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운다_러다이트
7. 노바디 선배님을 따라가. 거대한 십자가가 보여. 숙소에서 볼 때는 몰랐어. 지붕 위에 놓인 커다란 십자가는 주위를 숙연하게 해. 십자가를 이처럼 가까이 보는 게 처음이야. 십자가를 보면서 손을 모으고 기도해야 해? 교회는, 그러니까 종교와 관련한 무엇도 몰라. 아니, 쳐다보지 않아. 신은 있을 리가 없어. 신이 있다면, 그러한 고통을 감내[323]했을 리 없으니까. 정문에 놓인 교회 현판[324]의 문구[325]가 눈에 띄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326]
오래된 목제 교회문, 문 위쪽의 아치형 창문으로 비치는 고딕 양식. 신비로워. 문 옆에 걸린 작은 등은 중세 시대를 떠오르게 경건해. 노바디 선배님은 육중한 문을 힘껏 열고 교회로 들어가.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오랜만입니다. 한 2년 만인가요?”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그러게요, 이번에는 2년을 버티었군요.”
2년을 버텨?
“이번에 온 새로운 요원이시군요.”
“안녕하세요, 유민서입니다.”
“반가워요, 발밤교회 담임목사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네? 아, 저는 아닙니다. 따로, 믿는 신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오늘부터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순종[327]하는 게 어떨는지요?”
“목사님, 저는 신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 몹쓸 생각을? 안타깝군요. 유민서 요원.”
도대체, 처음 본 내게 왜 이러세요?
“목사님, 설교는 다음에. 유민서 요원, 오늘 첫 근무입니다.”
“하하하, 그렇네요. 제가 서둘렀어요. 그래요,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이야기해요. 유민서 요원.”
고맙습니다. 노바디 선배님. 이런 대화 불편합니다.
“유민서 요원, 근무지로 가려면, 반드시 이 교회를 지나쳐야 해. 목사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해.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마. 청송동 문지기[328]니까. 그리고 또 모르지, 신을 믿게 될지도.”
“알겠습니다.”
선배님을 따라 교회 뒷문으로 나오니, 예상하기 어려운 풍경이 펼쳐져. 태어나서 처음 본 광경[329]에 어리둥절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 우뚝 솟은 은은한 잿빛을 감도는 투명한 빌딩은...... 이런 게 가능해? 둥둥 떠 있는 것은 드론이야? 무엇을 감시하지? 이렇게나 많은 드론이? 그리고 백색 LED 그러데이션 형광체로 들어온 기분이야. 이질적이야. 다른 공간이야. 뒤를 돌아봐. 분명한데? 교회 뒷문으로 나왔는데?
“왜 그러나?”
“이렇게 큰 건물이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나요?”
“위장[330]이지. 이곳은 군사시설이야. 누구도 이곳을 알아서는 안 돼.”
“목사님은 이곳을 모르나요? 바로 뒷마당인데?”
“목사님? 목사님은 이곳을 볼 수 없어. 목사님은 그들의 뒷마당을 사용하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공간에 다른 물체가 존재한다는 말씀인가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유민서 요원,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해하기는 힘들어. 더는 궁금해하지 말게. 더군다나, 자네에게 주어진 임무는 분석이 아니야.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따르는 거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곳에서 보는 것과 들은 것은 모두 기밀이네. 알겠나?”
“알겠습니다.”
물리적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무언가 꿈틀거려. 본능적으로 알겠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실감[331] 나. 한겨울에도 온몸은 땀에 흠뻑[332] 젖어. 흐물거리는 무언가 다가와. 투명 튜브인데 뭘까?
“유민서 요원, 그곳에 올라타. 자네를 탐색[333]할 거야. 탐색 후, 자네가 이 프로젝트에 맞는지 최종적으로 판단해.”
“무엇을 탐색합니까?”
“그것은 우리는 알 수 없네. 최종적 판단은 우리가 아닌 그들의 영역이야.”
그들? 누구를 말하지?
“내일부터는 혼자 이곳을 와야 해. 최종적으로 통과해야, 교회 뒷문을 열었을 때, 이곳으로 올 수 있네. 만약에, 그들이 자네를 선택하지 않으면, 이곳은 오늘이 마지막이네. 어서 올라타. 그리고 여기서 작별인사를 하지.”
