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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테난조 Dec 20. 2023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5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5화






16. 영감님을 만난 지 두 달이 흘렀다. 그동안 진척은 없다. 카쿠르터가 어르신을 꾸준히 만났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아서다. 임 대표가 말은 안 하지만, 이 건을 빨리 해결하기를 바란다. 영감님을 다시 만나러 간다. 더는 장황한 말에 속지 않으리라. 아파트 앞이 어수선하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외지 사람들이 보인다. 영감님 아파트 현관문에 걸린 노랑 등이 보인다. 무슨 일이지?      



근조(謹弔)   


  

어르신의 영정사진이 보인다. 예상치 못한 전개다. 주위에서 이런저런 말이 들린다. 어르신의 지인들이다.  


    

“어떻게 그렇게 일이 벌어져? 정말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양반인데, 그렇게 가나, 그렇게 인사도 없이”     


“그러게나 말이야, 평소에 무릎이 아프다고, 산을 좋아하지도 않는 양반인데, 아니 왜 그날은 거기를 올라갔을까?”     


“나도 모르지, 죽은 아내가 보고 싶었는지도.”     


“그래도 끔찍해, 어떻게 죽은 아내와 같은 장소에서, 그런 일이 벌어져? 그래서? 자살한 거야?”      


“말조심해, 없는 말 해서 욕먹지 말고. 지금 듣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자살보다는 실족사에 무게를 두는 것 같아. 일단, 경찰에서는 잠정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유족도 부검이나 조사를 원하지도 않고.”      


“하긴, 발을 헛디뎌 떨어질 수도 있겠네. 그나저나, 그 영감, 그렇게 아내를 그리워하더니,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좋은 일인가?”     


“사실은 말이야, 생전에 아내와 다툼이 잦았어. 아마도, 갑자기 하고 싶은 일 한다며, 그게 자기 꿈이라나? 아내가 그렇게 말렸는데, 결국 고집대로 진행했지. 하여튼, 투자했다가 크게 손해를 봤어.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원래는 자가인데, 돈이 없으니까, 그래서 집을 팔아 현재 전세로 살고 있고.”      


“그랬어? 도통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난 전혀 몰랐네.”     


“그 영감, 원래는 엄청나게 떠벌리고 자랑하는 성격인데, 아내가 죽은 후, 성격도 많이 변했어. 자네는 그 이후로 이사 왔으니까.”     


“그러니까, 늘 말수가 적어서 전혀 몰랐지. 그럼, 아내가 비관 자살을 했던 거야? 산에서? 그래?”      


“그건 아무도 모르지, 그때도 실족사로 처리했어. 유서가 나오지 않았거든. 하여튼, 그렇게 아내를 하루아침에 떠나보내고, 모든 게 후회스럽고, 스스로 용서하기 힘들었던 것 같아. 찾아오던 자식들도 못 오게 하고, 그렇게 아무도 그 영감을 찾지 않았지. 그나마 우리가 전부였어. 말벗으로는.”      


“스스로, 형벌이라도 줬다는 뜻이야? 참 슬프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하네. 그렇다고 죽은 아내가 돌아와?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내 말이, 그래서 몇 번을 말했는데,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죽은 아내가 지금의 모습을 원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말을 듣지를 않아. 자기는 죄인이라고. 아내도 자기 때문에 죽은 거라고. 더는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      


“그랬구먼, 그런 일이 있었구먼, 정말 이상하기는 했지. 알지, 이 집에는 늘 향냄새가 가득했어. 죽은 아내 사진으로 가득하고. 죽은 사람과 살고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 얼마나 사랑하면, 아직도 놓아주지 못할까? 그런 마음이었는데,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몰라.”     


“그게 무슨 소리야?”      


“어쩌면, 죽은 아내를 바라보면서, 과거의 후회를 바라본 게 아닐까? 그렇게 스스로 형벌을 주면서, 불행하게 사는 것을 선택하는.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지. 있을 때 잘해야 해.”      


