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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폐업 Nov 17. 2024

2024/11/17

(전략)


  고향까지는 십수 일을 걸어야 했다. 마을은 떠날 때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농장의 올리브 나무들은 조금 더 풍성하게 변해 있는 듯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잔뜩 낮아진 태양 아래에서 수확기를 맞은 밀의 향이 길 위로 퍼져왔다. 몇몇 눈에 익은 이들이 나를 스쳤지만 형편없는 행색 때문인지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강가에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오고 다녔다. 그새 커버린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십 년만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기도 소리를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창가에 서니 바닥에 무릎 꿇고 있은 그녀가 보였다. 작은 유등의 불빛이 다 갈라져 버린 채 서로 맞잡은 그녀의 손끝을 비추고 있었다. 꼽추처럼 휘어버린 그녀의 허리 옆으로는 물이 가득 담긴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데메테르의 이름을 읊고 있었다. 어머니를 부르려 했지만, 목구멍이 메어왔다. 저 구저분한 삶이 싫었다. 저 잘나신 신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그들은 전능하고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들이 인간을 빗었는데 왜 누군가는 이렇게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지. 시간이 앗아간 건지. 우리가 나약한 건지. 그들이 진정으로 전능하긴 한 건지. 울분이 끓어올랐다.

  내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자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았다. 회색빛으로 변해가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 나는 인사를 하지도 않고 화를 토해냈고 울어댔다. 그렇게 비명 치는 나를 어머니는 기뻐하며 안아주었다. 그녀는 병약해져 있었다. 나이를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었다. 어디의 누군가는 팔십 년을 살기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선택받은 자들이 아니면 불가한 삶이었다. 지난 십 년간 내 손에 죽어간 이들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한 번 터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다시 어머니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새벽이면 그녀를 대신해 항아리를 끼고 강으로 나가 몇 번이고 강물을 길어다가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에 물을 주었다. 낮에는 마을 사람들과 노동요를 부르며 땅에 떨어진 올리브 열매를 주워 담거나 밀 수확을 도왔다. 나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마음에 들어 곧잘 따라 불러댔다. 땀이 흐르면 그늘진 나무밑동에 기대어 앉아 땀을 식히며 사람들과 빵과 올리브를 나눠 먹고는 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나에게 전쟁과 전투에 대해서 질문했다. 그들은 나의 이야기를 좋아했고 누군가는 답례로 다시 노래를 불러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네 어린아이들은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나의 뒤를 따라다녔다. 언젠가의 나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보였다. 전쟁에 대해서는 가능한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졸라댔다. 어딘가의 비극이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유희처럼 보였다.

  한 번은 아르투스가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나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나는 아무 저항 없이 그의 눈앞으로 끌려갔다. 그가 나의 옷을 잡아당긴 채로 움푹 패어버린 채 아무것도 없는 나의 왼쪽 눈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나를 바닥에 슬며시 내쳤다. 나는 그에게 전쟁터에서 겪었던 일들을 대충이나마 설명해 주었다. 그는 돌아와서 축하한다는 말을 남기고는 한쪽 다리를 절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수확기가 끝나고 어머니는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누워만 있게 된 그녀를 업고 가끔 마을 어귀를 돌아다녔다. 새벽에 홀로 물을 길으러 나갔을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안부를 물었고 소식을 들은 이들이 그녀를 걱정하며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어머니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져만 갔다. 그들의 배려로 나는 일하러 나가지 않고도 그녀의 곁을 지킬 수 있었다.     

  어느 새벽, 어머니가 작고 부정확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잠결에도 그 소리를 들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고 옆에 앉았다. 그녀의 손이 뜨겁고 까칠했다.

  “계속 고향에 있을 거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거칠었고 메말라 있었다. 나는 행군 중에 보았던 어느 가뭄 진 땅을 떠올렸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계속 그녀의 손을 붙잡고 그녀의 눈만을 바라보았다.

  “영원의 시간을 사는 신들은 전능함과 영생을 손에 쥐고서 놓지 않고 우리 인간들에게는 생명과 죽음을 주었지. 일찍이 네 아빠가 죽었을 때 엄마는 이해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매일 그들에게 공양하고 기도를 올리면서 물어봤지. 그들이 정말로 전능하다면 우리에게 왜 죽음을 같이 준건지 너무 궁금했거든”

  그녀를 붙잡은 내 두 손 위로 그녀의 손 하나가 포개졌다. 그 손길이 어찌나 신중한지 나의 기분을 살피는 듯했다.

  “언젠가 광장에서 한 시인이 신들은 인간을 질투한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어. 엄마는 그 말이 너무 좋더라. 인간은 언제나 마지막 순간을 살기에 삶이 아름답다는 의미였거든. 하지만 그게 사실일까? 지금 여기 누워 너의 손을 잡고 있으니 의구심이 드는구나. 그건 어느 철학자가 필멸의 존재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은 아니었을까? 잠깐 밖에 나가서 밤바람을 좀 맞고 싶구나. 조금만 도와주지 않으련?”

