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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밀리 Oct 22. 2023

망해서 해야 하는 일

우선은 집안 정리부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 그런지 예전만큼 치우는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지만 쓸만한 물건 중에서 판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것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이 일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매우 중요했다. 나는 물건들은 사진을 찍어 중고사장에 내놓았다. 한인들 사이에서 이용되는 인터넷 지역 커뮤니티 카페와 지역 오픈 채팅을 이용했다. 물론 물건을 급하게 처분해야하니 ‘이 정도는 받아야겠다.’ 싶은 금액으로 거래를 할 수도 없었다. 무조건 후려 쳐야 팔렸다. 이미 시장의 가격 형성이 그리 되어 있어서 낸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돈 받고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라 여기고 감사히 팔았다. 물론 저녁이면 가격의 적정선에 대한 감도 없이 가격을 말도 안 되게 싸게 내놓고 팔아재낀 나 자신을 탓하며 후회도 했다. 그러다가 중고가격이 그나마 적정 수준에서 매겨지고 있는 현지인을 상대로 한 페이스북 마켓 플레이스를 이용하기도 했다. 현지인들이 중고 거래를 하는 곳인데 제값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이곳에서 거래를 했다. 이 일도 하다 보니 나름 요령이라는 것이 생겼다. 마치 직업처럼 말이다. 하지만 물건을 처분해도 끝이 없어 보였다. 티가 나게 확 줄어드는 것 또한 없었다. 그간 나는 너무도 지나친 물욕으로 그보다 더 많은 물건들을 이고 살았던 것을 파산한 와중에 반성을 하게 됐다. 


남편은 나보다 더 많은 반성을 해야하는 듯 보였다. 미국에 와서 쓰지도 않을 물건들을 마구 사들였다. 심지어 팔지도 못할 물건들을 말이다. 뿐만이 아니다. 한 때 목공이 유행처럼 번져나갈 무렵 남편은 값비싼 취미하나를 새롭게 가지게 되었다. 목공을 위한 기계들을 하나 둘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우리집 차고는 어느새 목공소로 변해버렸다. 집안 물건을 정리하면서 내 눈에 가장 거슬렸던 건 바로 이 목공 기계들이었다. 수천이 들어간 돈도 이유라면 이유겠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남편이 가족을 내팽겨치고 목공에 몰두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다시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도 남들은 남편이 이런 취미를 가져서 얼마나 좋냐는 모르는 소리를 해댔다. 물론 당사자인 나는 좋지가 않았다. 독박육아로 아이 셋을 키우고 있을 무렵 남편은 목공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직장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자기만 아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나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폭우를 만난 적이 있다. 하늘이 구멍이 난 듯이 쏟아 붓는 빗속을 뚫고 무사히 집에 도착해 주차를 위해 차고 문을 열었다. 웬일인지 남편이 차고에 서 있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의아했지만 그 다음 장면에 상황이 바로 이해가 됐다. 남편은 나를 향해 소리를 고래고래 쳤다. 뭔가 화가 단단히 나 있는데 말 속에 무든 내용이 담겨 있는지가 파악이 안됐다. 

“뭐라고? 잘 안 들려”

재차 물었다. 기계가 얼마짜리인데 비가 오는 중에 차고 문을 열어서 비를 맞게 했다고 화가 난 것이었다. 나는 나와 아이들 마중을 나와 장 봐온 물건을 옮겨주려고 했던 거라 착각을 했던 내가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이 빗속에 차고 밖에 주차를 했어야 했고 남편의 염려대로 차고문을 열고 들어온 타박을 들어도 싼 그런 존재였던 것이었다. 


그런 기억들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기계들을 싹다 내다 팔고 싶었다. 꼴도 보기가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고품을 사기 위해 집에 들린 구매자가 집을 방문했다. 주전자와 팝콘 기계를 내놓았는데, 이 물건을 사겠다고 약속을 했던 구매자는 날짜를 몇 차례 뒤로 미루더니, 마지막 약속일에도 연락이 없었다. 원래 중고물품의 거래가 이런 식이다. 물건을 잡아두고 나타나지 않는 구매자들도 허다하고 시간 약속을 해 놓고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고 이걸 어디다 하소연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중고를 판매하는 사람의 입장은 원래 이런 거다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내 정신 건강을 위한 길이 된다. 이 날도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그제서야 구매자는 자기 일 마치는 대로 우리 집에 들리겠다고 했다. 일 때문에 정신이 많이 없으신가보다 했다. 문자를 주고받은 기록에서 보여지는 문체는 구매자가 남자일 것임을 암시했다.  그런데 내 눈 앞에 나타난 구매자는 여자였다. 그리고 자신이 구매하기로 한 물건보다 목공 기계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기계에 대한 지식도 상당했다. 우리집 차고에 쌓여 있는 나무 자재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었다. 같이 인테리어 일을 하는 사장님이 요즘 싱크대 만드는 일을 알아보고 있는데, 아직 기계를 갖추지 못해서 구매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목공기계를 팔 생각이 있다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구매자는 반색을 하면서 주말에 사장님과 함께 물건을 보러 오겠다고 했다. 