“뭐, 그럴지도, 난들 아나? 아무도 그 속을 모르지. 그나저나 그럼 이 집은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어차피 집주인도 아니었는데, 자식들이 정리하기로 한 것 같아. 우리 처지에서는 다행인 건가?”      

“또, 또, 입방정!, 조심하라고, 듣는 귀가 많다고.”     


“뭐, 틀린 소리도 아니잖아, 이 영감이 버티고 있어서, 재건축 사업에 차질이 생긴 것은 틀림이 없으니까, 그나저나 유족들이 회사로부터 거액의 위로금을 받았다고 하던데?”  

   

“도대체 자네는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듣나? 그리고 회사가 집주인도 아닌 세입자의 유족에게 위로금을 줄 이유가 있어? 괜한 소리 해서 다른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게.”     


“괜한 소리라니? 나도 듣는 귀가 있다고. 나도 들었어. 유족한테. 장례비용 일체를 회사에서 부담했다고.”     



 



17. 어르신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제는 알 것 같다. 어르신이 내게 말한, 어쩌면 유언일지도 모르는 그 답을. 어르신은 과거의 꿈에 사로잡혀 현재의 행복을 갈아 넣는 바보 같은 일은 그만두라고, 잡을 수 없는 과거의 유령보다는, 현재 옆에 있는 사람에게 충실하라고, 옆에 있는 사람과 행복하게 미래를 설계하라고, 그게 현재의 꿈이 되라고, 넌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오늘 그 답을 듣고 싶었는데, 이제는 영원히 들을 수 없다. 그래도 괜찮다. 충분한 답을 얻어서다. 어르신이 괴롭지 않은 곳에서 사모님과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나저나 우리가 장례비용을 부담했다고? 관련해 들은 게 없다. 이따가 승기에게 물어야겠다.    


  

“승기야, 이사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그 세입자 어르신 기억해? 어제 다시 설득하러 갔는데, 돌아가셨더라고. 그나저나, 회사에서 장례비용과 위로금을 제공했다고 하던데, 사실이야? 우리가 그렇게까지 해줄 필요가 있어? 위로금으로도 충분할 텐데?”     


“어, 효상아, 깜박하고 네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네. 괜한 헛걸음했겠네. 미안하다. 맞아, 우리가 비용을 치렀어.”     


“뭐, 깜박할 수도 있지. 그런데, 승기야, 도대체 왜? 우리가 비용을? 돈을 너무 계획 없이 지출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 이 돈의 출처도 거기지? 부자들의 투자금?”      


“네가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이건 임 대표 생각이야. 지금 그 어르신 말고도, 버티는 집주인이나 세입자가 좀 있잖아. 고지가 눈앞인데, 그들 때문에 재건축 사업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일이 정말로 벌어진다면, 그게 진짜 큰일이지, 안 그래? 효상아?”      


“그건 그래, 그러니까 위로금은 이해는 하겠는데, 왜? 장례비용까지? 도대체 임 대표는 무슨 생각이야?”     


“그러니까, 효상아, 임 대표는 이를 ‘Beyond expectation 전략’이라고 하더라. 기대 이상의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좋은 이미지를 준다는 게 핵심인 전략이야. 임 대표는 확신하더라고. 이번 선행으로 기존의 집주인과 세입자가 우리를 좋은 기업으로 인식한다고.”      


“승기야, 그거야 두고 볼 일이지. 오히려, 보상금을 더 챙기려 버틸지도 모르니까. 그렇잖아. 그리고 정말로 부자들의 투자금을 이처럼 사용해도 되는 거야?”      


“그래, 효상아, 그럴 수도 있겠지. 두고 보자고. 임 대표의 전략이 먹히는지를. 그리고, 부자들의 돈으로 무엇을 하든, 그게 다 투자야. 투자에 대한 개념이 넌 너무 좁아. 그리고 지금 부자를 걱정해? 카테피아만 생각해.”





