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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테난조 Dec 29. 2023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7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7화






22. 택시비를 결제 후 내린다. 생각보다 너무 멀리 왔다. 아무도 예약할 것 같지 않은, 다 무너져가는 허름한 펜션 앞에 임 대표가 탄 차가 보인다. 간판이 보인다. “○○ 낚시터”다. 여기가 낚시터라고? 저수지가 보여 다가간다. 심한 악취로 다가가기 어렵다. 저수지는 성인 키보다 높은 잡초로 무성하다. 바람 소리는 음산하고 스산하다. 오랫동안 관리가 안 된 버려진 낚시터다. 틀림없다. 낮이라서 다행이다. 밤이었다면, 오싹하다. 너무 무섭다. 당장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 같다. 임 대표는 이곳에 무엇을 하는가? 펜션에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행여라도 임 대표가 알아채서는 안 된다. 창문 너머로 여러 사람이 보인다. 임 대표는 보이지 않는다. 사진과 글씨로 가득 찬 화이트보드가 눈에 들어온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이다. 인물관계도다. 얽히고설킨 사진 속의 등장인물의 궁금증으로, 이곳의 으스스함을 잊은 채, 호기심은 나를 지배한다. 인물관계도를 자세히 보고 싶다. 문을 열고 몰래 다가갈 용기는 없다. 핸드폰을 꺼낸다. 카메라의 줌을 확대한다. 그리고 찍는다.      



번쩍! 찰칵!      



아뿔싸, 무음이 아니다. 내부가 어두웠나? 자동으로 플래시가 켜졌다. 미친다. 야구장 외부 조명의 밝기만큼 강한 불빛은 주위를 환하게 한다. 소리는 어떠한가? 천둥 치는 소리다. 핸드폰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이리도 크단 말인가? 당혹스럽다. 급하게 몸을 창문 아래로 숨긴다. 아주 조심스럽게 핸드폰의 카메라 다시 기능을 켠다. 잠망경 카메라처럼, 조심스럽고 천천히 핸드폰 머리만 아주 살짝 들어 창문 너머의 내부를 살핀다. 제발, 아무도, 아무도, 눈치채질 않기를. 다행이다. 창문 너머의 세상은 평온하다. 들키지 않았다. 하지만, 바지가 축축한 느낌이다. 아뿔싸! 실례를? 착각이다. 이 나이에 바지에 오줌이나 지릴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하지만 더 있을 용기도 없다. 사진을 확인한다. 잘 찍혔다. 곧 어둑한 밤이 온다. 흔적을 지우면서 낚시터를 서둘러 나온다. 어느 정도 낚시터에서 벗어난 거리다. 더는 발걸음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리다.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은 외진 곳이라 차량이 다니기 어렵다. 차량이 보일 때까지 전력 질주다.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서다. 숨이 가빠온다. 현재 15.0의 속도로 트레이드밀을 뛰는 기분이다. 트레이드밀의 속도를 3.0으로 진심으로 낮추고 싶다. 하지만, 잡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무거운 다리를 멈추기 어렵다.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서 택시가 보인다. 행여라도 놓칠까 봐 젖 먹던 힘까지 짜낸다. 막판 스퍼트다. 택시를 잡아야 한다. 놓치면 끝이다.      



“형사님, 여기가 외진 곳이라 택시가 다니기 어려워요.

혹시 몰라서 기다렸는데, 다행이네요. 그럼 출발합니다.”      






23. 집에 도착했다. 손이 떨린다. 무슨 짓을 했는지 스스로 설명이 안 된다. 진정하기 위해 급하게 찬물로 샤워한다. 요동치는 심장 박동수를 낮추려 샤워 헤드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집중한다.      



웅우우우웅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우우우우우우우우웅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콸

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졸

퐁당퐁당퐁당퐁당퐁당퐁당퐁당퐁당퐁당퐁당.      



골방에 들어와 핸드폰을 열러 촬영한 사진을 확인한다. 창문 너머에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문을 여는 순간이다.      



○○○- 이사, 완료.

○○○- 긍정적인 결과 기대. 설득 중.

○○○- 알 수 없음. 설득 중.

○○○- 설득이 안 됨, 제거 대상. 준비 중.

○○○- 사망, 완료.      



