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나는 나를 포함한 과친구 4명과 붙어 다녔다. 그 중에 한 명은 한가람, 가람이는 우리과 대표였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은 우리를 가람파라고 통칭했다. 과의 인원이 30명밖에 되지 않아 학우들이 똘똘 뭉칠 법도 한데, 춘추전국시대마냥 죄다 조각나 있었다. 소속감이 필요한 아이들은 동아리 생활을 더 열심히 하기도 했다. 동아리는 보통 신입생 때 가입하는 게 일반적인데, 나는 그 시기를 놓치고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 동아리에 가입을 했다. 그렇다고 1학년 때 동아리에 생각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유독 나에게 잘 해주는 한 학년 위인 하선 선배에게 이끌려 학교 밴드에 여러 차례 가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그 동아리가 좀 과격한 운동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고민 끝에 그만둔 것이다. 그때 동아리에 같이 갔던 가람이와 은서는 밴드 동아리에 남았고 지민이와 나는 동아리를 탈퇴했다. 지민이의 아버지는 경찰이셨고 나도 늘 집에서 대학가서 절대 데모하면 안 된다는 신신당부를 듣고 자랐기에 굳이 부모님과 대립하면서까지 동아리에 가입할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틈만 나면
“데모하는 애들 분신자살하고 이러는 거 다 자기들이 원해서 하는 일 아니다. 제비뽑기 잘 못 뽑아서 열사가 되고 그러다가 몸에 불 지르고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그러는 거야. 절대 운동권엔 발을 들여놓아선 안 돼. 그게 너의 일이 될 수도 있는 거야.”하며
운동권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어른들의 조언은 확실히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안 좋은 것은 뭔가를 스스로 직접 알아보지 않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작동시킬 수 없다는 건 세뇌됐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남의 조언이 삶의 이정표가 되어 내 인생을 이끌어 가게 만든다. 나또한 그랬다. 내가 달라진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였다. 학창 시절 나의 뜻을 연대하는데 보태지 못했다는 게 채무감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설하는 극좌파라고 부르곤 했다. 그런 설하에게 매번 나는 사실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정의의 신념대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정을 해주어야 했지만 이걸 알아먹을 설하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좌파 대신 진보란 표현을 하라고 친절히 정정해주었다. 나는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편에 서 있는 진보라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 국문과라는 전공은 참 막연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딱히 뭘 할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입학을 하고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학교 국문과는 교직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박정희 독재 타도에 앞장서 학생 시위를 하다가 정권에 밉보여 폐과가 됐던 것이 이유였다. 그 이후 다시 신설이 됐지만 역사가 고작 10년도 채 도지 않았기 때문에 교직 이수 발급의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교직이수가 안 되는 국문과도 있을 수가 있는 걸까? 속은 기분이었다. 내가 국어교육과로 전과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한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나를 포함한 가람파 친구들과 그 외 많은 동기들이 교직 이수를 원했다. 그런데 선배들은 그런 우리에게 국문과 학생들은 교육대학으로 전과를 할 수가 없다는 절망적 이야기를 전했다. 학교의 방침이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런 줄로 믿고 있었다. 선배들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고, 또 잘못된 정보를 줄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선배들이 말을 믿어버렸다. 교무과에 가서 물어보기만 하면 되는 걸.... 말았다. 그런데 2학년이 되면서 같은 과 연경이가 영어교육과로 전과를 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녀가 해낸 건 선배들의 정보가 잘못된 것이라는 걸 뜻했다. 너무 바보 같고 수동적이었던 1학년은 멍청한 상태로 한학년의 숫자를 더하고 있었다.
