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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 Apr 06. 2022

겨울이 봄이되는 나날들 속에서

순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

어느덧 완연한 봄이다.


아직 서울의 벚꽃은 만개하지 않았지만, 걸을 때마다 나풀대는 바람이 더 이상 날카롭지 않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길이 밝아졌고, 지상을 넘나들 때 언뜻 보이는 잔디들도 눈에 띄게 푸릇푸릇해졌다.


오늘 퇴근길 한강에 반사되는 노을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워서 잠깐 동안 내가 사람이 넘쳐흐르는 지하철에 서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매우 잠깐이었지만^^)


마침 최근 애플뮤직이 자동으로 추천해준 구구 돌스의 Iris의 클라이맥스 부분이 귀에 울려 퍼지고 있어서 더욱 그 순간은 나를 완벽하게 했다.


그때의 느낌, 분위기, 풍경 같은 것들이 노래와 어우러져서 노래 속에 녹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에게 오늘의 이 순간은 구구 돌스의 Iris 같은 순간이 되는 것이다.


이런 순간들은 너무 짧아서 오히려 더 아름답다.




문득 손원평의 '아몬드'에서 5월의 나태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가장 어려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라고  문장이 생각나는 날이었다.


계절은 어느덧 5월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중략)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있는 가지마다 총천연색 꽃이 피오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했다. 한 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 내가 가장 다르다고 생각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게 움직이고 빛난다. 나와 누워있는 엄마만이 영원한 1월처럼 딱딱하고 잿빛이었다.
- 손원평 '아몬드' 중


새삼스럽게 겨울이 봄으로 바뀌고 새로운 잎을 틔우는 과정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죽은 것처럼, 새로운 잎은 절대 나타나지 않을 것처럼 조용하던 나무들이 갑자기 어느  돌아보면  잿빛 속에서 푸르른 잎을 틔워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따뜻해지면 잎을 틔워내기 위해 애쓰는 나무의 모습보다, 추워지면 가진 것들을 놓아두고 겨울을 보내며 묵묵히 그 순간들을 견디는 나무의 모습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나무로 치면 어떤 상태일까

봄일까 여름일까 가을일까 겨울일까

어쩌면 겨울이 없어 나이테도 없는 동남아 어딘가에 있는 어떤 나무일지도 모른다.


딱히 결론을 내고자 쓴 글은 아니고, 문득 집 가는 길에 본 한강에 반짝이는 윤슬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지하철이라 사진을  남긴  아쉬울 따름!


오늘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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