  나는 그녀를 깨끗한 천으로 감싸 안고 집 밖으로 나갔다. 한밤중이었지만 어린 찌르레기가 지저귀고 있었다. 갈대들이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에 같이 강으로 나갔을 때와 똑같네. 그때도 이런 차가운 바람이었어. 너도 느껴지니? 네 등에 업혀 맞는 그 시원한 느낌이 어찌나 좋던지. 네가 아직 아이였을 적에 너는 바람을 맞으며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어”

  어머니가 품에 안긴 채 나의 어깨를 다독였다.

  “세이킬로스야. 해가 뜨면 일하고 하루가 마무리되면 깨끗한 물로 씻으며 감사하는 법을 배우렴. 배를 채우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옷의 감촉을 느끼며 내일은 준비하는 법을 배우렴. 가족이 생기면 아이들의 손을 잡아 주렴. 가정을 꾸리고 항상 그들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렴. 그래, 결국은 다 이런 거야”

  어머니는 손을 거두고는 나의 어깨 위로 머리를 기대었다. 얕은 숨과 함께 가슴의 들썩임이 잦아들고 있었다. 어디선가 어린 찌르레기가 울어댔다. 달이 어찌나 밝은지 밤하늘이 남색으로 물들어 있다. 바람이 부는지 갈대 부대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붙잡은 어머니의 손이 힘없이 흘러내렸다. 나의 부름에도 그녀는 답이 없었다. 그 손이 아직 따뜻했다. 나는 그 거친 손바닥을 부여잡았다. 목울대가 뜨거워지며 울렁대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손이 식어갔다. 어깨 위로 손을 뻗어 어머니의 눈을 감겨주었다. 이마에는 여전히 온기가 남아 있었다. 마디가 다 굵어진 그녀의 손이 보였다. 어머니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눈이 무거워졌다. 이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다. 어머니가 덮고 있던 깨끗한 천으로 어머니의 몸을 감싼 뒤 두 손으로 끌어안았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나는 어머니의 몸을 안은 채로 고르고 부드러운 땅을 찾아 걸었다. 어머니의 몸을 눕히기 위해서였다. 그곳은 어딘가의 갈대밭이었다. 어머니를 눕히자 마지막 숨결에 동참하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 나는 뒤늦게나마 어머니에게 입을 맞추었다. 멀리에서 늦은 새벽 동이 트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나뿐이었다.

  어머니의 유언이 생각나지 않았다. 마지막에 무슨 말을 했던가. 그녀에게서 돌아서 있던 짧은 순간에 나의 모든 것이 멈추었다. 거짓말 같은 순간이었다. 어머니를 덮은 천을 정돈했다. 푸른 새벽은 붉은 아침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에우테르페!”

  “에우테르페!”

  “에우테르페!”

  나는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불러 신들에게 새로운 죽음을 알렸다. 주머니에서 은화 두 닢을 꺼내 입을 맞추었다. 거기에는 어느 정복자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전쟁터에서 잃은 손가락의 단면들이 아려왔다. 그 상처가 아리면 내 앞에서 죽어간 이들의 얼굴이 모두 뚜렷해졌다. 그동안 나는 몇을 죽였는가. 세상 모든 게 손바닥 뒤집기 같다는 벗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어머니의 입술 사이로 그 은화들을 집어넣었다. 이거라면 카론이 기꺼이 스틱스강을 건너게 해 줄 것이었다. 왜인가. 나는 물을 사람도 없고, 답을 알 수 없는, 어떤 의미인지도 알 수 없는 질문을 계속 되뇌었다. 왜인가. 왜. 왜. 어째서.     

  날이 밝고는 마을의 직포공을 찾아가 깨끗한 토가 한 벌을 주문했다. 장례에 치를 것이니 신경을 써달라 말하며 은화 몇 푼을 건넜다. 직포공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돌아오는 길에는 장의사를 찾았다. 나의 몰골을 본 그가 처음에는 의아한 눈빛을 지었지만 두둑한 은화 주머니를 보여주니 바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에게 어머니가 누워계신 곳을 알려주고 무덤 준비를 맡겼다. 나는 이내 마을에 악보를 적을 만한 악사와 비석을 부탁할만한 솜씨 좋은 석공이 있는지도 물었다. 그는 옆 마을의 석공이 제법 쓸만하다며 작업장의 위치를 알려 주었고 가끔 마을 광장에서 공연하는 떠돌이 악사 한 명 있다고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파피루스 몇 벌과 검은 먹 한 덩어리를 샀다. 해가 지기 전, 파피루스를 바닥에 펼치고는 잉크를 물에 녹였다. 먹물 입힌 갈대 붓을 들고 누런 파피루스를 바라보았다. 고작 손바닥 두 개만 한 종이 한 장이었다. 나는 먼저 일하며 배운 노동요에 가사를 입히기 시작했다. 붓이 머금은 잉크는 고작 몇 글자 만에 파피루스에 다 스며들기 일쑤였기에 짧은 한 줄을 적으면서도 갈대에 몇 번씩 먹물을 먹여야만 했다.

