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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Nov 28. 2023

스치는 인연


계절의 시간은 늘 정확하다. 얼마 전 푸른 은행잎으로 물들인 거리엔 앙상한 가지만 남고 추운 바람을 몰고 와 낙엽만이 나뒹군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엔 기운으로 먼저 알아본다. 저항적인지 유순한지 아니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매너가 있고 없는지 등 상대를 만날 때 가지는 감정과 느낌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읽히고 풍겨지고 내뿜어진다 할까.


오전 일찍 진행한 수업엔 담당자는 일찍 발주를 했다 하지만 비가 와서 늦게 물건이 왔다. 당최 늦지 말라 신신당부했건만 준비 시간이 늦을 수밖에. 더구나 담당자가 수업 전 문자를 보내지 않아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였다. 정시에 천천히 수업을 진행했지만 처음부터 어긋난 단추였는지 한 사람의 표정이 신경 쓰였다.


오레오 쿠키 반죽으로 케이크 바닥을 만들어 굳히고 크림치즈와 생크림, 블루베리 퓌레를 섞어서 틀에 부어 굳히기를 반복했다. 어렵고 복잡한 과정은 아니었지만 제법 만들고 기다리고 치우고를 반복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설명할 때마다 눈을 마주하지도 않고 2인 1조로 진행한 수업엔 조원과 발맞춰 양을 나누지 않고 혼자 욕심을 내 재료를 채우는 게 거슬렸다. 짝꿍인 분은 이번 수업 내내 오신 분이라 푸근한 인상에 다른 이를 배려하는 여유가 있었지만 젊은 분은 그렇지 않았다. 자기의 케이크만 채우는데 급급했으니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서로 잘 나눠 넣으시라고 명드렸으나 그때뿐 듣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이 수업에 집중하거나 강사의 말을 는 것은 아니니 같은 돈을 내고 듣는 수업엔 여러 모양의 사람들이 있다. 자기만 아는 사람은 젊으나 나이 드나 달라지지 않는다. 몸에 배어 그러니 어떻게 말 한마디에 바뀔 수 있을까. 상대가 별말 없이 이해해 주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거슬리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수업이 끝나고 블루베리 무스케이크를 한 개씩 들고서 돌아간다. 그래도 3시간 동안 같이 시간 보내고 수업을 했으면 눈인사 정도는 나눌 만 한데 아무 말 없이 쌩하고 가버린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구와 통화를 하다 보니 다른 이의 칭찬과 표현에 반색하는 나를 보고 자라면서 그런 경험이 없어 목말랐나 보다 했다. 물론 알고 있으나 이제야 깨닫는다.


혼자 남매를 키워야 했던 젊은 엄마는 사는 게 팍팍하고 정신없었을 것이다. 늘 혼자였던 나는 어른의 그늘 아래 자라지 못해 살가운 칭찬과 정이 그리웠다. 딸과 남편의 관계를 보고 조카와 동생 사이를 보며 깨닫는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 텐데 난 왜 그런 사랑과 관심, 따뜻한 말 한마디 듣지 못해 그리워했는지. 인정받고 싶어 했고 욕구가 강했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드러내지 못할 상황이라 알지도 못했다. 미처 내가 그런 결핍이 있는 줄 깨닫지 못했으니 어쩌면 자신을 그토록 몰랐을까.


평생에 걸쳐 자신이 가지지 못하고 누리지 못했던 것은 차곡차곡 켜를 만들고 거름이 되어 일생을 갈망하게 된다. 가난이었다면 돈을, 사랑이었다면 애정을, 인정이었다면 따스한 말 한마디를 그리워하게 된다. 나도 그랬다. 반백살이 되니 알게 되는 것은 사람의 태도를 보고 대략 짐작할 수 있다는 것과 얼굴에서 드러나는 표정과 말투에 묻어나는 인격이라는 것이다. 물론 보이는 게 다가 아니겠지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스치듯 지나는 수많은 인연 속에 하루 섭섭함을 날려 보낸다. 언제쯤 아무렇지 않은 하루를 보내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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