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이란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다"는 말을 했다지요(다케시가 '하나-비' '소나티네' '기쿠지로의 여름' 등의 영화로 한국에서 나름 인기를 끌었을 때, 그래서 다케시의 에세이마저 국문으로 번역되어 출간되던 시기에 유행하던 말로 기억합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들리기는 하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저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갑자기 늘어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흔히 가족을 '애증의 관계'라고 하지요. 사랑하는 것 같긴 한데 막상 마주하면 거슬리고, 오랜만에 만나면 잠깐 반가운데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면 짜증나는. 재산 분쟁이나 학대와 같은 불행한 일을 겪지 못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지인들로부터도 이런 불평을 들은 적이 있는 것을 보면, 과거의 불운이 애증의 필요조건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이런 애증이 '가족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라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운명의 굴레에 속박되어 저주밖에 할 수 없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처럼, 누군가에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은 것 이외에는 가족에게 실제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이거든요. 물론 상대방의 부당함을 설득하거나 심지어는 의절할 수도 있지만, 분가하여 물리적으로 떨어져 산다면 명절에 하루이틀 웃는 척 하는 것만으로도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 굳이 극단적인 조치까지는 취하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지요.
제 경우에는 주로 가족의 '원치 않는 호의'가 애증의 결과를 불러오는 편입니다. 분명히 저는 필요 없다고 말했고 객관적으로도 불필요한 일임에도, 제 가족은 지레짐작하여 호의(라고 생각하는 것들)를 베풉니다. 실제로 그 호의는 저에게 어떠한 효용가치가 없음에도(심지어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킴에도), 어쨌든 무언가를 받은 저는 일종의 부채의식을 갖게 되고, 그에 따라 보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양 당사자는 각자 호의와 보답을 자신의 쓰레기통에 처넣으며 '적어도 할 일은 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물론 뭔가를 제공할 만한 여유가 있는 가족을 둔 것이, 서로 헐뜯고 소송하는 가족보다는 낫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저에게는 가족을 '의절'할 어떠한 객관적인 이유도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이렇게 가족에 대해 불평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결코 행복한 처지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가족이 -100을 제공함에도 나는 계속 +100을 주어야 한다면?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합니다.
한국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통해 성장하면서 성찰의 시간을 가질 여유가 부족했듯, 저와 제 가족들도 먹고사니즘에 급급하여 어느 정도 자리잡기 전까지는 깊은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장기간에 걸친 소통의 단절이 지금의 애증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랬다면 과연 달라졌을까'는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그래도 사랑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