것을 사면 된다고 얘기한다.
엥? 친환경 갈매기 먹이? 그런 게 있다고?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근처 편의점으로 향한다.
진짜 있다! 종이봉투에 조금 담겨있는 것이 3,000원이다.
너무 비싼 것 아닌가? 생각하며 하나만 사서 둘이 같이 주라고 하는데 표정이 영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두 개를 산다. 다른 것은 사지 않는다는 조건을 단 채.
두 아들 신났다. 처음엔 눈에 띄지 않던 갈매기들이었는데 어느새 한 마리 한 마리 늘어나고 있다.
텐트 안에 앉아서 보고 있으니 먹이가 대멸치 같다.
며칠 전에 대멸치 1.5kg을 3시간에 걸쳐 손질했는데, 집에 있는 것을 챙겨 와도 될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몰랐으니 어쩔 수 없지. 그걸 챙겨 온다는 것도 조금은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두 아들은 신나서 갈매기를 부르며 먹이를 던져 준다.
왜 저게 저렇게 신날까 잘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이 챙겨주는 것만 먹다가 누군가를 챙겨주는 것이 즐거운 것인가 잠깐 생각해 본다.
나는 읽을 책을 꺼내든다.
그런데 하늘과 강이 내 눈길을 더 사로잡는다.
책을 조금 읽었다가 경치도 바라본다.
이것을 반복하다 보니 갑자기 졸음이 몰려온다.
나도 모르게 텐트 안에 누워 스르르 잠들었다.
자면서도 들린다. 아이들이 아빠와 술래잡기하는 소리, 킥보드 타는 소리.
세 남자의 소리를 자장가로 삼으며 20분가량 잠들었나 보다.
텐트 안에서 자는 것이 편하지 않지만 짧은 시간에 꿀잠을 잘 수 있어서 좋다.
내가 일어나니 남편이 졸린 기세다.
남편더러 텐트 안에서 자게 하고 두 아들과 술래잡기를 한다.
왜 맨날 잡으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만큼의 체력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두 아들은 휙휙 날아다니고.
요즘엔 해가 빨리 진다. 그러면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기도 하고.
6시 조금 넘어서 텐트를 정리한다.
두 아들은 조금 더 있고 싶어 하지만 저녁도 먹어야 해서 일어난다.
좋은 가을 날씨에 각자의 방식대로, 또 함께 즐긴 하루였다.
이런 가을 날씨가 조금은 더 이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