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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테난조 Jan 09. 2024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10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Episode 15:

# 엉킨 실타래, 10화









31. ○○○님 사망 후, 유족은 임 대표에게 생각지 못한 큰 조의금에 감사를 표한 후, 바로 고인의 물건을 정리해서 이사하기로 한다. 이 사람이 마지막이었다. 재건축사업을 위한 모든 토지 확보가 끝났다. 사업은 순조롭다. 임 대표도 한결 평온해 보인다. 블랙박스 분석 후, 경찰은 타살의 정황을 의심할 만한 특이한 점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차량 회사는 급발진보다는 브레이크 교체 시기를 놓쳐 일어난 사고라 생각한다. 즉, 운전자의 차량 관리 소홀이라고 말한다. 유족은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 준비 중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려진 낚시터에도 다녀왔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곳이다. 마치 내가 본 게, 내가 찍은 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혼란스럽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쓸모없는 직감의 상상이라 생각해서다. 그런데 여전히 꺼림칙하다. 정말로 이렇게 끝내도 되나? 의심은 사라진 게 아닌데? 누가 내게 속 시원히 말해 다오. 제발!      



쓸모없는 직감은 말한다.

‘대표실에 도청기를 설치해.’     



도청기? 도청기를 설치하라고?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러다 임 대표에게 들키면? 하긴, 도청기를 발견한들, 설치한 이가 나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대표실에는 감시카메라가 없어서다. 물론, 사무실에는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 당시에, 임 대표는 대표실에 감시카메라 설치를 승인하지 않았다. 아마도 본사와의 관계를 노출하기 꺼려서인 듯하다. 임 대표와 블루 고스트가 회의한 내용이 혹시라도 감시카메라에 담기면 심각한 정보유출로 판단해서다. 일단, 사무실에 설치한 감시카메라의 사각지대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대표실에 잠입할 때,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어서다. 다행히도 감시카메라 관리는 나와 승기의 몫이다. 나의 수상한 행동인, ‘사각지대 찾기’는 녹화된 영상에서 삭제한다. 일단, 도청기부터 사야 한다. 서두르지 말자. 회사 컴퓨터로 검색해 찾다가 기록을 누군가 열람한다면, 낭패다. 퇴근 후, 근처 PC방에서 검색하는 게 좋다. 안 된다. 근처 PC방도. 누군가가 나를 볼지도 모른다. 차라리 집에서? 그것도 불안하다. 예상할 수 없는 나만의 아지트가 필요하다. 카쿠르터, 사무실 직원, 임 대표 그리고 승기와 동선이 겹치지 않는 장소를 찾아야 한다. 서울에 그런 곳이 존재할까? 문제는 카쿠르터다. 100명의 초기 카쿠르터는 거의 기억한다. 그동안 자주 만나서다. 하지만, 재건축사업 이후로, 100명으로만 영업과 홍보 활동을 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블루 고스트가 대중매체를 활용한 대대적인 광고나 홍보를 허락하지 않는다. 디지털 채널을 통한 투자자 모집을 금했기에, 우리는 아날로그 방식인, 100명의 카쿠르터를 중심으로 점조직을 결성해 운영하기로 한다. 그러니까, 한 명의 시니어 카쿠르터를 중심으로 최대 5명의 주니어 카쿠르터를 채용해 관리하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주니어 카쿠르터의 얼굴을 다 기억할 수 없다. 사실, 거의 모른다. 만날 일이 없어서다. 하지만 그들은 날 기억한다. 가끔, 뜻밖의 장소에서 그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에게 난 중요한 인물인 듯하다.     


 

“안녕하세요, 안효상 팀장님이시죠? 저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주니어 카쿠르터 ○○○입니다. ○○○ 시니어 조장님이 말씀 많이 했습니다. 카테피아를 만든 분이라고요.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물론, 뜻밖의 장소에서, 특히 가족과 있을 때, 이러한 대우 아닌 대우를 받으면, 기분은 좋다. 아내가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져서다.      



“자기야, 카테피아? 그게 뭐야? 자기를 만나서 영광이라고? 은근히 기분 좋네. 출세했네. 출세했어. 안효상.”     