18. 퇴근하려다, 사무실로 돌아온다. 임 대표와 술잔을 기울이고 싶어서다. 요즘 임 대표는 매일 야근이다. 혼자서 뭐 이리 바쁜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히, 임 대표 혼자만 바쁘다. 본사와 관련 일은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아서다. 저번 일 이후로, 예전보다 많은 것을 나와 공유하기는 한다. 그런데, 그게 뭐랄까.... 아직은 제한적이다. 어쩌면 승기는 알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기도 본사와 관련 일은 나와 공유하지 않는다.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임 대표는 점점 야위어 간다. 참 딱한 인생이다. 그냥, 오늘은 대학교 시절로 돌아가 임 대표가 아닌, 우현이와 회사 이야기 말고, 시시하고 대수롭지 않은 대화로 서로를 위로하려 한다. 사무실 문을 열기 전,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8시 47분. 사무실 문을 연다. 예상대로 임 대표는 대표실에서 열일 중이다. 전화 통화를 한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큰 소리로 누군가와 통화한다.      



“Beyond expectation(비욘드 엑스펙테이션) 전략은 잘 실행하고 있어?”      



참, 그놈의 전략 타령을 지금까지 말할 줄이야. 정말 못 말린다.      



“그러니까, 누구도 알아서는 안 돼. 네 가족을 생각해. 이건 너와 나 그리고 블루 고스트만 아는 전략이야.”     



승기와 통화 하나? 승기에게 따로 시킨 게 있나? 그런데 승기 가족을 생각하라니? 무슨 소리야? 바로 대표실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대화를 엿듣는다.      



지금 그런 모습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다시 담을 수 없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 네가 널, 카쿠르터 중 가장 신뢰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어.”     



승기가 아니다. 카쿠르터 중 하나다.      



“인제 와서 빠진다고? 네가 빠지면 나머지는? 너만 따르는 다른 대원들은? 그리고 블루 고스트가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 대단하다는 것은 그만큼 두려운 집단이라는 뜻이야. 그들은 무엇도 만들 수 있고, 무엇도 행할 수 있어. 그들은 세계의 법을 초월한 집단이야.”     



도대체 상대방이 뭐라고 하길래, 이처럼 겁을 주지?      



“그냥 필요한 것을 속 시원하게 말해.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인데, 그것만 생각해. 쓸데없는 생각 말고. 그리고 넌 네 가족만 생각해. 이번 건은 블루 고스트에 보고하지는 않을게. 그들은 의심이 많아. 네가 잘못될 수도 있다고. 그리고 네 가족도. 그러니 다시는 약한 모습 보이지 마. 특히 대원 앞에서는. 네가 약해져 흔들리면, 다른 대원도 흔들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일로 전화하지 마. 블루 고스트가 도청할지도 모르니까. 연락은 늘 하던 대로. 그리고 이번 일은 잘했어. 한 번 더 그 일을 해줬으면 해. 네가 주소와 이름을 보낼게.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나도 원해.”     



도대체 무슨 통화를 이렇게 살벌하게 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소름은 내게 경고한다. 이 상황을 들키지 말라고. 이는 통화를 엿들었다는 것을 임 대표가 알면 안 된다는 신호다. 고개를 숙여 바로 포복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잠시 호흡을 멈춘 채,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사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혹여 들킬까 봐 발뒤꿈치를 들어 살살 엘리베이터 앞까지 걷는다. 1층에서 자리를 잡은 엘리베이터의 무게가 오늘따라 천근만근인가 보다. 당최 올라올 생각을 않는다. 비상구를 연다. 발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1층까지 까치걸음으로 잽싸게 걷는다.      



살금살금살금살금살금살금살금살금살금살금,

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탁,

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

탈깍탈깍탈깍탈깍탈깍탈깍탈깍탈깍탈깍탈깍,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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