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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 콤플렉스

착한 아이 콤플렉스

나는 오랜 시간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살아왔다.

엄마에게 어린 시절 내가 어땠는지 물어보면 '착한 아이였어'라고 말씀하신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일하느라 바쁜 엄마를 도와 밥상 차리기, 도시락 싸기, 집 청소, 세탁기 없던 집에 손빨래도 척척 설거지도 척척해냈다.


엄마가 잔소리를 하기 전에 눈치껏 미리미리 할 일을 해놓았다. 주위에서는 '며느리 삼고 싶다'라며 어린 나를 기특해하셨다. 그런 칭찬이 듣기 좋았다. '착하다'라는 말은 어른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에 유리했고, 어른의 도움이 필요했던 미숙한 어린 나에게는 생활 전반에 목표가 되기에 충분했다. 점점 내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살피게 되고 '착하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 애썼다.


시간이 갈수록 '나'라는 존재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오로지 타인을 위해, 타인에 의한, 타인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버림받지 않기 위한 어린아이의 몸부림이자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수단이 되어갔다.

'착한 어른 콤플렉스',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고 부르지 않고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 하는 이유가 뭘까? 타인으로부터 착한 아이라는 반응을 듣기 위해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심리적 콤플렉스를 뜻하기 때문 일 것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어린 시절 주 양육자로부터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유기 공포(fear of abandonment)가 심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방어기제의 일환으로 본다.


내 마음 한구석에도 이 어린아이의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다. 아직 독립적으로 자라나지 않은 연약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으려고 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다른 사람의 부탁에 거절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좋은 사람으로만 행동했던 건 내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약한 존재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해'라며 도와주기를 바라고 주체적이지 못하고 받기만 하려는 아기 같은 모습. 인정받고 사랑만 받으려는 수동적인 모습에 머물러 있었다. 그게 편하니까. 습관이 됐기 때문에 어릴 때 형성했던 어린 시절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타인에 의해 내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거나 인지할 힘이 약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보지 않고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학교, 친구, 사회가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는지에 결정권을 내맡겼다. 누군가 나를 판단하면 '아 나는 그런 사람인가 봐'라고 순응해 버렸다. 그리고 긍정적 피드백이면 그런 사람이 되려고 더 노력하며 살았다. 부정적 피드백이면 매우 불쾌해하며 듣기 싫어했다.


건강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판단에. '아 그렇게 보이는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하며 참고는 하겠지만 크게 연연해하지 않는다. 각자 다른 관점을 수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타인이 나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그대로 믿어버렸다.




'진정한 자신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인간적인 자아를 존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때로 감추고 싶은 자아의 어두운 부분까지도 포함해서,

우리는 흔히 사람들이 선한 마음에 이끌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진정한 인간의 모습에 이끌리는 것입니다.

인위적이고 멋진 모습들로

진정한 자신을 가리고 있는 사람보다는

그 자체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인 사람을 우리는 좋아합니다.

진정한 자신에 가까워지려면 자신의 어두운 면과 결점에 대해서 솔직해져야 합니다.

-인생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아주 나쁜 사람 같은데 알고 보면 착한 면이 있고, 순한 것 같은데 엄청 거센 면이 있고, 아주 훌륭한 것 같은데 비열한 면이 있는 게 인간이다. 알면 알수록 모르겠고, 모르는 것 같은데 다 알 것 같다. 없는 면이 없는 다양한 모습을 가진 신비하고도 오묘한 존재인 특별한 인간인 나를 더 이상 틀에 가둬놓고 타인의 판단에 내 정체성을 형성하지 말고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자.


블로그를 통해 감추고 싶었던 어두웠던 과거를 조심스럽게 꺼내는 중이다. 지금껏 착하고 선하게 사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무의식의 어린 나'에게 모든 순간을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가식적인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다. 부정적이고 감추고 싶었던 부분을 드러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다독인다. 힘겨운 시간을 견뎌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어두운 면조차 삶의 한 부분이고 진정한 자신에게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손 내밀고 싶다.


어린 시절 타인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선택했던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이제 놓아준다. 가식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배려와 사랑을 하기 위해 타인에게 쏟았던 관심을 내면으로 돌려 마음껏 안아주고 사랑해 주련다.


© neom,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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