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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휴업 Nov 11. 2023

2023/11/11

짧은 글 연습

  친구 녀석이 갤럭시를 쓰는 것이 힙한 건지 아이폰을 쓰는 것이 힙한 건지 물어왔다. 거의 20년 만에 만나서 한다는 말이 고작 이딴 거였다.

  몰라. 아이폰이 힙한 거 아니야? 젊은 사람들이 많이 쓰잖아.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야, 선배. 서양미술 쪽에서 일하면서 갤럭시 워치차고 갤럭시 패드 들고 다니는 건 나 밖에 없더라니깐. 그쪽은 개나 소나 아이폰에 맥북에 에어팟 맥스야. 애플 점유율이 올라가고 있는 게 팍팍 느껴진다니깐. 이럴 때 혼자 떡하니 갤럭시 꺼내 놓으면 곤조 있어 보이고 얼마나 좋냐고. 이 바닥은 결국 곤조가 생명이.
  난 그런 거 잘 몰라. 이걸 왜 묻는 거야?
  그냥 재밌잖아. 선배 같이 마이웨이인 사람에게도 한 번 물어보고 싶었어. 요즘 말이 많이 나오는 주제이기도 하고.

  넌 여전하구나.

  그러니깐 이 친구는 기아 타이거즈의 팬이고 갤럭시 워치를 차고 있고 서양화를 공부한답시고 프랑스로 유학을 다녀왔고 키가 크고 얼굴이 작고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고 라고아라는 듣도보도 못한 곳으로 휴가를 다녀왔고. 어린 시절 나의 첫 연애상대였고, 뭐 그럭저럭 암튼 그렇고.


  친구 녀석이 고양이 사진 하나를 내게 보여줬다.


  귀엽지? 우리 집 고양이.
  고양이? 너 고양이 싫어하지  않았어?
  그건 20년 전이. 언제야, 그.

  그건 그렇지, 뭐 20년 전이니깐 뭐라도 바뀌긴 했겠지. 나도 곧이어 녀석에게 딸 사진을 보여줬다.

  이건 우리 딸. 귀엽지? 나 안 닮아서 다행이라니깐.
  귀엽네. 근데 이걸 나한테 보여주는 이유가 뭐야?
  글쎄. 왠지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애가 엄청 크네? 몇 살이야?
  중학생이야.
  진짜? 선배를 엊그제 고 오늘 본 것 같은데 중학생 딸이 있다고? 뭐야 나 갑자기 확 늙은 기분이야.
  그렇지 뭐 20년이나 흘렀으니깐.

  뭐 그럭저럭 20년. 과거의 친구는 고무줄로 묶은 타로 뭉치를 들고 다니며 친구들의 점을 쳐줬고 손바닥만 한 자동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녔고 나에게 코코어의 ep앨범 따위를 빌리러 다녔고 서로cd플레이어를 바꿔 들었었고 나에게 목도리를 선물해 줬었고 같이 작은 오토바이 하나에 몸을 싣고 소도시를 돌아다녔고. 뭐 우리는 지금보다 꽤 젊었고.

  선배, 정수 알지? 내 동생. 걔도 이번에 딸 낳았어. 내가 유모차도 사줬어.
  정수는 요즘 뭐 하는데?
  도청에서 6급 주사로 일 해. 아이가 있으면 진급에도 도움이 좀 되나 봐. 애가 얼마나 귀여운데.
  너는 아이 안 갖고 싶어?
  당연히 갖고야 싶지. 근데 이제 좀 늦은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 그전에 결혼부터 해야지.
  아휴, 우리 언제 이렇게 나이 먹어버린 거?
  그러니깐! 선배 좀 봐. 나이가 마흔이야. 마흔.

  친구 녀석이 작게 미소 지었고 조금 지쳐 보였지만 독특한 분위기 여전. 우리는 전보다 좀 늙었고 딸과 조카 이야기를 나누고 주변 사람들 근황을 고 시간이 얼마나 빠른 지에 대해 이야기고. 뭐 대충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고 길가로차가운 바람이 불고 노란 낙엽이 흩날고 멀리 젊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 모든 게 럭저럭 쓸쓸해 보였고 갈색 해링본 코트를 여미었고 그게 참 잘 어울렸고. 뭐, 암튼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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