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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과 사랑은 하나

온 세상 가득 사랑인걸 이제야 알았어

꿈을 꿨다.

작년에 돌아가신 새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신 거다.

아버지는 엄마와 같이 있었고 나는 다시 살아 돌아온 아버지가 너무 반가워서 가까이 갔다. 아버지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내가 불편한 모양이다. 아버지는 생전에 친자식이 없었지만 꿈에서는 아버지 자식이 있었고 그 자식들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나는 아버지에게 미움받는 마음을 느꼈고 가까이 다가가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잠에서 깼는데 새벽 4시다. 마음이 아려온다. 꿈이 너무 생생했고, 생전에 딸로서 못 해 드린 것만 생각이 났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몇 달 전까지도 아버지와는 서먹한 사이였다. 그래서 꿈에서 나를 보며 반가워하지 않는 모습이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졌고 죄송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들이 올라왔다.


마음정화를 할 때 바깥상황을 보는 게 아니라 마음을 느끼며 정화하듯이 꿈 정화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나는 이 꿈을 꾸고 어떤 마음이 들었지? 나에게 물어본다. 너무너무 반가운 아버지인데 외면당했을 때 ‘미움받는 마음’ ‘버림받은 마음’ 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그 마음을 느껴 보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느꼈던 마음이고 그때 상황들이 느낌으로 다가왔다.


부모님이 이혼할 당시가 내 나이 4, 5살 즈음인 것 같다.

이혼 조정 중일 때 엄마는 아빠집에 언니와 나를 놔두고 갔다 몇 달간 엄마의 공백기는 그 어린아이에게 두려움  자체였을 거다. 영문도 모른 채 엄마를 잃었던 아이의 마음은 버림받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아이들에게 부모는 신보다 더 큰 존재이기 때문에 엄마 탓을 한다는 건 우주를 탓하는 게 되어 버렸을 테다. 그래서 부모 탓 대신 자신을 탓하게 되는 게 본능이라고 하는데 자신이 잘못해서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싶다.  

몇 개월 후 두 분이 이혼하시고  엄마와 살게 되었다.

모든 감정은 필요한 감정이다. 그런데 부정적 감정은 나쁘다고 다 버리고 억눌러 버리니 흘러가지 못하고 붙잡혀 있었다. 미움을 억눌렀더니 점점 커져서 결국 감정체가 되어 나를 뒤 흔들었다. 미움 감정체에 질질 끌려 다녔다.


애써서 착실하게 살았지만 억눌렀던 미움은 가끔씩 뻥 뻥 터졌다.  

미운감정이 올라오면 자동으로 참게 되었다.  참다 보니 그 감정들은 자꾸 커지고 결국에는 터져버렸다.  감정에 대해 무지했었기에 성격 탓, 부모님 탓, 세상 탓으로 돌렸다.

그렇게 미움을 가득 안은 채 중학생 때 새아버지와 인연이 되었다. 무뚝뚝하고 결벽증인 아버지가 불편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들어온 후부터 달라졌다. 나에게 무관심했고 아버지와의 관계를 중요시했다. 혹시라도 책잡힐까 봐 예의를 중요시 여기며 나를 자주 혼냈고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썼다. 어린 마음에 그 모습이 보기 싫었다. 엄마사랑을 아버지에게 빼앗긴 마음이 올라왔다.


결혼 후에도 아버지가 계실 때는 통화하는 것도 불편해했고, 친정에 갈 때는 아버지 일정을 맞추고야 방문할 수 있었다.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는 엄마가 미웠고, 아버지는 더 미웠다.


미운 마음이 올라왔지만 그 마음을 나쁘다고 버렸다. 부모님을 미워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질책했다. 미워하는 건 나쁜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나중에 알았다.  나쁜 마음은 없고 아픈 마음만 있다는 걸.


그 당시 올라왔던 마음들에 귀를 기울여 주고 솔직하게 소통했더라면 어땠을까


두려워서 혼자 떨고 있던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 어린아이에게 미움이라는 감정은 어쩌면 ‘죽음’이라는 생존본능과 연결되었을 테다. 엄마가 없다는 건 우주가 없어지는 거고 자신을 보살펴줄 우주가 없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많이 무서웠지? 미움받은 마음, 두려움, 어떤 감정이든 느껴도 괜찮아. 이젠 더 이상 네 마음을 버리지 않을게.   미안해. 넌 혼자가 아네야. 니 곁에서 널 보호해 주고 네 마음과 함께 할 거야. 안심해 “


아이는 안전함을 느꼈는지 한참을 감정을 쏟아낸다. 마음껏 감정을 분출 한 아이는 이내 평온해졌다. 아이에게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사랑고백을 받고 싶다고 한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했지만 그건 아이 책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당시 해 줬어야 할 말을 이제야 한다. 섬세하고 여린 마음에 상처를 줘서 미안하다고 한참을 우시는 부모님이다.  몸은 비록 떨어졌지만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이도 부모님에게 그동안 고백하지 못했던 사랑을 전한다.   긴 시간  어둠으로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사랑이 그제야 환하게 빛난다.  미움만 받았다고 굳게 믿고 있던 아이의 시야가 넓어졌다.


새아버지께서도  자식을 키워본 적 없어 미숙한 부분은 있었지만   미움을 걷어내고 보니 엄마옆에 그냥 존재해 준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분이셨다. 엄마를 살뜰히 챙겨주셨던 고마운 분을 미움이라는 장막에 가려 보지 못했다. 어리석고 무지했음을 마음깊이 참회한다.


사랑만 받겠다고 붙들고 있던 끈을 놓아도 된다고 아이마음을 안심시켰다.

미움받는 감정도, 버림받는 감정도 삶의 파도에서는 꼭 필요한 감정들이고 이제는 더 이상 피하지 말자고 했다. 이제 혼자가 아니라 함께이니 두려워 말라고, 그 마음 함께 느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끈질긴 집착의  손을 놓자 세상이 달라진다. 받은 사랑이 얼마나 많은지 이제야 보인다. 미움을 충분히 느끼고 나니 사랑이 살아난다. 온 세상 가득 사랑이다.


바람소리도, 태양빛도, 노트북도, 미움도... 사랑 아닌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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