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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Aug 31. 2023

'음치'라고 불리던 소년

2. 음은 틀리라고 있는 것 아니었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니 어느새 1학년 2학기가 되었다. 1학년 2학기에도 음악 수업시간이 있었고, 학기 말이 되니 여지없이 실기시험을 본다고 했다.    

  

그런데 이걸 어쩐다. 음악 선생님이 1학기 때와 같은 선생님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1학년 2학기 음악 실기시험 노래는 홍난파 작곡의 ‘사공의 노래’였던 것 같다.    

  

실기시험이 다가올수록 나는 초조해져 갔고 어떻게든 지난번에 비해 조금이라도 나은 실력을 보이기 위해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제가 기억하는 그 당시 상황이 대략 이러했음을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느 날 내가 집에서 노래연습을 하고 있는데 누나 왈      


“도저히 안 되겠다. 우리 가족 중에 너만 어떻게 이렇게 태어났대. 엄마, 얘만 이렇게 음치로 낳았어. 너는 연습해서 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그냥 이번에도 포기하고 기본점수에 만족해.”      


누나의 말을 들으니 더 기운이 빠지고 시험 보기가 더욱 두려워졌다.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우리 반 음악 실기시험을 보는 날이 되었다. 음악교실에 앉아 있었지만 다른 아이들의 노래 부르는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내 심장은 거의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요동치고 있었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갔으며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화장실은 갔다 와도 왜 그리 또 가고 싶은 것인지.     


노래를 부르지 않고 이 시간을 건너뛸 수는 없을까? 시간을 빨리 돌릴 수는 없을까? 속이 좋지 않다고 어지럽다고 하면서 바닥에 쓰러져 버릴까? 등 여러 가지 생각으로 괴로워하는데 내 이름을 호명하는 소리에 잠에서 깬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반 아이들은 이제 곧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질 것을 안다는 듯이 모두들 하던 것을 멈추고 주저주저하며 앞으로 걸어 나가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잠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킥킥킥 웃는 소리도 들렸던 것 같다. 다들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단상 앞에 선 나를 재미있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오르간이 연주되기 전 잠시 동안 모든 소리가 없어진 듯 음악교실은 고요해졌다. 나는 앞을 바라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머리가 백지상태가 된 것처럼 멍해졌다.

오르간 연주가 시작되고 내가 막 시작하려는 찰나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집중 안 하니. 들어가는 데를 놓쳤잖아. 정신 똑바로 차려 알았어?”     


곧바로 아이들은 키득키득 웃어댔고, 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시 반주가 시작되고 나는 노래를 불렀다.     


“두 둥∼실.”     


여지없이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음이 안 맞잖아. 두 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이렇게 하라고.”     


내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고는 바랐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욱더 커져갔다. 나는 다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두 둥∼실 두리둥실.”     


선생님은 오르간을 쾅하고 치면서 연주를 중단하고서 말했다.


“그 음이 아니라고 했지. 두 둥∼실 두리둥실. 이렇게 부르라고 했잖아. 이게 안 되니? 어?”     


선생님은 손에 든 지휘봉으로 내 머리를 툭툭 치면서 제대로 하라고 다그쳤다. 나는 아픈 것보다는 창피함에 도망치고 싶었다. 아니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러질 못했다. 지금 학교를 다녔다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깨가 축 쳐진 채로 나는 다시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해야만 했다. 나는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거의 울먹거리는 소리로 노래를 했다.     


“두 둥∼실 두리둥실.”     


바로 이어서 오르간을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그냥 들어가. 어떻게 저 정도로 음을 못 맞출 수가 있어?”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자리로 돌아가는데 뒤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혹시 지난 학기에 걔지?”     


반 아이들이 큰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 선생님. 한 소절도 다 못 불렀던 애예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앉은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다음 학생이 호명되기 전까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계속해서 내 귀에 들렸다.     


1학년 2학기 음악 실기시험은 예상대로 40점 만점에 기본점수인 20점이었다. 우리 반 최저 점수를 받은 것에 대한 실망감보다는 시험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반 아이들의 놀림은 방학 전까지 쭉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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