2학년이 되고 학교생활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느꼈다. 나와 지민이는 동아리 투어를 하려고 학관 2층으로 갔다. 복도에 들어선 순간 잘생기고 멋진 남학생들이 한꺼번에 동아리 방문을 열고 복도를 타고 빠져나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와 지민이는 서로 말도 않은 채 자동반사적으로 그 문을 향해 가고 들어섰다. 불교 동아리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우리는 동아리 가입이 목적이라기 보다는 그냥 멋진 남자들이 많은 곳이 필요했던 거였다. 심지어 지민이는 5대 조부가 천주박해를 받은 골수 천주교 신자였는데 팻말도 확인하지도 않고 그곳에 간 것이다. 고학년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 가운데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있었다. 순간 떼로 나갔던 멋진 남학생들은 바로 옆 사진반 학생들이었다는 것을 후회처럼 깨달았다. 어서 들어와 앉으라는 선배들의 말에 우리 둘은 말없이 앉았다. 그리고 입회원서를 쓰라는 지시에 우리는 손사래를 쳤다. 오늘 처음 동아리 투어에 나섰고 이곳이 처음인데 좀 더 알아보고 결정을 해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선배들은 막무가내 원서를 쓸 것을 강요했다. 게다가 동아리 지도 교수님이 그때 테이블 가운데 의자에 앉아계셨다. 원형 탈모증에 한 남성분이었는데, 사실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해 작은 눈을 뺀 나머지 코와 입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안 났었다. 동아리 회원 선배들은 우리한테 교수님께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동아리방에 잡혀 있었다. 그렇게 20분간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우리도 입회원서를 작성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지만 그들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원서를 쓰라고 했다. 마지못해 우리는 원서를 썼고 다른 곳을 알아볼 겨를 없이 학관을 나섰다.
그 때만해도 입회원서를 쓰면 그 동아리에 다녀야하는 건 줄 알았다. 우리는 그렇게 어이없이 불교 동아리에 입단했고 그 후에 우리가 깍듯이 인사를 드렸던 지도 교수님은 그냥 우리와 같은 학년 학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보들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동아리 활동 내내 나는 지도 교수님의 그림자조차 본적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동아리 활동을 시작이 됐다. 수업이 끝나면 동아리 방에 가서 지민이와 단둘이 앉아있었다. 크게 재미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과선배들보다 동아리 선배들이 우리를 더 많이 챙겨준 탓에 어느덧 우리는 동아리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아니, 정착 당했다는 표현이 좀 더 맞을 것 같다. 점심때가 되면 동아리에 들려 식사 때가 비슷한 사람들하고 다 함께 학생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고 저녁이 되면 학교 앞에 껍데기집에 가서 안주를 저녁 삼아 술을 마셨다. 그래도 워낙 남자들이 많아서 그런 건지 본연의 성격이 나오는 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3달이 지났을까? 동방에서 설하와 단둘이 만나게 된 것이.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설하가 나와 동갑인지로 모르고 있었다. 설하가 혼자 있는 동방에 나 홀로 문을 열었던 것이다. 바로 나오기가 멋쩍어 소파 끝 쪽에 자리는 잡고 정적을 견디고 있다가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너 맨날 그렇게 말없이 앉아 있다만 가니까 동아리에 친구가 안 생기는 거야.”
“아..”
“그나저나 내가 무슨 과인 줄은 아냐?”
사실 나는 그때 설하가 무슨 과인 줄도 몰랐다. 무슨 과인 줄 알리도 없었다. 그건 비단 설하 뿐이 아니었다. 누가 무슨 과인지 파악을 못하고 있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나와 지민이는 소수의 동방 신입회원이었지만 나머지는 다수 기존 회원의 정보를 일일이 입력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는 동아리 생활에 적극성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다가 설하는 투명인간처럼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다. 언제나 말이 없었고 그렇게 동방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가는 아이였기 때문에 말을 섞을 일도 없었고.. 그래서 얼굴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평범에 평범에 평범에 평범을 더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알죠.”
그냥 그게 예의라 생각하고 그렇게 답했다. 그랬는데 설하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무슨 과?”
난감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물어볼 줄 모르고 안다고 한 것이었는데.... 나는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우리 동아리에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기계과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기계과....”
그랬더니 설하는
“알고는 있네.”
다행이었다. 찍은 게 맞아서... 안 그랬으면 정말 스무고개 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나는 융통성 있게 분위기를 전환하는 요령도 없던 터였다.
“그럼 너 내 이름은 알고 있냐?”
“네. 알죠.”
너무 당황스러웠다. 상대방 이름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자기 이름을 아냐고 물어봐서. 모르면 모른다고 알려달라면 될 것을 그걸 못해 안다고 한 것이다.