32.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점조직으로 활동하는 수천 명의 주니어 카쿠르터가 임 대표의 감시카메라다. 이들의 눈을 피한다는 게 쉽지 않다. 설사 도청기를 판매하는 장소를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가는 길 또한 쉽지 않은 여정이다. 즉, 동선을 감추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주니어 카쿠르터의 감시 아닌 감시를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무슨 수로? 생각해야 한다. 우현이를 이렇게 의심할 바에는 뭐가 됐든 결론을 내야 한다. 차라리 검색하지 말자. 어디서 구매할 수 있을지는 뻔하다. 종로에 있는 청운상가다. 공식적으로 회사 차원에서 청운 상가로 출장을 어떻게 가느냐다. 그것만 해결하면, 손쉽게 도청기를 구매할 수 있다. 전자 제품은 인터넷으로도 구매할 수 있기에, 그런 이유로 청운상가를 간다고 하면, 의아해할 확률이 높다. 좋은 핑계가 없을까? 모르겠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오늘은 그만 생각하자. 승기가 저녁에 밥을 먹자고 청했지만 거절한다. 난 지금 누구도 믿기 어렵다. 외롭다. 이번에는 정말로 외롭다. 결이 다른 외로움이다. 지하철에 홀로 탄다. 빈자리가 보인다. 자리에 앉을까 하다가 이내 그만둔다. 임산부를 위한 배려석이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을, 용기 있는 자는 한동안 나타나지 않는다. 이미 지하철 내부는 만석이다. 다들, 나른하고 피곤할 텐데, 노곤한 심신을 딱 하나 남은 분홍색 좌석에 기대지 않는다. 본홍색 좌석만 시간이 멈춘 듯, 평온하다. 그 평온한 공간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공간처럼 혹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처럼, 분홍색 임산부 배려석은 한동안 빈 채로 만석의 지하철과 균형을 이룬다. 발 디딜 곳도 없이 사람으로, 100㎍/㎥ 이상의 심각한 미세먼지로 가득 찬 지하철 내부는 숨쉬기가 불편하다. 하지만 분홍색 임산부 배려석은 홀로 초미세먼지 농도가 10㎍/㎥ 이하인 청정지역처럼 느껴진다. 누구라도 신성한 이곳을 침범해 깨끗한 공기를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러지 않는다. 수호해야 할 사회의 마지막 보루인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균형을 유지한다. 균형이 깨진다면, 우리의 미세 먼지로 그 공간이 더럽혀진다면, 결국 무질서로 모든 게 무너질지도 몰라서다.      



내가 알고 싶은 진실이

마지막 보루를 무너뜨리는 행위일까?   

   

무질서로 향하는 나의 행동으로

모든 것은 무너질까?      






33. 집에 도착해, 골방으로 직행한다. 아무 생각 없이 책상의 서랍을 열어 본다. 서랍 안에 답을 숨기고 있을지도 몰라서다. 논리적으로 더는 생각하기 어렵다. 초자연적 존재에게 이 문제를 맡기고 싶다. 무엇이든 좋다. 답을 다오.      



첫 번째 서랍을 연다. 아무 답도 없다.

두 번째 서랍을 연다. 아무 답도 없다.

세 번째 서랍을 연다. 답이 있다. 녹음기다.      



세 번째 서랍에 고이 모셔 놓은 녹음기다. 왜 이 물건은 떠오르지 않았을까? 그동안 도청기를 구매한다고 고민했던 모든 방황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녹음기는 애증의 물건이다. 트랙킹 코스를 만들어 빠른 걸음에 취했던 당시에 녹음기를 샀다. 빠른 걸음이 뇌의 활성화를 유도했는지는 모른다. 결과적으로 빠른 걸음으로 운동할 때마다, 물끄러미 떠오르는 글쓰기 소재를 주체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참신한 소재라 하더라도, 뇌의 저장 공간은 크지 않다. 트랙킹이 끝나고 샤워 후, 자리에 앉으면, 기막힌 소재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느낌은 알겠는데, 구름처럼 형태만 떠다니는 기분이다. 그래서 핸드폰에 있는 녹음 기능을 사용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멋이 나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지금 생각하면 쓸데없는 허세다. 여하튼 멋진 아이디어를 저장하고 싶었다. 녹음기에 이어폰을 꽂아 작동하는지 확인한다.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효상아, 잘 들어, 그러니까 결국 모든 게 가짜인 거야. 다 허구라고. 하지만, 정작 소설의 주인공은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지. 그렇게 독자도 이끌어 가야 해. 독자에게 주인공의 상황이 진짜라고 느낄 만큼 자세하게 상황을 묘사해. 그렇게 모두를 속이는 거야. 그리고 효상아, 난 널 믿는다. 마침표를 찍어 완성할 그날을.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글도 운동도. 절대로 포기하지 마. 알았지? 난 네가 자랑스러워. 파이팅!”      



삭제가 완료되었습니다.

기록된 파일이 없습니다.      






