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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laus Mar 02. 2022

<더 배트맨>

이 영화는 노잼이 아니다.


 어렵게 말할 것이 없다. 좋은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1) 재밌거나 (2) 아름답거나. 종종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명작 영화가 있기 마련이지만 대개 좋은 영화는 둘 중 하나만을 만족하고 다른 하나는 다소 소홀히 다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맷 리브스 감독의 영화 <더 배트맨>은 좋은 영화가 아니다. 재미도 예술성도 없기 때문이다. 놀란의 배트맨 3부작과 비교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일 듯하고, 그나마 DC 유니버스 영화의 배트맨(벤 애플랙 역)이 나오는 장면 정도의 재미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선보이는 비 내리고 어둠 칙칙한 고담시의 풍경도 딱히 새로울 것은 없다. 이미 <씬 시티>에서 다, 그리고 더 잘했으니 말이다.

 

이 글에서 나는 이 영화의 미학적 성취 혹은 실패를 다루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이 영화가 왜 노잼인가에 대한 이유이다. 오해를 사전에 방지하자면 이 영화는 꽤나 재미있는 영화다.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수준이고, 나도 그러하였다. 다만 3시간의 러닝타임 내내 나를 사로잡았던 의문은 ‘왜 이 정도밖에 재미가 없는 것이지?’였고, 이 글은 이에 대한 대답일 뿐이다. 


(1)   “야!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그렇게 말해버리면 어떡해?”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소위 ‘노잼’인 친구 말이다. 이런 친구들에게 무언가 재미난 일이 생겼거나 웃긴 이야기를 들었다 하더라도 기대하지 말자. 다 듣고 난 후에 짜증 섞인 이런 말이 날아올 테니. “야!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그렇게 말해버리면 어떡해?” 영화 <더 배트맨>은 사실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에 있어서 확실히 실패한다.


(2)   “형이 거기서 왜 나와?” 

영화 <데드풀 2>에서 브래드 피트가 깜짝 카메오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빵형이 거기서 왜 나와?”가 저절로 떠올라진다. 뜬금없긴 한데 비판받을 지점은 아니다. 왜냐하면 전체적으로 가벼운 영화 톤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캐스팅이기에 관객으로 하여금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즉, 영화 상의 어떤 설정 혹은 장면은 항상 그 영화의 톤, 주제의식, 이야기 전개, 연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어울려야만 하는 것이다. 반대로, 영화 <이터널즈>를 생각해보자. “섹스신이 거기서 왜 나와?” 뜬금없기 때문에 비판을 받을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터널즈가 지구인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 서로 사랑에 빠질 수도 있으나 굳이 섹스까지 할 영화적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의 비판이 이 영화 군데군데 적용된다.


(3)   “쫙 쫙 쫙 쫙” (페이지 넘기는 소리)

만화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을 보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천천히 추리를 따라가며 만화 페이지를 넘기거나 아니면 추리 부분을 건너뛰고 페이지를 빠르게 넘겨 범인이 누군지 확인하는 거이다. <더 배트맨>은 기본적으로 탐정 영화다. 하지만 추리 부분은 독자가 아예 손을 댈 수가 없다. 왜냐하면 배트맨이 수수께끼를 바로바로 맞추기 때문이다. 힘세고 부자일 뿐만이 아니라 퀴즈에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니, 박탈감이 심한 관객들은 그냥 빨리 범인이 잡히기를 러닝터임 내내 기대하는 것이다.


(4)   “쟤는 근데 왜 저런다니?”