처리가 안 된 세입자와 집주인의 현황판이다. 사실, 관련한 인물관계도는 특별한 게 아니다. 사무실에서도 비슷하게 진행해서다. 그러나 다른 게 있다. 사무실에서는 볼 수 없는 진행 상황이다.      



○○○- 사망, 완료.      



소천한 어르신 함자다. 그런데 ‘완료’라는 뜻은 무엇인가? 보니까 세입자나 집주인이 이사해도 ‘완료’로 보는듯하다. 그렇다면, 사망해서 더는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 다음이 문제다. 해괴망측한[270] 지령이다. 무엇을 말하는지 도통 알 수 없다.      



○○○- 설득이 안 됨, 제거 대상. 준비 중.      



‘제거 대상? 준비 중’ 이게 무슨 뜻인가? 제거 대상이라니? 설득 중이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처럼 ‘설득 중’이라 적어야 했다. ‘설득 중’과 ‘제거 대상’은 분명히 다른 의미다. 설마? 제거한다는 뜻이 살해? 그렇다면 어르신도? 에이,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왜 갑자기 장르가 스릴러로 변하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기는 어렵다. 영화가 아니다. 현실이다. 상상력이 지나치다. 그렇다면 우현이한테 직접 물어야 하나? 그런데 너무나 겁이 난다. 정말로 스릴러 또는 공포 영화로 장르가 변할까 봐. 그렇다면 우현이와 대화하기 전에 승기와 상의를? 아, 이것도 불안하다. 전두엽과 편도체의 과부하가 일어난다. 너무나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온다. 정보를 차단해 뇌의 과부하를 막아야 하는데, 뇌가 파업 중이다. 명령을 거부한다. 모든 의심과 가짜 정보가 여과 없이 내 머릿속을 헤집는다. 전화가 울린다.      



“효상아, 나 승기. 임 대표와 이야기했는데, 저번에 말한, 한번 다 같이 모여 술 먹자는, 하여튼, 내일 저녁에 시간 비워. 임 대표가 근사한 곳에서 먹자고 해. 고맙지 않냐? 우현이는? ”     



승기는 정말 알 수 없다. 우현이가 사치스럽다고 그리 싫어하더니만, 지금은 근사한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서 고맙다고? 언제부터냐? 우현이 관련한 모든 일을 그리 너그럽게 바라보는? 그런데 왜 하필 내일? 혹시 오늘 미행한 게 들킨 것 아닌가?      



“그래, 알았다, 기대해야겠네. 얼마나 근사한 곳에 우리를 데려갈지.”     






24. 임 대표가 나를 보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인다. 승기도 따라 웃는다. 승기는 천진난만하기 어렵다. 영 어색하다. 무섭다. 승기는 웃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이따가 말해줘야지. 우리는 임 대표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중이다. 우현이는 기분이 좋은가보다. 차 안에서 쉬지 않고 떠든다. 반면에 난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마땅한 자기합리화가 떠오르지 않아서다. 여전히, 쓸모없는 직감은 이 상황을 스릴러물이라 말한다. 더 나아가 공포물이 될지도 모른다고 겁을 준다. 미친놈이다. 정말 싫다. 쓸모없는 직감이 눈에 보였다면, 도끼로 찍어내고 싶은 심정이다. 정말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해답을 누가 줄 수 있다면, 그래서 불안한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해 준다면, 그게 누구든 평생 감사하며 살아가려 한다. 하여튼, 오늘 술자리에서 우현이로부터 정보를 얻어야 한다. 모든 게 나의 오해라 결론지어야 한다. 늘 틀리니까, 이번에도 틀린 거다.      


“얘들아, 그동안 정말 뜸했다. 우리?”     


“임 대표, 맞아, 이렇게 모여 술잔을 기울인 게 얼마 만이야?”     


“승기야, 오늘은 그냥 친구처럼, 편하게 이름 불러줘. 이런 자리에서도 그렇게 부르면, 나 솔직히 섭섭해.”    

 

“알았다, 알았어. 그럼 그럴까? 우.... 현아? 내가 무심했네. 미안하다. 우현아.”     


“그래, 그렇게 불러주니 얼마나 좋으냐? 너희들 생각해 좋은 곳으로 왔는데, 마음에는 들어?”      


