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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tist Feb 06. 2022

시말서는 반성문이 아니다

시말서와 경위서의 법적 성질, 그리고 진정한 반성의 글을 작성하기 위하여


A. 들어가며


지난 노동법 주제 칼럼 “경력을 사칭해서 취업한 사람을 해고할 수 있을까?”에 이어서 징계 시리즈 2탄으로 “시말서에는 반성이 들어가야 할까?”라는 주제로 글을 작성한다. 종전의 글들은 너무 길고 어렵다는 피드백이 있어, 앞으로는 되도록 어려운 내용은 배제하고 가볍게 연재할 계획이다.


오늘 노동법 칼럼의 주제는 시말서를 작성하는 직원에게 반성하는 내용을 작성하지 말라던가, 반성하지 않을 것을 종용하는 글이 아니다. 시시비비를 가릴 것 없이 명백한 잘못에 대해 반성과 사과의 표현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말서를 작성하기 이전에, 시말서가 법적으로 어떤 의미와 효력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말서가 단순히 작성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시말서는 향후 인사고과나 징계의 근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시말서를 요구하는 사람도 시말서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시말서는 법적인 의미의 징계라고 보기 어려우며, 태생적으로 반성문이 될 수도 없다. 따라서 반성문을 작성해야 한다는 취지의 취업규칙이나, 징계의 일환으로 시말서 작성를 작성할 것을 정한 규정은 무효가 될 수도 있고, 특히 반성이 없음을 이유로 반복해서 시말서를 반려하는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도 해당할 수 있다.


시말서라는 말 대신 경위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알고 있다. 순화어로써 경위서라는 단어를 사용할 필요성에 공감하며, 법적으로도 경위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글에서는 법적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 부득이 시말서와 경위서라는 표현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



이하에서 판례를 중심으로 시말서의 법적 의미를 이해해보도록 하자.



B. 시말서의 법적 성질: 경위서, 시말서, 각서 등 명칭이 무엇이든 ‘경위서’라 생각하자.


시말서는 경위서다


시말서란 무엇인가. 한자어로 풀어보면 일의 시작과 끝에 대해 작성하는 글이다. 필자는 시말서를 일이나 사고의 경위와 책임소재 및 재발방지 방안을 명확히 밝히는 경위서의 한 종류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지인들과 시말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시말서를 서로 다른 뉘앙스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마다 시말서에 대한 관점과 이해, 기업문화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일본식 한자 표현인 시말서라는 단어를 없애고, 순화한 단어로써 경위서만을 단독 사용하는 기업이 있다. 또, 단순히 경위를 작성하는 경우 경위서, 징계대상이 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경고 목적의 글을 시말서로 구분하여 운용하는 기업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시말서나 경위서 자체를 경징계의 일환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현실의 시말서는 이렇듯 다양한 양태로 구현된다.


그러나 법적으로 시말서는 징계보다는 업무상의 명령에 가깝다.  


서울 고등법원의 판례(2011누 411)는 회사의 취업규칙에서 징계의 일종인 견책의 내용을 경위서, 각서, 시말서를 받고 훈계한다고 규정한 경우에도, 이는 징계의 집행 방법 설명에 불과한 것이라 설명한다. 회사로서는 일정한 경우에 사건의 내용을 파악하고 관련자들의 소명을 듣는 차원에서 경위서 작성을 요구할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체의 경위서 작성 요구 그 자체를 징계라고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리 법원은 1. 시말서, 경위서, 각서, 확인서 등의 단어들을 구태여 달리 해석하고 있지 않으며,  2. 시말서 등을 징계가 아닌 징계의 과정 내지는 업무상 명령의 일환으로 보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어떤 기업에서는 시말서를 견책의 일환으로, 혹은 그 자체를 징계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단순히 경위를 작성하는 경위서와 징계 일환의 시말서를 구분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독자가 그런 기업에서 근무할 경우 이런 판례 입장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수많은 기업들이 시말서 등을 다양한 용어와 각자의 방법을 통해 운용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기업의 시말서 운영 형태 혹은 그 명칭에 따라 제각각의 의미를 법원이 세세히 나누어 해석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만약 시말서를 징계라고 판단한다면, 하나의 문제에 대해 시말서를 작성하도록 한 후 징계를 하게 될 경우 이중징계 금지의 원칙(일사부재리)에 어긋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시말서는 그 자체로 징계가 아니라 징계의 과정 중 하나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이라 생각된다.


기업에서 시말서, 경위서, 각서, 반성문 등 어떤 형태로 운용하든 간에 경위서로 일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편리하다. 또한 취업규칙 등에 견책 등 징계의 일환으로 시말서를 작성한다는 근거 규정이 있더라도, 시말서 작성 명령은 사건의 경위를 파악하고 관련자의 소명을 듣고자 하는 업무상 명령이지 그 자체로 징계로 보기는 어렵다.



