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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호해 주었던  방어기제 '주지화'

방어기제 ‘주지화’

문제상황이 생기면 머리로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해답을 찾고자 책을 펼치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영상을 찾았다. 내 상황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내용을 적어서 벽에 붙여두고 수시로 반복해서 읽었다.  하지만 갈수록 문제가 해결되기보다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엄마 성장 모임에서 강사로 일하던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그 선생님은 마이너스 감정에서 플러스 감정으로 끌어올려 주시고 내 안의 사랑을 밝게 빛내주신 마음치유 첫 스승님이다. 유년 시절 아픔이 비슷하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수년간 스스로 소화하며 치유했던 이야기들이 나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되었다. 문제없는 상황을 문제로 보던 삐딱했던 내 고정관념들을 하나씩 바로 볼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다.

 

어느 날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시은아~ 너 ’ 주지화‘인가 봐’ 상담을 열심히 하고 뭔가 해결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에 비해 막히는 부분이 많다 보니 선생님도 나도 뭔가 답답하던 상황이었는데 그 말씀을 들으니 어둠 속에 밝은 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상담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내 모습을 상담 선생님이 객관적으로 봐주신 덕분에 나를 알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시간이 되었다.

 

주지화란.

감정적으로 위협적인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한 이성적인 사고에 집중하는 방어기제이다.

감정적인 갈등이나 불안이 생길 때,

충동적인 감정이나 욕구를 억누르면서

이것을 지적인 이해나 언어적인 설명으로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하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실수하거나 놓친 부분은 없는 건지, 현재 상황들을 분석하고,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에만 골몰할 뿐. 정작 힘들어하는 내 마음, 감정적인 부분을 돌보는 일은 등한시했다.

다른 방어기제들이 그렇듯이 주지화 역시 적절히 작동되고 사용된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감정은 방치한 채 머리와 이성에만 치우치다 보면 인정받고 싶었던 감정들은 다시 무의식으로 소외되어 버리고 만다. 하지만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려고 애를 써봐도 여전히 주지화에서 벗어나기 힘들었고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방법을 찾아다녔고 또 다른 스승님을 만났다. 그분께서는 자연으로 나가서 바람을 느끼고 햇볕을 몸으로 느껴보라고 제안해 주셨다.  내 몸에 의식을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의식을 집중하지 않는 건 집이 비는 것이고 의식이 있는 곳에 치유가 일어난다고 하신다. 그 당시 주지화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이 너무 컸었고 선생님 제안대로 자연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냥 자연을 거니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무조건 내 편, 나를 어떤 판단도 하지 않을 내 편이 있다고 상상하라고 하셨다.  (종교가 있다면 하나님, 부처님, 우주, 하늘, 무엇이든 괜찮다고 하신다. 나는 종교가 없어서 큰 우주라고 상상했다. 나를 온전하게 품어주는 드넓은 우주)

'햇볕이 참 따뜻해'

'그렇구나 우리 시은이 햇볕이 참 따뜻하구나'

'뺨을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

'그렇구나. 우리 시은이 바람이 시원하고 기분이 좋구나'

처음에는 부정적 감정보다 긍정적인 감정을 몸으로 느끼는 연습부터 해야지 마음의 문을 열기 좋다고 하셨다.

누군가 내 옆에서 무조건 내 편인 따뜻한 태양 같은 존재가 나와 늘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든든하기까지 했다.

매일 2~3시간 산책을 하고 햇볕 아래서 명상을 했다. 눈을 감고 몸의 감각을 느껴보았다.

무슨 일만 생기면 ‘어떻게 하지?’라며 이성적으로 방법만 찾던 나에게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떡하지?'라고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온몸에서 감각이 느껴졌다. 온몸의 세포가 찌릿찌릿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 같았다. 무서울 때는 '어떻게 무서움을 피하지? 방법을 찾자'에서  '나 무서워. 두려워'라며 온몸으로 두려움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한동안 주된 방어기제였던 '주지화'는 어린 시절 두렵거나 무서운 상황이 생기면 보호받지 못한 아픔에서 비롯된 것이란 걸 알았다.  감정을 느끼면 죽을 것 같이 두려우니까 감정을 차단해 버리고 이성으로 생각을 해버리는 보호장치였던 것이다. 어린 시절 감정을 배제해야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마음을 이제는 내가 온 마음으로 느끼고 안아준다.

'두려워해도 괜찮아. 이제 내가 널 지켜줄 거야'

'울어도 괜찮아. 방법은 함께 찾아줄 테니. 지금은 맘껏 울렴.'

긍정적 감정에 적응되고 나니 부정적 감정도 거부하지 않고 마음으로 몸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을 직접 몸으로 느껴주니 점점 몸이 가벼워졌다. 거부당하고 소외당한다고 느꼈던 감정들은 수용되고 이해받는 느낌들로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를 지켜주었던 방어기제 '주지화'덕분에 어쩌면 감정적으로 덜 힘든 시간을 보내며 잘 버텨온 것 같다. 마음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잘 견뎌줬던 것이다.

이제는 주지화 방어기제 없이 나로 설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있다.  그동안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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