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39. 오늘도 별 내용이 없다. 우현이는 다양한 사람과 꾸준히 관계를 유지 중이다. 물론, 거짓말로 사실과 다르게 말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는 선의의 거짓말로 느껴진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 중에, 나와 승기만 우현이의 최측근이다. 계속 녹음하면서, 우현이를 의심하는 게 맞는가 싶다.
세 번째 녹음.
“ ○○○ 대표님? 무슨 일로? 아, 그 이야기는 누구한테? ○○○한 테요?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아요. 대표님 돈도 많으면서, 뭘 또 욕심을 부립니까? 정말로 아니에요, 잘못 들은 정보세요.”
“○○, 주위에 여자가 어디 있어? 예전 습관 다 버렸다. 지금은 와이프와 아이만 바라본다. 예전에 만난, ○○? 기억나? 아무리 철이 없던 시절이라도, 유일한 재산인 자동차를 팔아서 빚을 갚아 주는 놈이 어디 있냐? 뭐, 순애보? 웃긴다 진짜. 그 이후로 네가 만난 여자가 한 트럭이다. 이 놈아. 그래, 여자는 몰라도, 소주는 언제든지 살 테니, 연락하고 이쪽으로 건너와.”
“네, 선생님, 요즘은 예전보다 불면증 증세가 좋아지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말씀한 대로, 조금 떨어져서 저를 바라보니, 한결 편안한 마음이었어요. 조만간 제가 찾아뵐게요. 그리고 말씀한 투자 자리도 만들었으니, 그때 추천한 지인분과 같이 봬요.”
오늘도 별 내용은 없다. 우현이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구나. 하긴, 혼자서 블루 고스트를 상대하니, 그게 보통 일이냐. 다행이네. 불면증이 좋아지고 있다니. 개인적으로, 우현이에게 직접 투자를 의뢰하는 지인도 꽤 있었네. 도대체 혼자서 몇 개의 업무를 하는 게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우현이에게 몰래 녹음한 사실을 말해야 하나? 우현이가 날 이해해 줄까?
네 번째 녹음
“정호 님, 알겠습니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아직 안 팀장과 김 팀장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조만간 이야기하겠습니다. 중국은 곧 시간 내어 건너가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아니라니까요, 글쎄, 걱정 붙들어 매세요. 그동안 대표님께 거짓을 말한 적이 있나요? 불안해 마시고요, 지금 시장 경기가 좋지 않아요. 그러니 놀라지 마시라고요. 매달 들어오는 수익금의 액수가 적어도. 그러니까, 제 말은 혹시라도요.”
“미국이 금리를 계속 올리는 추세라, 한국도 이에 반응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일단은 관망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섣불리 주위 사람 말만 듣고 투자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 쪽 계좌를 더 열어 주고 싶은데요, 아직 자리가 없어서요. 대표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지금은 무엇을 할 때가 아니라, 지키는 게 더 중요한 시기입니다.”
40. 드디어, 정호 님과 대화가 녹음되었다. 아버지와 이렇게 사무적으로 말하는지 몰랐다. 다시금 깨닫는다. 우현이도, 정호 님도 비즈니스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고. 저번과 비슷한 주제다. 도대체 무엇을 나와 승기에게 말하려 뜸을 들이는지. 매번 녹음해 확인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몇 주가 흘렀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다.
다섯 번째 녹음.
“비자가 나왔어? 그러면, 아버지에게 일러둘게. 일단, 아이와 함께 먼저 중국으로 가. 상하이 공항에 도착하면, 아버님 직원이 나와 안내해 줄 거야. 아이들하고 여행하고 있어. 결혼 후, 처음 만나는 거니까, 너무 긴장은 말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좋은 분이야. 나? 난 아직 마무리할 게 남아서. 그것 끝나면 바로 갈 거야. 오늘 외식할까? 그래, 퇴근 후 봐.”
“제가 임우현 대표입니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통해 말씀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죄송한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요, 투자자 모집은 종료했습니다. 일단, 관망하세요. 맡기실 금액은 얼마인가요? 알겠습니다. 조만간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현이 가족은 중국 여행을 간다. 부럽다. 우리 가족은 아직 해외여행의 경험이 없어서다. 이번에 시간 내어,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어디로? 제주도 가는 것보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삯이 저렴하다고 한다. 아니면, 근처 동남아시아도 좋다. 돈을 버니까 이런 게 좋다. 삶의 여유다. 우현이가 VIP 투자자를 따로 일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나 많을 줄은. 아무래도 나오는 게 없다. 의심을 거둬야 할까? 쓸모없는 직감을 믿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그때 이야기했던, 그 카쿠르터와 다시 통화할지 모른다. 아직은 포기하기 이르다.
여섯 번째 녹음.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더라고. 스트레스로 인해, 간 수치도 높고, 고혈압에, 체중 감량에, 말도 하기 싫다. 아, 아직 당뇨는 아니고. 당뇨 전 단계. 하여튼, 의사 선생님은 좀 쉬라고 하는데, 쉴 수가 있나? 아? 같이 일하는 친구들? 효상이와 승기는 몰라. 바빠. 둘 다.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느라. 그래서 미안하다고. 나도 꼭 참석하고 싶은데, 여의치 않아. 그래. 고마워.”
“부동산 투자요? 어느 지역을? 아, 그 지역? 저희는 투자할 계획은 없습니다. ○○○님, 맞습니다. 리스크가 없이는, 얻는 것도 없지요. 그런데요, 그 지역은 우리가 말하는 ‘에러’가 아닙니다. 선택은 ○○님의 결정이지요. 다만, 저희를 믿는다면, 당분간 투자를 하지 않고 시장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투자하고 싶은 그 마음을 참는 게 리스크입니다. 그 리스크를 견뎌야, 좋은 수익처가 발생합니다. 회사에서 ‘에러’를 찾으면 바로 말씀할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우현이의 몸 상태는 별로다. 예상은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말라간다. 포동포동한 얼굴은 온데간데없다. 날카로운 턱선과 도드라진 광대 그리고 엄청나게 커진 눈. 원래도 눈이 큰 편인데, 살이 빠져서, 눈만 보인다. 얼굴색도 안 좋다. 황달까지는 아니어도, 얼굴에 홍조가 나타난다. 부쩍이나 두통을 호소하는 이유가 고혈압 때문일지도 모른다. 승기는 우현이의 건강 문제를 눈치챘나? 근 석 달째, 우현이의 사생활을 염탐한다. 대표로서 혼자서 많은 것을 안고 간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미안한 마음이다. 이 짓을 그만둘 시기가 다가온다. 우현이에게 모든 것을 말한 후, 사죄해야 한다.
일곱 번째 녹음.
“정호 님, 일단, 준비는 끝났습니다. 킥오프는 언제? 넵 알겠습니다. 그때 진행하겠습니다. 이번 주 내로 안 팀장과 김 팀장에게 말하려고 합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만 바랄 뿐입니다. 그나저나, 아내와 아이는 만나셨습니까? 알겠습니다. 다음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연락하지 말라고 했지? 블루 고스트가 도청하고 있다고. 그래, 이번 일은 잘 처리했어. 직접 할 줄은 몰랐어. 아슬아슬했어. 일단은, 그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어디 좀 나가 있어. 낚시터로 와. 나머지 정산해 줄게. 18일 오후 8시. 그때 봐.”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