잠시 망설였어.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담대하게 나아갈래. 안녕히 가세요, 노바디 선배님.
안녕하세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엘로스입니다.
목소리는 유민서 요원님만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요원님을 탐색합니다.
요원님의 내면을 보겠습니다.
내면을 바라본다고?
요원님, 내면을 탐색 중,
우려할만한 감정 덩어리를 발견했습니다.
감정 덩어리는 프로젝트에 부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요원님, 증오하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증오하는 대상? 누구를? 누구도 미워하지 않아. 엘로스.
요원님, 어린 시절,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혼자만 살아남은 사실에 대해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본인 잘못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사건을 어떻게?
심장박동수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감정의 변화를 감지합니다.
엘로스는 요원님의 무의식 영역까지 접근합니다.
질문의 대답을 원합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모두 죽었어.
진실입니다.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면, 요원님을 희생해 당시의 피해를 막겠습니까?
그래, 제발 그러고 싶어.
진실입니다.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국익[334]을 위해 소수를 희생하거나,
다수를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래, 국가의 부름으로 이곳에 왔어. 내게는 국익이 무엇보다 우선해.
진실입니다.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해관계의 충돌[335]이 일어나면,
국익을 우선해 행동할 수 있습니까?
그래, 사적인 일로 공무[336]를 망치지 않아. 트리플엑스 요원이니까.
진실입니다.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국익과 공익[337]이 충돌하면, 국익을 우선해 행동할 수 있습니까?
국익과 공익이 충돌한다고? 국익과 공익은 충돌하지 않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 대한민국 정부는 공익을 해하는 위법한[338] 명령을 내리지 않아. 엘로스, 너의 질문은 옳지 않아.
진실입니다.
맥박, 호흡, 뇌파, 혈압 등 모든 수치는 이전 답변과 같습니다.
모든 질문은 끝났습니다. 눈을 뜨면, 써로게씨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다만, 요원님은 현재 관찰대상자로 분류합니다.
일거수일투족[339]을 감시합니다. 요원님의 생각을 관리합니다.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예견[340]하면, 요원님의 신체활동을 통제합니다.
눈을 뜨세요.
무겁게 닫힌 눈꺼풀을 조금씩 열어. 무엇이지? 무언가 보이기 시작해. 투명 튜브는 내부로 이동하는 기기인 듯해. 물리적인 법칙은 여기서 통하지 않아. 청송동에 이렇게나 넓은 장소가 존재해? 그리고 이곳을 무슨 수로 감춰? 끝이 보이지 않는 투명한 파란색 공간에 압도당해. 아무래도, 교회 뒷문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느낌이야. 그렇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려워. 임무는 요인 감시라 들었는데, 요인은 보이지 않아. 그나저나 얽히고설킨 시험관 튜브로 미확인 물질이 고속으로 이동해. 미끈거리는 저 액체는 무엇일까? 이곳은, 그래, 누군가의 우주를 엿보는 기분이야. 무수하게[341] 펼쳐진 뉴런[342]처럼, 작고 정교한 세포[343]처럼, 무한한[344] 가능성으로 연결한 세계처럼,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빛을 발하며, 이 공간을 따스하게 감싸고 있어. 무언가 다가오네. 밝고 아주 작은 초록빛을 띤 별, 별이 점점 가까워져. 별이 나를 보며 깜박여. 눈인사처럼. 별을 따라가. 따라가는 게 맞을까? 솔직히 모르겠어. 여전히 교회 뒷마당일지도 몰라. 이 모든 게 상상일지도. 진실이라고 생각한 모든 신호가 혼란스러워. 차가운 밤과 어울리는 짙은 푸른 강물을 담은, 이곳은 어디일까? 그리고 무엇일까? 막연하게 넓은 투명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어. 그게 아니야. 새로운 공간이야. 그럼 커다란 거울이었을까? 그래서 끝없이 펼쳐진 공간이라 착각했을까? 아니야, 내가 비치지 않는데? 도대체 이곳을 설명하기 어려워. 분명히 투명한 공간인데, 초록별을 따라가니, 문, 그러니까 문은 아닌데, 여하튼 그런 느낌이라고. 그리고 새로운 공간으로 왔어. 도대체 여기는 어디? 초록별은 앞뒤를 구분하기 어려워. 그런데,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봐.
