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
어느덧 완연한 봄이다.
아직 서울의 벚꽃은 만개하지 않았지만, 걸을 때마다 나풀대는 바람이 더 이상 날카롭지 않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길이 밝아졌고, 지상을 넘나들 때 언뜻 보이는 잔디들도 눈에 띄게 푸릇푸릇해졌다.
오늘 퇴근길 한강에 반사되는 노을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워서 잠깐 동안 내가 사람이 넘쳐흐르는 지하철에 서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매우 잠깐이었지만^^)
마침 최근 애플뮤직이 자동으로 추천해준 구구 돌스의 Iris의 클라이맥스 부분이 귀에 울려 퍼지고 있어서 더욱 그 순간은 나를 완벽하게 했다.
그때의 느낌, 분위기, 풍경 같은 것들이 노래와 어우러져서 노래 속에 녹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에게 오늘의 이 순간은 구구 돌스의 Iris 같은 순간이 되는 것이다.
이런 순간들은 너무 짧아서 오히려 더 아름답다.
문득 손원평의 '아몬드'에서 5월의 나태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가장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라고 한 문장이 생각나는 날이었다.
계절은 어느덧 5월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중략)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오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 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 내가 가장 다르다고 생각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게 움직이고 빛난다. 나와 누워있는 엄마만이 영원한 1월처럼 딱딱하고 잿빛이었다.
- 손원평 '아몬드' 중
새삼스럽게 겨울이 봄으로 바뀌고 새로운 잎을 틔우는 과정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죽은 것처럼, 새로운 잎은 절대 나타나지 않을 것처럼 조용하던 나무들이 갑자기 어느 날 돌아보면 그 잿빛 속에서 푸르른 잎을 틔워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따뜻해지면 잎을 틔워내기 위해 애쓰는 나무의 모습보다, 추워지면 가진 것들을 놓아두고 겨울을 보내며 묵묵히 그 순간들을 견디는 나무의 모습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나무로 치면 어떤 상태일까
봄일까 여름일까 가을일까 겨울일까
어쩌면 겨울이 없어 나이테도 없는 동남아 어딘가에 있는 어떤 나무일지도 모른다.
딱히 결론을 내고자 쓴 글은 아니고, 문득 집 가는 길에 본 한강에 반짝이는 윤슬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지하철이라 사진을 못 남긴 게 아쉬울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