“뭔데?”
또 머리를 굴렸다.
“설하? 채설하?”
“아네.”
이게 우리의 첫 대화였다. 그는 내가 존대를 하는 데도 자신이 나와 같은 학년이란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나의 선배인 줄로 알고 있었다. 통성명을 퀴즈로 괴상하게 해버린 우리는 그 뒤로 동아리에서 사람들 속에 마주쳐도 개인적인 인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많이 어색한 사이였다. 문을 열고 나갈 때 모두에게 통상적으로 하는 인사 속에 서로를 포함시킬 뿐이었다.
그 당시 설하는 정윤 선배와 사귀고 있었다. 작고 귀엽고 우리 동아리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세련됨이 한 겹 더 코팅되어 있던 언니였다. 웃으면 한 쪽에 작은 보조개가 깊게 패여 귀여움에 귀여움을 더했다. 그런 정윤언니의 남자친구가 바로 설하였던 것이다. 둘은 그렇게 붙어 다녔고 나는 싱글인 남자 선배들과 더 많이 어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동아리의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 친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연애사가 진전될만한 사람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동아리에 열심히 나갔다. 일종의 소속에 대한 욕구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루는 동아리 총회장인 진용 선배가 나와 나란히 앉아 있는 지민이를 보며
“그렇게 허구헌 날 둘이 붙어 다니니까 남자친구가 안 생기는 거지.”
내가 왜 남자친구가 없는지 이유를 찾고 있는 사람들처럼 말끝에는
“그래서 남자친구가 없는 거야.”
로 끝냈다. 그럴 때마다 지민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사실 나에겐 타학교를 다니고 있는 연하의 남자친구 예준이가 있었고 지민이도 기계과에서 킹카로 꼽히는 남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굳이 우리가 선배의 말을 똑바로 정정해주진 않았다. 그리고 지민이는 나한테서 한 걸음 떼어 반쯤 일어났다 다시 앉았다. 나도 이에 질 새라 반대편 끝 쪽으로 떨어져 앉았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에게 멀어지며
“너 때문에 남친이 안 생기잖아.”
“내가 아니라 니가 문제야. 좀 떨어져!”
이러고 웃었다.
그러던 와중에 설하가 들어와 구석에 앉았다. 진용 선배는 설하를 보면서
“너는 맨날 말없이 구석에만 앉았다가 가고 그러니까 친구가 안 생기는 거야.”
했다. 웃을 자리가 아니었는데 나는 또 웃었다. 자기가 선배로부터 들은 말을 고스란히 나한테 써먹었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터져버린 것이다. 옆에 있던 지민이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보다 더 크게 깔깔거리며 웃었다. 웃음이 전염된 것처럼 우리는 한참을 배를 붙잡고 웃었다. 모두가 웃고 있던 와중에 설하만 멋쩍어했다. 지민이는
“구석에 앉아서 친구를 못 사귀는 설하 선배는 그래도 혼자 다니니까 여친이 있잖아요.”
했다. 지민이의 그림자 혹은 자석처럼 붙어 다니던 나는
“맞네 맞아.”라며 맞장구를 쳤다.
“누가 선배래? 설하, 너 얘네한테 니가 선배라고 뻥쳤어?”
진용 선배가 정색을 하며 추궁했다. 원래 진용 선배는 웃음이 잘 없는 사람이었다. 생김새도 깔끔하고 말도 똑 부러지게 해서 여자들이 많이 따를 법도 한데 진용 선배도 학창시절 내내 늘 싱글이었다.
“아닌데..그런 적 없는데요. ”
개미보다 작은 목소리로 설하가 말했다. 심지어 억울해 하는 것 같았다.
“뭐야? 선배 아니었어요?”
나는 설하가 아닌 진용 선배한테 물었다.
“아니야. 니네 동기야. 게다가 설하는 빠른 79야. 너희보다 한 살이 어려. 그래도 동아리는 1년 먼저 들어왔으니 선배인가?”
진용 선배가 족보들 따졌다. 아무튼 그때 나는 설하가 조용한데 좀 나와는 다른 종족이라고 생각을 했다. 약간 권위적인 구석도 있다고 생각했고.