“당연하지, 역시 사장님 배포는 남달라. 고맙다. 우리를 이렇게 생각해 줘서”      



여전히 승기의 반응은, 정말 어색하다. 무슨 약점이나 잡힌 사람처럼. 아니, 정말 이렇게 변할 일이냐고. 여하튼 오늘 우현이로부터 정보를 얻어야 한다.      



“효상아, 그나저나 네가 술자리를 가지자고 해서 조금은 놀랐어. 평소에 술을 즐기지도 않으면서. 그래도, 우리 대학교 때, 아주 징글징글하게 마셨지. 오십세주 기억나지?”     


“아, 오십세주? 까먹고 있었다. 오십세주를 말하니 지난날의 추억이 주마등[271]처럼 스쳐 가네. 암, 기억나고말고. 그때 생각하면 참 좋았다. 대학교 시절 우리. 아무것도 아닌 일에 한참을 웃고 울고 분노하고. 뭐가 그리 즐거웠을까? 그리고 뭐가 그리 화가 났을까? 청춘이다. 청춘이었어.”     


“맞아, 도봉산 기억나지? 그때 내 복장, 정말 최악이었다. 전날 미리 복장을 말해줬어야지. 도봉산 이후로, 산만 보며 그때 기억이 떠올라서. 하하하.”     



승기는 대학교 동기가 아니라 이 대화에 참여하기 어렵다. 주제를 바꿔야 한다.    


  

 “그래, 우현아, 너와 승기의 첫 만남도 정말 가관이었다. 내가 정말,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고. 너희들 관계가 틀어질까 봐. 정말 물과 기름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나보다 더 관계가 돈독한[272] 것 같아서 보기 좋아. 가끔은 질투도 나고. 하하하.”     


“효상아, 우리가 싸우기는 무슨. 우현이는 늘 내게 좋은 친구였어. 지금도 그렇고.”     


“승기야, 정말 그렇게 생각했냐? 아닌데? 내 기억으로는? 너 나 엄청나게 싫어하지 않았냐? 내가 들은 게 있는데?”     


“아니, 임... 아니, 우현아, 누가 그런 소리를 해? 효상이 너냐?”     


“농담이야 농담. 농담으로 말한 것을 뭘 그리 다큐멘터리로 받고 그래? 여하튼 다들 늙었다 늙었어.”      


“그래 우리 참 늙었어. 너도 승기도 그리고 나도. 그래도 지금이 정말 좋다. 난 그래. 각자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잘 이겨냈어. 그리고 이처럼 한자리에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잖아.”  

   

“효상이, 네 말이 맞아. 승기 전세 사기를 들었을 때, 정말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     


“우현이, 너도 할 말 없다. 기억나냐? 볼드몰트 사건?”     


“맞네! 맞아. 그때 승기 너, 얼마나 나한테 핀잔을 줬냐? 맞아, 승기 넌 날 확실히 싫어했어.”     


“정말 또 왜 그래? 내가 좀 심했나? 그랬다면 사과할게. 미안하다. 우현아.”     


“오늘 왜 그래? 자꾸 거리감 느끼게? 뭘 친구끼리 사과를 해? 농담이라고. 농담. 효상아, 이제 난 승기하고 농담도 못 하는 사이가 됐나 봐. 슬픈데? 은근히?”     


“이게 승기 탓이냐? 네가 얼마가 뒤에서 승기를 갈구면 승기가 이리 변했겠냐? 도대체 나 몰래 얼마나 승기를 괴롭힌 거야?”     


“아, 진짜, 아니라고. 아, 미치겠네. 알았다. 알았어. 오늘 이렇게 골탕 먹이려고 날을 잡았구나.”     


“야 됐어. 뭐면 어떠냐?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으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니야? 다 같이 건배하자. 승기야, 우현아, 내 옆에 함께 해줘서 늘 고맙다. 그리고 행복하다.”     


“건배!!!”     



to be continued....




[270] 해괴망측(駭怪罔測): 말할 수 없이 괴이하다.

[271] 주마등 (走馬燈): 사물이 덧없이 빨리 변하여 돌아감을 비유하는 말.

[272] 돈독(敦篤): 도탑고 성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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