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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laus Jan 14. 2022

<여행자>

진희의 여행길

어린 진희(김새론)는 아빠(설경구)로부터 보육원에 남겨진다. 쉽게 말해 버려지는 것이다. 처음에 진희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빠는 내일이면 다시 돌아와 여행에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빠는 돌아오지 않고, 여행을 같이 가자는 약속은 거짓말임을 어림 풋이 깨닫게 된다. 진희는 왜 아빠가 자신을 버렸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문성근)에게 자기 탓이라고 울먹인다. 하지만 모든 이별이 그렇듯이, 진희는 삶을 나아간다. 처음에 적대적이었던 숙희(박도연)와도 친해져 케이크도 나누어 먹는다. 그렇게 진희의 삶은 보육원 내에서도 계속되는 것이다.


진희는 자기 탓이라고 한다. 아빠가 자신을 떠난 까닭이.


보육원은 임시적인 거처, 일시적인 공간이다. 그곳에 들어온 이는 언젠가 나가게 된다. 운 좋으면 양부모로부터 간택이 되거나, 운이 좋지 않으면 예신(고아성)처럼 식모살이를 하거나, 어쨌든 보육원에 들어온 모두는 그곳을 나가게 된다. 그러니까 보육원에서 이별은 일상인 것이다. 진희는 또 다른, 그러나 사실 동일한 이별을 맞이한다. 같이 미국에 가자는 숙희는 혼자 떠난다. 미안한 마음에 숙희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지만, 진희에 비할 정도의 아픔은 아니다. 진희는 영혼이 텅 빈 듯한 눈동자로 노래를 부른다. 


이별이 일상인 이 잔인한 공간.


진희는 분노한다. 다른 아이의 인형을 빼앗아 갈가리 찢어버린다. 그 인형은 아빠도, 진희도 아닐 것이다. 인생의 여행길이 제 뜻대로 걸어지지 않는다는, 그러한 세상과 운명에 대한 원망일 것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는 울부짖는다. 하지만 예수는 포도주 잔을 받아들인다. 진희도 마찬가지의 심정이었을까? 원망은 체념으로 바뀐다. 그리하여 진희는 작은 새를 묻던 그 손으로 자기 자신을 흙에 묻는다.


이별도, 죽음도 모르는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흙으로 자신을 덮는 것이었다.


작은 새는 흙으로 돌아갔으나 작은 진희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흙을 털고 다시 일어난다. 여기에 예수의 부활을 떠올리면 과한 몰입일까? 여하튼 진희는 다시 삶을 살아보려 결심한다. 그녀는 깨닫는다. 이별은 괴로운 것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인생의 여행길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이제 진희에게 이별의 고통은 서서히 잊혀진다. 생채기는 아물고 흉터로 남을 뿐이다. 조금 흉하면 어떠랴. 더 이상 아프지만 않으면 된 것이지. 


다시 그녀는 홀로 여행길에 떠난다. 씩씩하게.


“당신은 모르실 거야. 얼마나 사랑하는지.” 눈앞의 아버지에게 불렀던 이 노래를, 이제 진희는 마음속의 아버지에게 부른다. 그래서 그런지 이전에 명랑했던 노랫가락은 이제 퍽 구슬프다. 하지만 진희는 더 이상 슬퍼 보이지 않는다. 여유도 생겼다. 양부모 사진을 보고는 너무 늙었다는 투정을 부리는데, 그만큼 진희가 삶에 의욕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와 마찬가지로 진희는 보육원을 떠난다. 또 이별이다. 하지만 진희는 묵묵히 그녀의 여행길로 걸어간다. 씩씩하게. 출국 수속을 밟고, 그녀는 혼자 비행기를 탄다. 머나먼 프랑스로. 잠깐 꿈도 꾸었다. 아버지가 나왔는데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넓은 등이 참 따뜻할 뿐이다. 


다행히도 양부모가 공항에 마중을 나와있다고 한다. 정말로 다행이다. 이제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진희가 행복하길. 정말로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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