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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Jan 09. 2024

생선초밥을 처음 먹어보던 날

1995년 어느 날이었을 거예요. 제가 초밥이란 것을 처음 먹어보았던 것이.     


사실 제가 비린 음식은 좋아하지 않는지라 생선회나 생선초밥을 먹을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 도면 가게의 숫자나 가격적인 측면에서 생선초밥을 먹기가 쉽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은데...     


제가 생선초밥을 처음 맛보게 된 것은 그때 제가 좋아하던 한 여성 때문이었어요. 그녀가 생선초밥을 좋아한다고 했는지 먹어 본 적이 있는데 맛있었다고 했는지 하는 말을 듣고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어느 날 큰마음을 먹고 제법 분위기가 있는 초밥가게에 그녀를 데리고 갔어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미리 가격을 알아보고 갔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그래서 생선초밥이 얼마나 하는지 몰랐어요. 제법 비싸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메뉴판을 열어보고 순간 움찔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비쌌습니다. 너무 고급인 곳으로 갔던 것일까요? 순간 바지 주머니 속 지갑에 들어있는 현금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테이크를 먹는 것보다 생선초밥이 비쌀 줄은 몰랐습니다. 눈으로는 메뉴판을 보고 있지만 입술은 바짝 말랐습니다. 지갑 속의 넉넉하지 않은 돈 때문이었어요.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 전 학생신분일 때라 늘 쓸 돈이 부족했던 제게 이런 고급 레스토랑은 사치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젊은 혈기와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허세를 부리게 했던 것 같아요.


그녀가 메뉴판을 살펴보며 비싼데, 괜찮겠냐고 묻더군요.

속으로는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그걸 내색할 수는 없었지요. 앞에 앉아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좋아하는 여자한테. 그리고 한 턱 낸다고 분위기가 좋은 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 바로 나인데.  

   

너무 비싼 것만 아니면 괜찮으니깐 먹고 싶은 것을 시키라고 했어요.

가급적 메뉴판 상단에 있는 것으로,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접시에 무슨 초밥이 나왔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몇 가지 종류의 생선초밥과 새우초밥 등이 접시에 정갈하게 나왔던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네요. 흐릿하게 남아있는 제 기억 속에는 가격에 비해 초밥의 양이 아주 적었다는 것과 마시라고 가져다준 물병에 레몬인가 라임이 들어 있었다는 것밖에는.     


지금은 물병에 레몬이나 라임을 넣어서 주는 곳을 더러 보기도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저는 투명한 물병에 레몬이나 라임이 들어있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조금은 신기했던 것 같아요. 물에서 은은하게 레몬향이 나는 것이 물맛도 좋았던 것 같고요.      


제 앞에 있는 여성은 오래간만에 먹는 초밥이 너무 맛있다며 좋아했습니다. 일본 요리사가 만든 거라 더 맛있는 것 같다고, 적당히 들어있는 고추냉이와 신선한 회, 적당한 양의 밥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맛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쩌면 제가 그리 기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저에게도 초밥을 먹어보라고 해서 저도 처음으로 초밥을 먹어보았습니다. 글쎄요, 처음 먹어보았던 초밥은 제게 그냥 그랬습니다. 이런 걸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먹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별 맛도 없었고 양도 적고 그냥 그랬던 것 같아요.    

 

워낙 나온 양이 적어서 이것으로 저녁 양이 될지 걱정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더 시킬 여력이 되지 않던 저는 맛도 잘 모르겠고 제 앞에서 너무나 맛있게 먹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그녀에게 제 것을 양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 입맛에 잘 맞지 않는다며 제 초밥도 좀 먹어달라고 했어요.      


저는 대신 물을 많이 마셨습니다. 물맛이 좋았거든요. 제 기억에는 물을 한 통 다 마시고 새로 갖다 달라고 했던 것 같아요. 무슨 물을 그리 많이 마시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아마 중간에 화장실도 한번 이상 다녀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그날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었어요. 모처럼 근사한 곳에 와서 그랬는지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눈동자를 보며 제 얘기를 듣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네요.     


시간이 늦어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게 되었어요.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거리를 걷던 그 밤, 왠지 달빛이 유난히 수줍어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녀가 사는 곳을 향해 걸어가면서 얘기를 나누는데 어느 순간부터 집중이 잘 되지가 않았어요.      


그 이유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였어요. 물을 많이 마셔서 그런 건데 물을 많이 마신 건 배고파서 그러지 않았나 싶네요. 물론 물이 맛있기도 했고 입술이 말라서 물을 많이 마신 것도 있는데 그녀를 바래다주는 도중에 화장실이 급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주택가여서 근처에 화장실도 없었는데 참 난처하더군요. 처음에는 참을 만했는데 점점 한계에 다다르는 느낌이 들어서 같이 나란히 걷다가 어느 순간 제가 점프를 하기도 하고 다리를 살짝 꼬아서 걷기도 했어요. 괜히 앞으로 달려 나가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녀가 왜 그러냐고 물었을 때 지금 이렇게 둘이 걷는 것이 너무 좋아서 그런 거라고 둘러대었지만 어떻게든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을 참아보려고 했던 행동이었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말하지 못했어요.      


영화에서 보면 사랑에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몇 초라고 하던데...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랑은 예기치 않게 살며시 다가오는 것 같더라고요.     


1995년 도면 거의 29년 전이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풋풋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젊음, 고뇌, 방황, 청춘, 친구, 술, 연애, 순정, 낭만, 사랑, 가벼운 주머니, 불확실한 미래......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건너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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