살다 보면 이럴 때가 많다. ‘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저러는 것일까?’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는 반드시 그에 따른 충족 이유율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러한 의아스러움을 갖지 않는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고담시를 지키는 영웅 배트맨의 이야기이다. “왜 배트맨은 고담시를 위해 저렇게 고생하는 것일까?” 이는 배트맨에게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질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기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 제시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자경단 생활을 하고 있던 배트맨만이 처음부터 제시될 뿐인데,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범인을 추적하는 배트맨의 행적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5)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

모 축구선수가 싸이월드에 남긴 말이다. 인신공격의 오류와 피장파장의 오류가 혼합된 형태라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내가 축구선수만큼 뛰지 못한다는 사실이 축구선수의 무능함을 지적할 자격을 박탈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히치콕이나 큐브릭 정도가 되어야 영화를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쯤에서 영화 <더 배트맨>의 스토리를 간단히 요약해보자.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하는 젊은 브루스 웨인은 꽤 괜찮다. '억만장자이자 바람둥이인 브루스 웨인'과 같은 가짜 자아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은 특히나 흥미롭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자경단 활동을 시작한 지 2년 차인 배트맨(로버트 패틴슨)이다. 확실히 강하긴 강한데, 아직 히어로 짬이 덜 찼기 때문인지 무언가 어설프다. 예를 들어, 목에 폭탄이 부착된 콜슨 검사(피터 사스가드) 보고 흥분하여 다그치는 장면이 그러하다. 결국 눈앞에서 폭탄이 터져버린 바람에 배트맨은 정신을 잃는다. 아니, 폭탄이 눈앞에서 터지기 5초도 안 남았는데 대비를 안 한다고? 배트맨인데? 뭐, 넘어가도록 하자. 여하튼, 영화는 미성숙한 배트맨이 대면하는 연쇄살인 사건을 핵심으로 한다. 범행 타깃은 고담시의 고위 공직자들이고, 범행 장소에는 늘 알쏭달쏭한 수수께끼가 있다. 흥미롭게도 그 수수께끼는 배트맨을 위해 남겨진 것이다. 배트맨은 수수께끼를 풀고 범행 단서를 찾아 나서면서 조금씩 

이 사건의 이면을 알게 된다. 알고 보니 범죄의 희생자들인 고담시 고위 공직자들은 겉으로는 정의로운 척하나 하나같이 모두 부패한 자들로서 살해당해 마땅한 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범행을 저지른 정체불명의 ‘리들러(폴 다노)’라는 자에 의해 이러한 진실이 모두에게 폭로되자 고담시 여론은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배트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도 다른 고담 시민처럼 어쩌면 리들러의 행적이 정의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만약 그렇다면 리들러를 쫓는 배트맨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푸념을 알프레드(앤디 서키스)에게 늘어놓는다. 하지만 알프레드는 흔들리는 브루스 웨인을 격려한다. “도련님, 이 고담시는 돌아가신 아버님의 희망이자 모든 것입니다. 그는 결코 고담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만 더 헤아려보는 것이 어떨까요?” 때마침 브루스 웨인은 리들러에게 희생당한 전임 고담 시장의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여기서 그는 슬픔에 잠긴 한 어린아이를 보게 된다. 바로 전임 시장의 아들이다. 브루스 웨인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바로 그에게서 어린 시절 자신이 겪은 비극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다. ‘제 아무리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라 할 지라도 이렇게 잔인하게 살해당할 권리는 없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 누구에게도 가족은 있고, 가족은 모두에게 소중하다. 그러하기에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 법이다.’ 


