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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테난조 Nov 30. 2023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2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2화






4. 전화를 끊었다. 협상 실패다. 당연하다 믿었던 게 부정[259]]당하는 기분이다. 이 정도 위로금은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액수다. 누가 세입자까지 고려하나? 보통의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단번에 해결하리라고 생각했기에 적잖은 당황과 부끄러움은 동시에 밀려온다. 임 대표는 2,000만 원을 위로금으로 지급하라고 했다. 그러려고 했다. 승기가 조용히 불러, 내게 말한다.

 


“효상아, 처음부터 2,000만 원을 다 부르지는 마. 협상에는 여지가 있어야 해. 만약에, 2,000만 원을 거절하면, 큰 손해니까. 사실, 세입자에게 위로금을 주는 게 이미 손해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 승기야, 무슨 말인지 잘 알아. 고맙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임 대표도 정호 님에게 보여줄 성과가 필요한데, 지금 위로금 이야기도 어쩌면 블루 고스트의 방향이 아닌, 정호 님의 독단적인 생각일 수 있어. 우리 때문에, 임 대표 때문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줘야지. 안 그래? 그러니 최대한 위로금을 줄여서 협상에 성공했으면 해.”  

 

“네 말이 맞다. 승기야, 그럼 얼마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1,000만 원부터 시작해. 그것도 많은 금액이야. 그들한테는.”

 


어차피, 이 위로금의 출처는 부자의 돈이다. 부자는 우리가 그들의 돈으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설사, 안다고 해도 변명거리는 많다. 그리고 애초에 그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도 관심 없다. 그저 분기별로 수익만 챙기면 된다. 현금 유동성이 커진 지금, 카테난조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른다. 인간이든 회사든 돈이 많아야 불안함은 사라진다. 아무것도 안 사고, 안 먹어도, 통장에 적힌 0의 자리만 세면 자연스레 배부른 그 느낌, 다들 알 거다. 카쿠르터를 통해 모집한 투자자의 투자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재건축 사업과 관련한 곳에 대부분 쓰였다. 집주인이 여유자금이 있다면, 보상금만 받고 이사하면 된다. 보상금은 꽤 크다. 하지만, 보상금으로 이사할 여유가 없거나, 돌려줄 전세금이 없는 집주인은 보상금을 거절한다. 그대로 살거나, 다른 세입자를 받겠다고 한다. 하지만, 눈앞에서 발전하는 경제특구지역을 바라보며, 가망 없는 자투리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기회만 있다면,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들도 재건축 사업에 동참해 새 아파트를 가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럴 여유는 없다. 그렇다고 순순히 떠날 마음도 없다. 보상금 정도로는 욕심은 채워지지 않아서다. 처음에는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이사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아니요, 하고 싶지 않아요. 누가 뭐라고 해도 이곳은 소중한 곳입니다.”

 

“정말, 소중한 동네입니다. 이 동네를 떠나서 어디서 살라는 말입니까?”

 

“보상금이 전부가 아니지. 개발이 전부가 아니라고. 마을이 변하는 게 싫어. 당신네 들어와 전부 바꿔버리면, 그동안 우리의 추억도 사라진다고.”

 

“난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돈으로 움직이는, 그리고 설사 돈이나 더 바라고 이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합니까? 정말 오산[260]입니다.”

 

“정말로 귀찮네요. 말했잖아요. 소중한 이 동네의 환경을 지키고 싶다고요. 개발 다 필요 없다니까요. 그러니 귀찮게 하지 말아요.”

 

“빈집이 하나둘 보이니까, 좀 무섭기도 하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참 무정해[261]. 무정합니다. 어떻게 자기 고향을 버리고. 쯧쯧쯧.”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이 동네가 개발하면, 좋은 것도 많으니까. 그럼 사랑하는 동네를 위해 큰 양보를 하지요. 차라리 집을 팔 테니, 사가세요.”

 

“아니, 앞으로 재건축하면, 얼마가 오를지 모르는데, 그 가격에? 그 가격에는 절대로 못 팔아요. 보상금은 그렇게 많이 챙겨주면서, 제시한 가격은 정말로 기대에 못 미치네요.”

 

“더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네요. 이곳 주민들이 다들 그렇게나 바라는 재건축인데, 혼자서 고집부릴 수는 없어요. 시원하게 이 정도 가격에 거래합시다. 그러면 기꺼이 소유권을 넘기리다.”