설하와 정윤 선배가 없는 술자리에서 나는 둘이 흐지부지 끝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원래 남의 연애가 관심도 없고 당사자들과 딱히 친하지도 않아서 왜 끝났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들은 바로는 설하는 어설프고, 정윤 선배는 되바라져서 사귀는 내내 삐걱거렸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다른 설명 없이도 그랬을 것 같다는 이해가 들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 저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런 거 같더라.”며 화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설하는 소개팅을통해 만난 모 여대에 다니는 여성스러운 한 여학생과 사겼다. 내가 그녀를 본 것은 학교 앞 껍데기집 술모임에서였다. 설하가 그 자리에 그녀를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원래 동아리 모임에 이성친구들을 데려오는 사람은 별로 없었는데... 아마도 자신의 외모를 훨씬 상회하는 그녀를 마음껏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데려왔던 것도 같다. 아니면 정윤 선배에게 보란 듯이 보여주기 위해서? 이름은 주희라고 했는데 그녀는 내가 처음에 동아리 술모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별 말이 없었다. 끝을 앞으로 묶지 않고 뒤에서 삼각형을 그리고 그 아래 리본으로 묶었던 바바리코트를 입고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갔다는 기억밖에 없다. 그렇게 조용했던 그녀는 설하와 학교 교정을 자주 걸었다.
그런데 둘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깨져버렸다. 설하는 착하고 젠틀해 보였는데 뭐가 문제인지 여자들과 오래 사귀지를 못했다. 그렇게 동방에서 설하는 그녀와 맞췄던 커플링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겉면이 다각의 모양으로 커팅이 되어 이는 백금 반지였다. 그걸 버려야할지 간직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나는 설하에게 버릴 거면 나한테 버리라고 했다. 학교 오는 길에 있는 금은방에 가면 귀걸이로 바꿀 수 있으니 나는 그걸 가져야할 것만 같았다. 설하는 흔쾌히 반지를 나한테 버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그걸 아주 자그마한 14k 귀걸이로 바꿨다. 남한테 쓸모없는 물건이 나에게 소중한 물건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설하의 기분과 심정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참 뿌듯했다.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것같은 느낌마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민이와 나는 동방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우리보다 한 학년 아래 후배인 우빈이가 동방문을 힘있게 활짝 신나게 웃으며 들어왔다. 뒤에는 설하를 비롯한 동방 남자애들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우빈이는 깔깔대며
“누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북한학 수업을 듣고 있는데 설하형이 책에다가 필기를 하는 거야. 그것도 뭔가를 반복적으로.. 그래서 뭘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 해서 가까이 가보니까 거기에 ‘국수주희’, ‘국수주희’, ‘국수주희’ 이게 한 100번은 넘게 적혀 있더라.”
동방에 있는 모두가 빵 터졌다. 그곳에 웃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설하 뿐이었다.
나와 지민이는
“국수주희가 뭐야. 하하 쟤 국수주의 맞춤법도 모르는 거 아니야?”
“아니야.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닐걸? 주희가 너무 보고 싶어서 철자를 바꾼 거겠지.”
“야 솔직히 말해. 너 바보지? 바보 맞네~”
우리는 또 한 번 웃다가 심각한 표정의 설하를 보고 서로에게 눈빛을 보내며 웃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더니 우빈이는
“그럴 줄 알았어. 설하형 주희가 아영누나랑 비슷하게 생겨서 사귄 거 아니야.”
분위기가 싸해졌다. 사실 주희를 설하에게 소개시켜준 것은 우빈이었다. 그런데 우빈이 입에서 설하와 주희가 사귄 것이 나와 연결되는 이유라는 언급을 해 어정쩡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지민이는 이 말을 받아쳐서
“설하, 그런 거였어? 그럼 아영이한테 고백을 하고 아영이랑 사귀지 닮은 애를 사귈 건 또 뭐람?”
그랬더니 우빈이는 말을 돌렸다.
“자자 국수주희, 국수주희라고 들어봤어? 국수주희? 날이면 날마다 오는 국수주희가 아니라고요!”
우리는 또 한 번 단체로 크게 웃었다. 역시나 어쩔 줄 모르며 어색해 하는 건 설하 단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