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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Oct 19. 2023

'음치'라고 불리던 청년

3. 노래는 생목으로

노래를 못해서 당했던 굴욕적인 또 하나의 사건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에 우리는 그룹별로 노래를 부르는 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나를 끼워주지 않는 거였다. 내가 화음을 망쳐놓는다고 하면서 나를 끼워주는 그룹이 없었다.      


나중에 선생님이 확인해 보니 나만 그룹이 없는 걸 알게 되었다. 왜 쟤만 안 끼워주냐고 하면서 한 그룹을 지정하며 저 그룹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그 그룹 아이들은 입이 뾰로통 나와 가지고 나에게 말했다.     


“너는 그냥 입만 벙긋대라. 노래는 하지 말고 알았지?”     


나는 알았다고 하고는 다른 아이들이 노래를 하는 동안 같이 부르는 척 입만 벙긋댔다. 내가 무슨 붕어도 아니고 입만 벙긋대는 내 모습을 보니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앞에서 우리 그룹이 노래하는 것을 지켜보던 한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야 너 입만 벙긋대고 노래 안 하는 것처럼 딱 보여. 좀 제대로 노래 부르는 척 연기 좀 해야겠다. 잘 좀 하자.”


나는 노래 부르는 척 얼굴표정이나 입모양을 크게 벌렸고, 그제 서야 아이들은 만족한 듯 연습을 마쳤다. 그렇게 시험을 보았고, 다른 아이들은 자기들 때문에 내가 시험을 볼 수 있었다며 나에게 매점에서 한턱 쏘라고 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나니 노래에 대한 자신감은 더욱더 떨어졌고, 남들 앞에서는 가급적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었다.      


학창 시절 어느 날인가 내가 방에 누워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거실에 있던 엄마가 어느 틈엔가 와서는 내 방문을 슬며시 닫는 거였다.


내가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서 엄마한테 왜 방문을 닫았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아무리 자식이라 해도 노래 듣기가 거북하다고 노래를 못해도 너무 못해서 방문을 닫았다고 했다. 한마디로 소음공해라고 했다. 어머, 웬일!     


근데 우리 가족 중에 나만 엄마를 닮아서 음치이다. 솔직히 엄마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내가 엄마보다 가창력이 그래도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그걸 알까 모르겠다.      


대학교 1학년 때인가 처음으로 노래방이라는 곳에 갔다. 그때는 시간제가 아닌 500원짜리 동전을 교환해서 한 곡당 500원 동전을 넣고서 노래를 부르던 방식이었다.


나는 과 친구 세 명과 노래방에 가게 되었다. 내가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나는 친구들 노래를 열심히 들어주는데 그 애들은 내가 노래만 부르면 한 명은 노래를 고른다고 노래책을 붙잡고 넘기느라 바쁘고 다른 두 명은 무슨 못다 한 이야기가 있는지 내 노래는 안 듣고 둘이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내가 돈을 냈는데도 불구하고 지네들은 두곡씩 부를 때 나에게 노래 한곡 하라며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내가 뭐라고 항의를 하면 같이 와주는 게 어딘데, 라며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물론 나를 놀리기 위한 장난이었겠지만.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시험을 마치고 사람들이 없는 낮에 혼자서 시내에 있는 한 노래방에 갔다. 스트레스도 풀 겸 노래를 부르다 보면 좀 늘겠지 하고 혼자서 노래방에 갔다. 주인이 혼자 왔냐며 얼마나 바꿔줄까 해서 3000원을 동전으로 교환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노래를 불렀다.      


한 세곡 정도 불렀을까 갑자기 주인이 방에 들어와서는 500원 동전 세 개를 노래방 기계에 더 넣어주는 것이다. 나보고 노래 연습을 아주 많이 해야겠다며...


갑작스러운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배려는 고마웠지만 나는 그 노래방에 다시는 가지 않았다. 아마도 창피했었던 것이리라.     


당연한 얘기겠지만 지금도 노래를 못한다. 그런데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는 얘기를 들을 때도 있다.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아하는데 막상 따라 부르면 음이 안 맞는다고 한다.

내 귀에는 음이 맞게 들리는데 거 참.      


가끔씩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노래를 가급적 부르지 않으려고 한다. 과거에는 술 한 잔 들어가면 술기운에 마음껏 소리를 질러대기도 했지만.    

  

가끔가다 내가 노래를 하면 아내는 웃긴단다. 뭐가 웃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기분이 좋을 때 이야기다.     

 

한때는 나도 노래를 정말 잘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대로도 괜찮다. 나같이 노래를 못하는 사람도 있어야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니깐.      


많은 생을 살아오면서 노래를 못할 때도 있고 노래를 잘할 때도 있었을 것이다. 이번 생에는 부르는 것보다 듣는 것으로 만족을 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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