5. 그들의 배려다. 그 배려의 알맹이가 이타심인지 이기심인지 알 수 없다. 여하튼 남는다고 배짱을 부리던 집주인을 그렇게 하나둘 내보냈다. 예상보다 많은 금액을 요구한다. 어차피, 그들은 재건축 후, 돌아올 수 없어서다. 미리 한몫을 챙기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는 내 생각이다. 대외적으로 그들은 통 큰 양보를 한 셈이다. 하지만, 초기 보상금을 받고 나간 집주인은 모른다. 이들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을 요구했는지. 그래서, 남은 예산은 빠듯했다. 풍부한 현금 유동성으로 한숨을 돌린다. 부자의 돈은 이렇게 바른 곳에 쓰인다. 소문이 퍼진 걸까? 버티면 돈을 더 준다고. 아니면 집주인처럼 사려 깊은 배려를 하려고? 여하튼 희한하리만큼, 세입자도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인간이라서 그럴까? 인간이라서?







“효상아, 전세계약갱신청구권을 거부하는 방법도 있어.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거든.

 

‘임차한 주택의 전부 또는 일부가 멸실되어 임대차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262]

 

재건축은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 계약만료일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통보하면 돼. 다시 전화해서 제대로 알려줘. 계약 만료하면, 한 푼도 못 받는다고. 그냥 나가야 한다고.”



6. 그런 법이 있었다고? 준비가 부족했다. 찾아보면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역시 승기다. 다시 전화해 으름장을 놓으며, 경고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나도 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승기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우리와 함께할 수는 없지만, 세입자 역시 우리와 비슷한 처지여서다. 그리고 어차피 부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위로금을 주지 않고 내보내도, 그렇게 돈을 아낀다고 누구도 기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자의 눈먼 돈은 바른 곳에 쓰여야 한다. 그리고 바른 곳은 지금 이런 상황이다. 세입자를 직접 찾아가, 알맞은 위로금을 제시해 협상을 마무리하고 싶다.



 “고마워, 승기야, 그런 법이 있었구나. 진짜 모르는 게 없구나. 그래서 임 대표가 널 신임하는지도. 여하튼, 이 일은 임 대표가 내게 맡긴 일이니, 이번에는 내 힘으로 해결해 볼게.”






7. 세입자 집 앞이다. 살포시 벨을 누른다. 응답이 없다. 다시 한번 벨을 누른다. 반응이 없다. 집에 아무도 없는 듯하다. 자투리 아파트에 거주하는 세입자 나이는 60대 중반이다. 그리고 만나러 온 세입자는 곧 70세를 바라본다. 기다리기로 한다. 잠시 외출했을 확률이 높다. 그나저나 너무 덥다. 곧 추석이다. 이번 가을은 가을이라 말하기 어렵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열대야로 잠들기 어려운 여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 정해놓은 시간에 자연의 시간을 재단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자연은 인간에게 시간의 소중함을 알린다.

그래서 계절을 선물한다.


인간은 온도와 냄새,

그리고 주위의 변화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한다.

계절의 변화는 시간이 흐른다고 말하는 자연의 증거다.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인다는 자주적인 생명체로 포장한다. 하지만, 인간은 한순간도 시간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럴 생각조차 않는다. 한여름에 두꺼운 겨울 패딩을 입는 자도, 한겨울에 민소매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자를 보기 어렵다. 물론 가끔 본다. 인간은 그런 자를 가까이하지 않는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렇기에 정상인이라면 고작 온도도 이겨내지 못한다.



만류의 영장이라 큰소리는 치지만,

주변의 도움 없이는 다른 동물이나 식물처럼 지구에서

한 계절도 홀로 버티기 어려운 연약한 생명체다.



어쩌면, 신은 인간을 하루살이처럼 수명을 짧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신이 빗은 아름다운 지구를 파괴할 유일한 해로운 생명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인간은 신의 미움을 알아챈다.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들었다는 그 자부심은 무너진다. 그리고 분노로 가득 찬 인간은 신이 빗은 최대의 작품, 지구를 훼손[263]하기로 한다. 그리고 무섭게 진화한다. 누리는 모든 편의성과 즐거움은 진화라는 허울로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파괴한다. 이는 신에 대한 인간의 복수다. 그렇게 착각한다. 오직 파멸로 달리는 인간의 시간은 더욱더 빠르게 흐르는데, 자연의 시간은 점점 예측하기 어렵다. 그리고 파멸의 길로 내딛는 저주라는 사실을 매일 망각[264]한다.



신에 대한 복수라 믿었던 인간의 파괴는

어리석은 인간을 단죄하는 신의 마지막 사랑이다.


인간은 신이 만든 유일한 에러일지도.


그리고 너무나도 긴 여름은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곧 멈춘다는 뜻일지도.


펑! 펑! 펑!






to be continued....



[259] 부정 (否定): 그렇지 않다고 단정함.

[260] 오산 (誤算): 추측이나 예상을 잘못함. 또는 그런 추측이나 예상.

[261] 무정(無情): 쌀쌀맞고 인정이 없다.

[262]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 3항 6호 [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263] 훼손 (毀損): 헐거나 깨뜨려 쓰지 못하게 함.

[264] 망각 (忘却): 어떤 사실을 잊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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