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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아이는 누구일까?

2. 내면아이란?

그렇게 '내면아이'와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내면아이는 누구일까?


일상 중에도 상상을 하면 마음속에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무수히 많은 어린 시절 중 정지된 이미지처럼 사진 한 장, 한 장으로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대부분 무서웠거나 힘들었거나 충격적인 일들이다.  왜 그 수많은 나날 중 몇 장면만 기억에 남아있는 걸까?

한때 우리 자신이었던 어린아이는

일생 동안 우리 내면에서 살고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아동기와 성장 과정에서 인간의 해소되지 못한 욕망과 기억, 본성이 잠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살아가면서 생각과는 다르게 어른답지 못하게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거나 과거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과민반응하게 되는 경우들이 생긴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살아가는 동안 자꾸자꾸 튀어나와서 내 삶의 주도권을  쥐는 아이가 '내면아이'다.


​내면아이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


태어날 때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고 순수하며 면역력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쉽게 감정 자극을 받는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아름답고 추함 같은 가치와 선악을 판단하는 대신에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반응한다. 하지만 부모, 사회환경을 통해 감정이 억눌러지거나 감정을 대하는 방식을 답습하고 자라면서 감정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지 못하고 마음에 쌓아두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쌓인 감정은 기억과 함께 마음에 남아 감정의 뿌리가 되어 오래전 일인데도 갑자기 떠오르는 경우들이 있다. 과거 기억 속에서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고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분리된 나. 분리된 작은 조각의 수많은 내가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게 된다.


만약 부정적인 감정과 행동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거나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상처 나고 병든 내면아이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광현 지음​​


[나는 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의 저자 최광현 님 책에 내면 아이에 대해 설명이 잘 되어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안에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가 있다는 것, 즉 과거의 상처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거부하려고 한다. 모든 것은 '다 지난 일'이라며 애써 과거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은 나름 그것을 극복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괜찮게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그 증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상처 입은 내면아이를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할 때, 역설적으로 현재의 삶에 더욱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그 아이의 존재를 인지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감정 덩어리들을 되돌아보려는 시도에서부터 비로소 진정한 치유가 시작된다.


내면아이라는 게 내면에 분리된 존재로 무의식에 남아서 내 삶의 통제권을 쥐고 있다고?  처음엔 무서웠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감정에 끌려다니며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사실을 거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 본 내면 아이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 혼나고 혼자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말을 거니 처음엔 등을 돌리고 무반응이었지만 계속 말을 걸자 뒤돌아본다. 어깨는 축 늘어져있고 얼굴엔 눈물범벅이다. 표정은 퉁명스럽고 화가 난 듯 보였지만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왠지 나를  많이 기다린듯했다.  웅크리고 앉아서 서럽게 우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안아주고 싶지만 내면 아이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 같다. 너무 오랜 시간 방치했고 외면했기에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힘든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면아이 치유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고 이제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시간이 조금씩 지나자 내면아이의 존재를 또 까맣게 잊고 일상을 살게 되었다.  잊었다기보다 잊고 살고 싶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온통 사랑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기억들, 스스로에게 상처 줬던 기억들이 너무 많았던 과거를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았다. 부정적 감정은 죄스러운 것이며 잘못된 것이고, 그것들을 드러내고 느꼈을 때 무언가 잘못될 것 같고,  버림받고, 심지어는 벌을 받을 것이라고 끊임없이 세뇌받아왔기에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몸에 상처를 입었을 때 처참한 모습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돌리곤 한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상처를 알아차렸을 때도 본능적으로 외면하게 된다.  너무 아파서 볼 수가 없고, 볼 엄두가 나지 않는 거다. 차라리 보지 않으면 덜 아플 것 같기에 부정적 감정을 보지 않으려고 회피했던 거였다.

하지만 평생 억눌렀던 감정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불시에 튀어나와 내 삶을 뒤흔들었다. 뒷걸음질 치려니 아이들이 보인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마주해야 하기에 다짐을 해본다.


'그래. 한번 가보자. 내면아이를 만나서 잘못된 관념들을 바로잡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부정적 감정들을 대면하는 게 두렵지만 두려움 뚫고 나아가보자. '


분리된 작은 조각의 수많은 나를 만나서 '하나의 나'로 통합시키기겠다고  다짐하며  '엄마마음성장  강연장'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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