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을'이었던 나에게 주는 탈옥 기회
"가스 라이팅의 오남용에 대하여"
가스 라이팅을 사용하는 가해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첫 번째는 지속성이고, 두 번째는 예속화이다. 가스 라이팅이라는 이번 담론을 다루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당신 주위 사람이 저지르고, 겪었던 기분 나쁜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모두 가스 라이팅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솔직히 얘기해서 "나 가스 라이팅 당했다니까"라고 얘기하는 사람 중 정말 가스 라이팅을 당했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은 3할도 안된다고 본다.
뭐 어쨌든, 가스 라이팅이든 가스 라이팅이라고 오해한 '무언가'를 당했든 당신이 올바른 정신과 사고로 무장되어 있어 상대방의 의도대로 예속되지 않았다면 그 행위는 '실패'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흔히들 가스 라이팅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행위로 생각하게 되는데, 여기서 강자와 약자는 '심리적' 강자와 약자를 뜻한다. '육체적'인 강자에게 피해 입은 무언가를 "가스 라이팅 당했다"라고 말한다면 가스 라이팅이 본디 가지는 뉘앙스에서는 다소 벗어난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시로, 누군가에게 논리적인 말로 '설득' 혹은 '타협' 당한 것을 가스 라이팅이라고 말한다면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상대방의 논박과 언변에 설득당한 것은 가스 라이팅도 아니고 잘못도 아닌 그냥 그것 자체만으로 끝인 것이다. 당신의 사고가 '선택'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가스 라이팅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닐 것이라 단언한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가스 라이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다루는 글을 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커뮤니티를 필두로 일상에서까지 해당 단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고 그것을 공유한다는 것은 축복과도 같은 일이지만, 내가 본 가스 라이팅 관련 경험담은 80% 이상이 가스 라이팅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면서 남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군가는 남자 친구에게 회사에서 상사에게 털린 얘기를 했더니 남자 친구가 편들어주지 않고 상사가 왜 화났는지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을 보고 가스 라이팅이라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같이 헬스를 하는 친구에게 야식 사진을 보내주자 친구가 "우리 야식 줄이기로 했는데 운동한 거 아까운데 조금만 참자. 살 빼는 건 어려운데 찌는 건 금방이잖아"라는 말을 했다고 친구에게 가스 라이팅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이것 말고도 수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굳이 모두 다루지는 않겠다. 시간이 된다면 커뮤니티나 주위 사람들이 가스 라이팅에 대해서 얘기할 때 잘 들어보기를.
"가스 라이팅을 남발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
보통 가스 라이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스 라이팅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특징을 지닌다. 첫 번째는 책임을 회피하는 성향이 짙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피해의식을 지닌다는 것이다. 보통 위 특징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에서는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가스 라이팅을 언급하며 주장하며 대화 상대방을 가해자로 만들고, 자신의 잘못이나 다른 이해관계는 모두 묻어둔 채 본인을 결백한 사람으로 포장하려고 한다.
가스 라이팅을 오남용 하는 익명의 사람들에게 가스 라이팅의 어원과 개념을 설명해주고 왜 가스 라이팅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냐 물었을 때, "제가 솔직히 잘못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상대방이 제 기분을 상하게 한 부분도 분명히 있으니 그 사람을 못된 사람으로 만들어 질타받게 만들고 싶었어요. 제 편을 들어주는 제삼자들이 생긴다는 게 마음 편해지기도 했고요"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일부 인터뷰를 가지고 가스 라이팅 피해를 호소하는 모든 이들을 대변시키는 것만큼 일반화의 오류도 없겠지만, 가스 라이팅이라는 단어의 오남용이 잦은 오늘날 우리가 참고하기 좋은 사례라고 생각하여 들고 왔다. 물론 악의 없이 본인의 상황을 형용할 단어가 별로 없어 이젠 익숙해져 버린 '가스 라이팅'이라는 워딩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럼 진짜 가스 라이팅을 당했을 때 벗어나려면 어떡해야 돼요?"
첫 번째는 자존감을 키우는 것이다. Gaslighting은 심리적 약자가 스스로 감정과 사고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과정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있어야 사전에 가스 라이팅을 차단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자존감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 합리적이며, 옳은 판단이라고 스스로 생각이 들어야만 한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YES"를 강요하더라도, "NO"라고 단언할 수 있는 '깡' 말이다.
두 번째는 인생의 조력자를 곁에 두는 것이다. 실제로 가스 라이팅을 당하는 사례를 보면 말처럼 쉽게 극복 가능성이 보이지는 않는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심리적 강자와 일대일로 붙으면, 이미 시작부터 상대방의 말에 위축되어있어 가스 라이팅을 당하기 딱 좋은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평소 주위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객관적인 조언을 구해야 한다. 운이 없어 그런 사람이 주위에 없다면 정신과를 찾아가는 것도 혜안이라고 볼 수 있다. 정신병원은 결국 병원이기에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곳이지 당신을 가두고 격리하는 곳이 아니다. 오늘날 정신질환은 감기와도 같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편견을 버리자
세 번째는 가해자와의 거리두기이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진행했던 것처럼 가스 라이팅을 시도하는 자를 코로나라고 생각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동거인이나 가족, 군대 선임이라면 거리두기가 쉽지 않겠지만 친구, 지인 등이라면 꽤 괜찮은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쉽게 말해 여러분을 괴롭히는 그 사람을 피하라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직면하라는 말도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식이다. 불이 난 집에서 살고 싶다면 유리창을 깨고 몸을 던져야 하는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네 번째는 비판적인 사고(Critical Thinking)를 하는 것이다. 마마보이, 예스맨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부모가 하는 말을 무조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백이면 백 누군가가 하라는 대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생각할 것이다. 비판적인 사고를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맞는 말에도 무조건 시도 때도 없이 "NO"를 외치라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모든 현상과 주장에 대해 "정말 정답인가?" "유일한 진리인가?"라고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살면 머리 아파서 어떻게 살아요?"라고 생각한다면 매우 수동적인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가스 라이팅이라는 오남용 하든 말든 내가 누군가에게 나무랄 자격은 없다. 하지만 가스 라이팅을 떠나 그 어떠한 공부를 하든 그 과정을 통해 얻은 지식을 입 밖으로 뱉을 때에는 억울하게 피해 입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요즘처럼 정보가 쉽게 전달되고 와전되는 세상에서 남들이 다 사용하는 말이라고 나도 막 쓰다 보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비웃음 당하기 쉽고, 가스 라이팅을 하지도 않은 사람이 가해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가스 라이팅은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나 전문가들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꽤 무거운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