C. 업무상 명령이다. 그렇다면?


 

시말서를 업무상의 명령으로 보는 한, 징계처분에 따른 시말서의 불제출은 그 자체로 사용자의 업무상 정당한 명령을 거부한 것으로서 징계사유가 될 수 있다. 특히 취업규칙 등에 징계처분을 당한 근로자는 시말서를 제출하도록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경우에는 더욱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시말서 작성 거부가 곧바로 징계의 대상이라 볼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시말서 작성 명령 자체가 정당한 명령이어야 하며, 정당하지 않은 명령은 거부할 수 있다. 만약 직원의 비위행위가 있고, 이에 대한 징계처분을 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관련 자료의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인사권의 합리적인 행사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를 두고 시말서 작성 요구가 정당하지 않은 명령이라 볼 수 있을까.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반성문’을 요구하는 경우이다.



D.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인 업무상 명령인가


너가 정말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해?


판례는 취업규칙에서 사용자가 사고나 비위행위 등을 저지른 근로자에게 시말서를 제출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고 규정된 경우, 그 시말서가 단순히 사건의 경위를 보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근로관계에서 발생한 사고 등에 관하여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죄문 또는 반성문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그러한 취업규칙 규정은 헌법에 위배되어 무효(2009두 6605)라고 판시한다.


 반성문을 요구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단순히 불분명하게 작성된 사건의 경위를 육하원칙에 따라 명확히 재작성하도록 하거나, 재발 방지 및 해결 방안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작성하도록 하는 등 ‘경위서’의 미진한 사항을 보충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하거나 불합리한 범위가 아니라면 정당한 업무상 명령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말서에 반성이 들어가 있지 않음을 이유로 시말서를 다시 제출하도록 하는 행위는 정당성이 없는 업무상 명령에 해당한다.


 나에게 명백한 잘못이 있는 경우 시말서에 나의 잘못에 대한 적절한 반성의 표시를 하는 것이 사회 통념에 부합할 것이다. 혹여나 오해하실 수 있으니 명확히 하자면, 사측이 반성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글을 작성하도록 하는 것이 위법한 것이지, 시말서의 작성자가 자신의 의사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글의 골자는 시말서를 작성하는 자가 시말서를 곧 반성문이라 생각하고 작성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시말서가 곧 반성문이다 생각하여 작성할 경우 나에게 책임 없는 사항에 대해서, 혹은 따지고 보면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점에 대해 이견이 없었던 판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충분히 반성하고 있음을 어필하기 위해” 일단 사과부터 하게 되는 경우가 잦다. 경위서의 본질에 따라 사건의 경위와 해결 및 재발 방지 방안을 명확히 밝히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나의 책임 범위에 해당하는 문제와 업무상 실수에 해당하는 사항에 대해서 적절한 반성의 표시를 하자.


또, 직원에게 시말서를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임직원, 인사담당자의 경우에도 시말서를 반성문이라 생각하여 요구해서는 안된다. 법적으로 타인에게 반성을 요구할 권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충분히 반성할 것을 요구하는 글을 작성하도록 하거나, 반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의 반려 처분을 할 경우 징계의 정당성 주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 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사건의 경위와 해결 및 재발 방지 방안이 명확하게 작성된 경위서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좋고, 다만 차후 징계 시 양정의 고려요소로는 활용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D. 반성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CAP Rule을 참고해보자



물론 앞서 이야기 한 내용들은 모두 법관념적 이야기이고, 현실에서는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고 회사나 부서의 분위기, 문제 상황의 경중에 따라 반성을 피하지 못할 상황이 많을 것이다.


시말서를 작성하는 독자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과 함께 CAP 룰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CAP룰은 잘못에 대한 사과를 내용으로 하는 서면을 작성할 때 들어가야 할 효과적인 요소들을 정리한 규칙이다.


Concern&Care(걱정과 주의)는 사과와 잘못에 대한 인정을 내용으로 하는 글이다. 반성문의 서두에 작성하며, 문제 상황에 대해 육하원칙에 의거 명확히 작성한다. 어떤 문제가 언제 어디서 발생하였는지, 그리고 피해의 종류와 대상, 범위를 밝힌다. 잘못의 주체와 책임의 범위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필자의 잘못과 책임에 대해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다.


Action(행동)는 문제 혹은 비위행위로 인하여 이루어질 해결 및 정상화 절차와 징계 절차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밝히는 부분이다. 문제의 원인 규명과 해결에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며 상황의 정상화에 힘쓸 것을 약속한다. 피해를 입은 대상이 존재하는 경우 잘못에 대해 통감하는 동시에 보상, 사과 등 어떤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 밝힌다. Concern&Care에서 자신의 잘못과 책임 범위로 명확히 한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 징계나 처분에 대해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내용을 작성할 수 있다.


Prevention(예방)에서는 앞으로 같은 사고나 문제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보완책과 대책을 밝힌다. 업무상의 사고나 실수가 있는 경우 현재 업무 방법의 문제와 업무 방식 혹은 시스템의 보완 방안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피해자가 있는 경우 같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밝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과의 말을 다시 전하여 글의 취지와 진정성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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