34. 홀로그램 스티커 안에는 다양한 이미지나 텍스트가 숨어 있다. 빛을 비추면, 홀로그램 스티커는 숨겨진 의도를 보인다. 주로 홀로그램 스티커 안에 색인된 이미지나 텍스트로 제품의 정품과 가품을 구별한다. 녹음기를 찾아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한 순간, 홀로그램 스티커 안에 각인된 정품의 마크를 다시금 발견한 듯하다. 당시의 효상이는 글쟁이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때의 효상이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한다. 아이디어의 고갈로 곧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책상 앞에서 무의미하게 보낼 다수의 날을. 과거의 효상이는 긍정적이며 밝은 녀석이다. 하지만 모른다. 그 녀석은 곧 아이가 장애가 겪을 일도, 세탁세제를 살 돈이 없어서 거실에 쌓인 빨래 더미와 쉰내로 고생할 다수의 날을. 그날의 효상이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너무나 모른다. 마지막 장을 끝으로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을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을. 주저하지 않고 모든 파일을 삭제한다. 잠시 머물었던, 철없던 판타지 세계를 지우고 싶어서다. 아비로서, 남편으로서, 어른으로서, 그 무엇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던 천둥벌거숭이 시절을 지우고 싶어서다. 내친김에, ‘미완성 폴더’에 숨겨진 ‘미완성 파일’을 클릭해 가품의 흔적을 지우려 한다. 마우스 커서를 ‘미완성 파일’로 움직인다. 그리고 마우스의 오른쪽 버튼을 누른다. 다양한 항목 중, ‘삭제하기’ 항목에 시선을 멈춘다. 한참을 바라본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손가락의 결정만 남는다. 눌러. 다 끝내자고. 누르라고! 손가락은 망설인다. 손가락은 가품의 흔적을 끝내 지우지 못한다. 쯧쯧쯧, 한심한 녀석!     



그런데 지금의 내 모습은

홀로그램 스티커에 숨겨진

정품 마크일까?      







35. 오늘이다. 녹음기를 임 대표 방에 몰래 설치한다. 다른 직원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린다. 감시카메라의 사각지대를 파악해야 한다. 승기가 마지막 남은 직원이다. 승기에게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다. 마음에 담긴 모든 내용을 승기에게 털어놓으면, 물 먹은 무거워진 패딩이 한순간에 건조되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그런 마음의 가벼움을 얻을지도 몰라서다. 하지만, 승기에게 말하기는 이르다.      



“효상아, 퇴근 안 해? 할 일이 남았어? 없으면, 간단하게 맥주에 노가리 어때?”      


“맥주에 노가리? 맥주에 치킨이 아니고?”     


“언제부터 맥주에다 치킨이었다고. 원래 진짜는 맥주에다 노가리지. 안 그래? 그리고 금치킨이다. 금치킨.”     


“그래, 요즘 치킨값이 너무 오르기는 했어. 편하게 먹기에는 부담스럽지. 그런데, 오늘은 할 일이 좀 남아서, 다음에 먹자. 미안하다.”     


“미안하기는, 무슨, 그래 알았다. 그럼 나 먼저 퇴근한다. 내일 보자.”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있다. 작전 개시다. CCTV 위치를 확인한다. 사무실 양쪽 코너에 CCTV 총 2개를 설치했다. 작은 사무실에 왜 2개나? 이제 사각지대를 찾아야 한다. 한참을 사무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이리저리 움직인다. 영상 파일을 확인한다. 사각지대를 찾았다. 부서별로 설치한 칸막이를 방패 삼아 몸을 숙여 움직이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대표실까지 가는 방향은 칸막이가 없다. 안 되겠다. 사무실 불을 끈 후, 다시 한번 동선을 점검하자. 사무실 불을 끈 후, 움직인다. 영상 파일을 확인한다. 예상과 다르게 움직임은 선명하게 CCTV에 담긴다. 실패다.      



쓸모없는 직감이 말한다.

‘바보야? 그냥 대표실에 녹음기 설치 후, 영상을 삭제하면 되잖아.

뭐 그리 쓸데없는 짓을 해?’      



맞다, 맞아. 어차피 영상을 삭제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수상하게 행동한 영상을 삭제해야 하는 게 걸림돌이다. 벌써 1시간을 사각지대를 찾는다고 낭비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승기나 임 대표에게 약 1시간 정도 삭제한 영상을 설명해야 해서다. 참 바보 같다. 대표실 문을 연다. 그리고 녹음기를 숨길만 한 장소를 물색한다. 사무실 소파 틈새에 넣는 게 좋겠다. 손을 넣어 녹음기를 깊숙한 곳에 놓는다. 이제는 녹음기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원격제어가 가능한 녹음기를 구매했다. 이런 날을 예상했을까? 원격제어 버튼을 누른 후, 사무실에서 떠든다. 그리고 소파 틈새에서 녹음기를 꺼낸 후, 확인한다. 녹음은 잘 된다. 소파 틈새에 손을 넣어 깊숙한 곳에 녹음기를 다시 놓는다. 자리에 돌아와, 수상하게 행동한 모든 장면을 삭제한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밑밥은 깔았다.

우현아, 부탁이다.

밑밥을 물지 마라.



to be contiu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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