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 제가 참 좋아하는데요.
오늘은 2022년 4월 9일.
벚꽃이 만개한 주말이라 벚꽃을 보지 않는 것이 이상한 날이었지만, 오늘은 하늘하늘한 벚꽃 대신 푸른 바다를 보러 가기로 한 날이다. 얼마 전부터 뻥 뚫린 바다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날 밤부터 어느 바다를 보러 가야 할까 아무래도 동해가 예쁘지 않나 지도 앱을 켜고 이리저리 검색해보며 고민을 해봤지만,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엔 아무래도 동해는 무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쉽긴 하지만 바다는 보고싶었기에, 아예 가까운 곳인 오이도에 드라이브겸 다녀오기로 하였다.
4호선 종점 오이도.
내 기억 속 오이도는 대학 시절 동기들과 기모임을 한답시고 무한 리필 조개구이집에 가서 리필이 안 된다고 할 때까지 조개를 먹으며 놀다 붉은 등대 앞에서 찍은 사진이 전부다. 오이도의 바다가 어땠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추억을 되새기며 오이도에 도착했다. 우선은 금강산도 식후경. 어스름하게 해가 질 무렵에 도착해 우선 조개구이를 먹었다. 대학교 때와 맛은 비슷비슷한 것 같았다. 그때와의 차이점은 차를 가져와서 술을 먹지 않았다는 점? 그래서 조개구이 리필을 한 번밖에 못했다는 점? 어쨌든 나름 만족스러운 저녁을 먹고 나왔더니 이미 해는 수평선 너머로 저물었고, 밤이 될락말락 하는 오이도의 검푸른 밤바다가 나를 반겼다.
사실 나는 걸어서 20분이면 바다가 있는 곳에서 19년을 살았다. 그것도 무려 동해. 여름이면 여름, 겨울이면 겨울, 언제 가도 짭짤한 바다 냄새가 나를 시원하게 했다. 몰아치는 파도를 가진 바다. 깔깔대며 물장구치는 사람들이 한가득한 한여름의 바다. 반짝이는 윤슬을 품은 바다. 비 오는 바다까지. 바다에는 다양한 표정이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잔잔한 밤바다의 표정에서 가장 큰 위로를 받는다.
낮의 바다가 활발함이라면, 밤의 바다는 차분함이다. 이상하게 맨발로 모래사장에 서서 밤바다를 보고 있으면,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이 사실은 다 별일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건너편 술집에서 들리는 왁자지껄한 소리, 크고 작게 건너오는 파도 소리, 얼굴을 스치는 짠 바람. 밤바다는 너무 깊고 차분해서 나의 고민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삼키고, 다 괜찮다고 나를 위로해준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마음이 답답하거나 복잡할 때 밤바다를 찾았다. 고등학교 시절, 야자를 하다 미래가 막막하게 느껴질 때면 친구를 꼬드겨 바다로 향했고, 20대 때도 답답한 일이 생기면 곧장 고향으로 가는 KTX 표를 끊곤 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요즘 밤바다가 보고 싶었을까? 요즘의 나는 평화롭고 행복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오이도의 어스름한 저녁 바다가 새카만 밤바다가 되도록 바다에게 계속 되물었다. 바다의 짭짤한 내음을 오래 맡아서 그런지 어느 순간 내가 사해에 담가진 듯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 조금 조급했지.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은 모자라고 그러다보니 해야할 일들이 쌓여서 답답했지. 부지런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여유가 필요해서 밤바다를 찾았던 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이 많고 그 일들을 해나가는 과정이 좋은데, 조금 더 여유롭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가? 여유가 넘치는 삶은 좋은 삶인가? 어느정도의 여유를 가져야 하는가? 잘 모르겠다.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그건 더더욱 모르겠지. 바다를 오래 보다 보니 별생각이 다 드는 것 같다.
오늘의 고민도 답답함도 오이도의 밤바다에 두고 가야지.
고마운 밤바다. 밤바다는 나를 항상 시원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