“엘로스?”
“안녕하세요, 유민서 요원님.”
“초록별이 너구나.”
“초록별이요? 유민서 요원님에게는 그렇게 보이나요?”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그래. 그렇게 보여.”
“저는 질량과 질감이 존재하지 않는 물체입니다. 보고 싶은 대로 보일 뿐입니다. 사람마다 저를 다르게 느낍니다.”
“아레나에서 돔에 도착 후, 여기까지 저를 따라올 수 있다는 의미는 긍정적입니다.”
“아레나? 돔?”
“교회 뒷문을 열어 들어서는 곳은 아레나입니다. 그리고 아레나를 통해 들어온 곳을 돔이라 부릅니다.”
“그럼 이곳은?”
“이곳은 스테이션입니다. 이곳은 유민서 요원님이 일하게 될 근무지입니다. 다만, 이곳까지 오려면, 사상검증을 통과해야 합니다.”
“사상검증?”
“그렇습니다.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예견하면, 첫 번째 관문인 아레나로 들어서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돔, 마지막인 스테이션으로 오기는 불가능합니다.”
“아레나로 들어선 후, 거슬리는 생각을 품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상황을 통제 중입니다.”
“걱정하지 않아. 트리플엑스는 국가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 그래서 보호할 요인은 어디에 있어?”
“안 보이세요?”
“어디에? 나 말고 아무도 이곳에 없어.”
“요원님이 보호할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위로 보세요.”
마음을 보호한다는 엘로스의 말. 무슨 소리니? 알 수 없어. 위를 보라고? 하늘에 마음이 있어?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엘로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요원님과 스테이션의 동기화 과정 중입니다. 동기화가 된 요원만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동기화? 정말 모르는 말뿐이야. 선임들은 이처럼 알 수 없는 일을 했던 거야?
“동기화를 완료[345]했습니다. 위를 보세요.”
to be contiuned.......
[322] 숙연(肅然): 고요하고 엄숙하다.
[323] 감내(堪耐): 어려움을 참고 견딤.
[324] 현판(懸板): 글자나 그림을 새겨 문 위나 벽에 거는 널조각.
[325] 문구(文句): 글의 구절. 글귀.
[326]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 뱁티스트 성경전서』, (주)한일문화사, 2016, 마태복음 11장 28절.
[327] 순종(順從): 순순히 복종함.
[328] 문을 지키는 사람.
[329] 광경(光景): 어떤 일이나 현상이 벌어진 모양이나 형편.
[330] 위장(僞裝): ⦗군⦘ 병력·장비·시설 등이 적의 눈에 뜨이지 않게 하는 일.
[331] 실감(實感): 실제로 체험하는 느낌.
[332] 물이 쭉 내배도록 몹시 젖은 모양.
[333] 탐색(貪色): 감추어진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살펴 찾음.
[334] 국익(國益): 국가의 이익.
[335] 공직자가 직무를 수행할 때에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가 관련되어 공정하고 청렴한 직무수행이 저해되거나 저해될 우려가 있는 상황 (출처: 국민권익위원회)
[336] 공무(公務): 국가나 공공 단체의 사무.
[337] 공익(公益): 공공의 이익.
[338] 위법(違法): 법을 어김.
[339]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는 뜻으로, 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 일거일동.
[340] 예견(豫見): 어떤 일이 있기 전에 미리 짐작함.
[341] 무수(無數): 셀 수 없이 수가 많다. 한없이 많다.
[342] 뉴런(neuron): 신경계를 구성하는 단위. 신경 세포와 신경 돌기로 되어 있으며, 자극을 수용하고 전달하는 기능을 함.
[343] 세포(細胞): ⦗생⦘ 생물체를 이루는 기본 단위.
[344] 무한(無限): 수·양·공간·시간 따위에 제한이나 한계가 없음.
[345] 완료(完了): 완전히 끝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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