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자작가 JaJaKa
Jun 24. 2024
어릴 때 나는 키가 작고 왜소했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나는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꽂고(그런데 왜 손수건을 가슴에 꽂은 걸까요?) 맨 앞인가 맨 앞에서 두 번째에 서 있었을 거예요.
초등학교 때에는 또래의 남자 아이들 뿐만 아니라 여자 아이들에 비해서도 작았습니다.(초등학교 때는 여자 아이들이 남자 아이들에 비해 키나 체격이 더 컸던 것 같네요.)
중학교에 입학을 해서도 키가 자라지 않았고 나는 4분단으로 배치된 반에서 맨 앞줄에 앉았습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속도가 느려서 그랬는지 엄마는 내 키와 마른 체형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어요.
키가 자라지 않은 것이 편식 때문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어요. 입이 짧아서 그런 거라며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노상 들어야 했지요.
나는 어렸을 때 고기반찬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비린내 나는 음식을 싫어했죠. 이렇게 얘기를 하면 내가 입이 짧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되는 건가요?
엄마는 콩나물을 많이 먹어야 키가 큰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고기반찬이 귀한 시절이라 콩나물이 제일 만만한 식재료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찌 됐든 밥상에 콩나물이 올라오는 빈도수가 꽤 높았어요. 콩나물 무침, 콩나물 국, 콩나물 밥 등 콩나물이 들어간 반찬이나 국이 자주 밥상에 올라왔거든요.
나는 엄마의 강요에 의해서건 내가 콩나물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었는지 콩나물을 많이 먹으며 자랐어요. 그렇게 콩나물을 많이 먹었지만 내 키는 좀처럼 자라지 않았어요.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을 때에도 나는 맨 앞줄에 앉아야 했죠. 아마 맨 앞줄에 앉았으니 그중에 가장 키가 컸어도 8번이거나 8번보다 앞 번호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러던 내 키가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를 지나면서 갑작스레 크기 시작했어요. 겨울방학이 지나고 난 뒤 고등학교 2학년 때 반에서 내 번호는 33번인가 그랬을 거예요. 거의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방학 동안 뭐 대단한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니고 딱히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초반에 키가 크는 아이들이 있다면 뒤늦게 키가 크는 아이들도 있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반에서 내 번호가 41번이었을 거예요. 늘 교실 앞에서 칠판을 바라보다가 교실 뒤편에서 칠판을 바라보는 날이 오다니...
엄마는 이 모든 것이 콩나물을 많이 먹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글쎄, 그럴까요?
콩나물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꼭 콩나물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지 않나 싶어요. 그러나 콩나물의 도움도 어느 정도 있었으리라 추측을 해봅니다.
어렸을 때 콩나물을 많이 먹어서 질릴 만도 하지만 콩나물은 지금도 내가 즐겨 먹는 채소 중의 하나예요. 콩나물이 아직 싫지 않은 것을 보면 콩나물이 제게 잘 맞는 식재료인가 봅니다. 그러나 질긴 콩나물이 들어간 음식은 사양합니다. 뭐든 질긴 음식을 먹으면 잇몸이 부어서 고생을 하거든요.
나는 콩나물 무침도 좋고 콩나물국도 좋고 해물 찜 등 찜 요리에 들어간 콩나물도 좋아합니다.
결혼 전 내 생일에 엄마는 미역국 대신에(미역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를 위해) 콩나물국을 끓여 주시고는 했어요.
어렸을 때 엄마의 심부름으로 슈퍼에 가면 붉은색 고무 다라에 들어있는 콩나물을 집어 까만 비닐봉지 가득 콩나물을 담아주시던 아주머니의 손이 떠오릅니다. 신문지를 깔고 엄마와 누나가 둘러앉아 콩나물을 다듬던 모습도 떠오르네요.
그리고 내가 사 온 콩나물이 저녁 반찬으로 식탁에 올라오면 맛있게 먹던 모습까지도.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시루에서 키운 콩나물은 서민들의 식탁에 빠지지 않는 귀한 채소였어요. 내 키가 자라는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해준 콩나물.
오늘 저녁 반찬메뉴가 마땅치 않다면, 끓일 국이 마땅치 않다면 콩나물은 어떠신지.
두툼하고 억센 콩나물이 아닌 시루에서 키운 부드럽고 식감이 좋은 콩나물 한 봉지면 풍족한 식사는 아닐지라도 맛있는 한 끼 식사는 되지 않을까 싶네요.
202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