나는 크게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인생에 대해 의문점이 생기면 인문학으로도 충분히 해소가 되었고 딱히 뭔가에 매달려 의존해온 적이 없었기에 신의 존재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친정 엄마가 보름 동안 혼수상태 속에 사경을 해맬 때 하나님을 찾고 의지했던 때 말고는 딱히 뭔가에 간절했던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렴풋이 신이 존재할 것이란 생각을 가졌던 건 스물일곱 나이에 홀로 45일간 떠난 유럽 여행에서였다. 말로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나를 보호해주는 것만 같은 느낌을 여행 내내 전해 받았기 때문이다. 홀로 도시를 걷고 있을 때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이어 받은 건 이십년이 지난 오늘에서였다. 중고 물건을 팔다가 우연히 목공기계가 필요한 사람을 만나다니. 이런 것이야 말로 끌어당김이 법칙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물론 나로 인한 인력이 아닌 신의 섭리로 인해 말이다. 


그렇게 구매자는 주말에 사장님을 모시고 우리집을 찾았다. 이 날 나는 구매자가 사장님이란 칭호로 사람은 구매자의 남편이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남편은 목공 기계를 팔 생각이 없었다.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어디다 둘 데도 없는데 자기는 이것들을 가지고 이사를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 힘을 합해 위기를 극복해 나가도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마당에 매번 이렇게 다른 가치관을 가진 객체로 존재를 인식하며 부딪치고 있었다. 가치관이 어긋나니 상황 속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찰과 갈등이 생기면 어떤 식으로든 이를 무마하거나 조율해 봐도 임기응변일 뿐 시간이 지나면 서로 다시 기존의 가치관으로 돌아가 있었다. 사람의 변화는 이처럼 힘든 일이었다. 두 남녀가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없이 없다면 결국 현상유지 편향의 두 인간으로 각자 자기의 현상황을 유지하고자 고집을 부리게 된다. 그러면 백날이 지나도 달라질 것 없는 생활이 된다. 그러다가 같은 내용의 싸움이 반복되는 것이 지겨워 각방을 쓰게 되고 그렇게 부부가 아닌 동거인이 되어 가는 것이다.  


나는 구매자에게 연락을 해 목공기계는 남편을 설득해서 팔겠다고 말을 전했다. 그 와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번 여름 남편이 지하실 화장실 공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공기계를 보러 왔던 인테리어 업자분에게 연락해 견적까지 받아뒀었고 그때 연락했던 번호 기록이 있어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게 되었다. 물론 화장실 공사가 계획으로만 남고 실행으로 들어가지 않았지만 이런 일들을 아내와 상의 없이 혼자서 하려고 했다는 것에 한숨이 나왔다.  


중고물건 거래를 하면서 10만원 상당의 물건인 경우 거래를 하고자 하는 남자들은 대부분 아내와 상의 후 연락을 주겠다는 말들을 했다. 이 작은 것들조차 부부끼리 상의를 할 수 있구나 하는 것들을 이번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런데 남편은 이와는 너무도 달랐다. 상의가 아닌 통보의 방식으로 나와 의사소통을 해왔던 것이다. 이런 건 남편의 하나의 방식이었다.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반려견을 집에 들이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진돗개 똘이가 집에 오는 날이 되어서야 내가 개를 키우게 된 사실을 알게 됐다. 난 데 없이 디트로이트 공항에 가봐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 도대체 누굴 마중 나가냐고 했더니 강아지를 받으러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슨 강아지를 받으러 가는 거냐 물었더니, 우리가 키울 강아지가 텍사스에서 공항으로 오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두어 시간이 지나 정말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강아지는 집에 오자마자 식탁 아래에 깔아두었던 카페트에 서서 오줌을 쌌다. 그걸 보고도 나는 당황하지 않고 

“오빠 쟤 저기서 오줌 싸는데?” 

덤덤하게 말했다. 그런데 남편은 나보다 더 침착하게 

“저거 오줌 아니야.”라고 답했다. 

이렇게 이성과 반박이 마주쳤다. 그리고 에너지 넘치는 개는 하루 두 세 시간의 산책이 필요했고 아이 셋 독박 육아는 이내 포기 상태가 되어 버렸다. 아이들을 모아 미술놀이도 하고 공부도 봐주고 하는 시간은 진돗개 산책으로 대체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내 아이를 키워야할 시간을 개 키우는 데 할애하고 있던 것이다. 


지하실에 대형 어항이 들어오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물고기를 키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역시 어항이 배송된 날이었다. 어항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공장에서 특수 제작을 했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나 소요됐다. 그만큼의 시간 동안이 있었는데 나한테 한 마디가 없던 것이다. 그리고 어항은 하나 둘씩 늘어 네 개가 되었다. 이쯤 되면 왜 대출을 받는데 아내에게 상의 한 마디 없었는지는 이상할 바 없는 이야기가 된다. 자신이 원하는데, 아내의 의견이 뭐가 필요한가. 가지면 되는 거지. 이게 그가 가진 결혼 생활의 태도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궁금했고 또 듣고 싶었다. 도대체 왜 이지경이 되도록 도박을 한 건지. 그런데 나는 그 답을 들을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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