  ‘나는 묘비요, 우상이다’

  ‘죽지 않는 기억의 상징으로서 세이킬로스가 나를 여기에 세웠다’

  ‘살아있는 동안 빛나기를’

  ’결코 슬퍼하지 않기를’

  ‘인생은 찰나와도 같으며’

  ‘시간은 끝을 청할 테니’

  ‘세이킬로스가 에우테르페에게’

  고작 일곱 줄의 글이었다. 언제 썩어 없어질지 모를 손바닥만 한 파피루스 안으로 나의 글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틀 후 파피루스가 완전히 마른 걸 확인하고서 악사를 찾아갔다. 노동요를 불러주고 멜로디를 악보로 옮길 수 있는지 물으니 그가 은화 두 닢을 값으로 불렀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주저 없이 한 닢을 먼저 주었고 나흘 뒤 악보를 받으며 나머지 값을 치렀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가 적은 가사와 그 악보를 합쳐 온전한 악보 한 장을 만들어냈다. 석공이 있다는 옆 마을은 걸음으로 반나절 거리에 있었다. 석공은 수년째 작업 중인 조각상 때문에 비석 같은 걸 만들 시간이 없다며 나의 요청을 거부했다.

  “길쭉한 항아리 모양의 비석을 만들어 악보 하나만 새겨주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은화 주머니를 보여주며 말했다. 웃돈을 제법 얹혀 주겠다고 약속하자 그는 일주일을 달라고 했다.

  그녀가 묻힌 곳은 제법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었다. 기억되길 바라는 많은 이들의 비석이 그곳에 서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살았던 자들에게 어울리는 곳이라 생각했다. 길을 지나는 누군가는 묘지를 바라보며 살아생전 그들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어머니의 삶은 형편없는 삶이었다. 살아서는 돌덩어리를 향해 기도만 하였고 죽어서는 돌덩어리 하나만을 남긴 그런 삶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석이 어머니의 묘 위에 세워졌다. 묘비가 세워지는 것을 보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완전한 밤이었다. 나는 이제 혼자였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에는 국경 쪽의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전세가 불리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오레스테스와의 약속을 떠올렸고 이내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나이 탓인지 몸이 언제부터인가 뜻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런 몸으로 전투에 나간다면 하루를 버티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눈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나이 든 병사를 받아줄지도 알 수 없었다.

  밤새 짐을 챙기며 결국 다 그런 거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차가운 바람에 갈대들이 부대끼던 새벽의 기억이 아직 내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나의 등 뒤에서 천천히 식어갔다. 전쟁이 끝난다면 이번 정복자도 신이 되는 건가. 그렇다면 그는 다시 인간을 부러워하게 되는가. 나는 텅 빈 방을 향해 물었다. 불가해한 세상에 가진 것이 없이 태어난 자는 세상에 어떤 식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영광의 성전에 나의 이름 따위가 남을 곳은 있을까. 나는 다시 전쟁터로 떠났고 얼마 후 소년의 창에 찔려 죽게 되었다.  

   


     

  높은 곳이다. 기울어진 해가 언덕 앞으로 기다란 그늘을 만들어낸다. 바람이 일자 언덕의 모래들이 흩어지고 깎여나간다. 사구는 하루면 그 위치를 옮겨간다. 마을에 내려오던 선인들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사막에도 물이 흘렀다는, 믿기 어려운 그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모래사막을 지나 트랄레스가 보인다. 봄을 맞이하여 파종하는 이들이 보인다. 아르투스가 그늘막에 앉아 겨우내 남은 건포도를 나눠 먹으며 다른 이들과 농담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 아이가 아르투스의 땀을 닦아주며 웃는다. 대지의 신 데메테르는 그들의 땀방울에 어떤 보답을 내릴 것인가. 5월이지만 어느새 뜨거워진 햇살 아래로 새로운 생명이 태동한다. 내일의 햇살은 오늘보다 뜨거울 것이고 밀은 조금 더 자랄 것이다. 강과 산은 그 모습을 바꾸어 가고 흙으로 돌아간 이들의 위로 나무가 자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모든 것이 모여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자유로워진 어린 소년의 정신이 어딘가의 새로운 생명이 되어 새로이 깃든다. 나의 벗 오레스테스는 순간의 영원으로 들어간다. 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 ‘왜’라는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모든 곳, 모든 순간을 지나오며 나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저기 그녀의 항아리가 보인다. 인생은 찰나와도 같으며, 시간은 그 끝을 청할 테니. 비문이 보인다. 나의 정신이 강 위를 스치며 흘러간다. 어머니가 보인다. 깨끗한 토가를 입고 그곳에 서 있다. 나는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 그녀의 품에 안긴다. 그녀가 미소 지으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는 눈을 감고는 땅으로 돌아가길 마음먹는다. 어머니의 손이 나를 처음 씻길 때처럼 부드럽다.


Song of Seikilos - 1st century Greek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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