우리가 영화로 만났던 배트맨과 사뭇 다른 이미지와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것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이제 각성한 배트맨은 여론의 따스운 조롱에도 묵묵히 사건을 추적한다. 그리고 마침내 살해당한 모든 이들을 하나로 엮는 한 인물을 알아낸다. 그는 고담시의 암흑가를 지배하는 팔코네(존 터투로), 무시무시한 마피아 두목이다. 사실 팔코네는 지금까지 희생당한 모든 이들의 뒤를 몰래 봐주고 있었던 것이다. 펭귄맨(콜린 파렐)은 존재하지 않으며, 캣우먼(조 크라비츠)은 팔코네의 딸이 아니지만 자기 어머니를 죽인 자이기에 배트맨 몰래 살해하고자 한다. 그러나 배트맨은 그 특유의 불살 정신을 설교하며 그녀를 말린다. 물론 이 둘은 키스하지 않는다. 배트맨은 다음 희생자를 막기 위해 팔코네를 추궁한다. “네가 몰래 뒤를 봐준 모든 이가 살해당했어. 말해! 또 누구의 뒤를 봐주었지?” 하지만 팔코네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고담시에서 착한 얼굴을 하고 다니는 높은 사람들. 전부 다. 이봐, 애쓰는 것은 알겠는데, 이 도시는 이미 오래전부터 희망이 없어. 고담시는 타락한 그 빌어먹을 바빌론이라고!” “그렇지 않아. 좋은 사람도 많이 있었어.” “누구? 뭐, 토마스 웨인 같은 이들?” “……그래.” 그러자 팔코네는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그때, 갑자기 전광판으로 뉴스 속보가 뜬다. 다행히 팔코네는 저격총에 맞지 않는다. 리들러는 한 동영상을 보내왔다. 여기서 그는 다음 타깃으로 다름 아닌 브루스 웨인을 지목하였으며, 지금쯤 아마 죽었을 것이라고 한다. 리들러는 그 이유를 밝힌다. 왜냐하면 선한 자선가로 알려진 토마스 웨인은 사실 뒤에서 팔코네와 결탁해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려는 기자를 청부 살해한 잔인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브루스 웨인은 더욱 검게 보이기 위해 눈 주변을 검게 칠하는데,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설정이다.


브루스 웨인은 충격을 받는다. 그는 자신 대신 희생당한 알프레드가 있는 병실에서 알프레드를 기다린다. 마침내 눈이 떠진 알프레드를 향해 아버지에 대한 리들러의 폭로가 사실이냐고 묻는다. 알프레드는 결국 리들러의 폭로가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충격을 받은 브루스 웨인은 지금까지 고담시를 위해 활동한 배트맨 생활이 다 헛짓거리였다고 울부짖는다. 그때 때마침 뉴스 속보로 리들러로 추정되는 사내가 갑자기 경찰에게 자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고 리들러는 다음 범행 대상을 알려줄 테니 배트맨과의 대면을 요구한다. 절대로 둘이 대화하다가 우연히 다음 범행이 있다는 것을 배트맨이 알게되지 않는다. 리들러와 대면한 배트맨은 혼란스러운 분노를 그에게 내뱉는다. “왜 아버지의 죄를 아들(브루스 웨인)에게 전가하지? 이게 너의 방식인가?” “전가라고? 하하하. 재미있군. 이봐, 브루스 웨인 그도 공범자야. 왜냐하면 아버지의 그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고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 이 도시에서, 아무것도.” 멈칫한 배트맨은 다음 범행 대상을 빨리 알려 달라고 한다. 그러나 리들러는 또다시 수수께끼를 낼 뿐이다. 절대로 우연한 기회에 둑방 근처에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는 않는다. 다만 잘은 모르겠으나,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가 고안했던 딜레마 상황을 비슷하게 리들러가 제시할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배트맨은 올바르다고 생각한 판단을 내리고, 결국 리들러의 음모로부터 고담 시민 전체를 구출해낸다. 이렇게 배트맨은 고담 시민으로부터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배트맨은 찜찜함을 감출 수 없다. 그의 표정에는 자신의 자경단 임무에 대한 고뇌와 불확실성이 서려있다. 요즘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력이 부쩍 올랐으니 잘 연기를 하지 않을까 싶다. 러닝타임이 3시간이나 지났으니 이제 이 정도로 하고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쿨하게 쿠키 영상은 넣지 않는다. 자존심 상하게 마블 영화를 따라 한다는 느낌을 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상 답답해서 내가 뛰어보았다.


(6)   “아닌데? 궁서체가 아니라 볼드체인데?”

언젠가 카페에서 연인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다. 둘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왜 그리 진지하게 말하냐는 짜증 혹은 두려움에 상대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아닌데? 나 지금 궁서체가 아니라 볼드체야. 진지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강조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이 글도 마찬가지다. 진지하게 비판하기보다는 이 영화에서 저지른 실책을 강조해서 말하고자 한 것이다. 글쎄, 적고 보니 결국 같은 말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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