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운다_러다이트
8. 눈앞에 보여. 놀라워. 보인다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인지를 모르겠어. 설명할 수는 없어. 나만 보이는 게 분명해.[346] 아니, 나만 들리는 게 분명해.
“기뻐! 드디어 승진했어.”
“노력했는데...... 실패했어.”
“저녁으로 뭐가 좋을까? 파스타?”
“하도 연락이 없길래, 죽은 줄 알았어.”
“잘 모르겠어. 이 옷 어때? 나랑 어울려?”
“안돼! 위험해! 다친다고!”
“5분만 더 걸어가면, 정류장이에요.”
“나 힘들어. 얼마 전에 헤어졌어.”
“따뜻한 핫초코가 생각나는 오늘이야.”
인간의 목소리가 이리도 다르구나. 톤, 볼륨, 리듬, 억양, 질감, 속도가 모두 달라. 누군가는 깊고 신뢰감을 주고, 누군가는 밝은 에너지가 느껴져. 누군가는 부드러운 친밀감으로, 누군가는 무대의 주인공처럼 강한 감정을 드러내. 그동안 왜 몰랐을까? 단순한 소리가 아니야. 마음을 말하는 자아의 다른 형태야.
“보이나요? 요원님?”
“보인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보이고 들려. 이게 다 뭐야?”
“요원님, 법적으로 성인 나이는 만 18세입니다.”
“그런데?”
“요원님은 만 18세 이상의 성인남녀를 감시[347]합니다.”
“감시한다고? 여기서? 무엇을?”
“그들의 생각입니다. 요원님, 대한민국은 신생아가 태어나지 않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참혹한 상황은 이어졌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은 국가 존립의 위기에 봉착[348]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코리안 아포칼립스(Korean Apocalypse)’라 합니다.”
“그래, 국사책에서 읽은 적 있어. ‘코리안 아포칼립스’.”
“써로게씨(surrogacy), 대리모 프로젝트는 ‘코리안 아포칼립스’를 근절[349]하려고 대한민국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수십 년 동안 진행한 비밀 프로젝트입니다.”
“엘로스, 무슨 말인지 쉽게 설명해 줘.”
“알겠습니다. 써로게씨 프로젝트를 설명하려면, ‘코리안 아포칼립스’에 대해서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화면을 보세요.”
화면? 어디를 보라는 거니? 엘로스? 아, 보이네. 그런데 이건 눈으로 보는 게 아닌데? 도대체 내 뇌에 무슨 짓을 한 거니?
엘로스입니다. ‘코리안 아포칼립스’를 설명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수십 년 동안 출산율 0과 심각한 초고령화 사회였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사회민주주의 체제로 대한민국을 탈바꿈한[350]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상당한 시간 머문 기형적 구조로, 대한민국 인구분포는 극단적인 역피라미드 형태를 장시간 유지했습니다. 이는 다양한 사회적 기현상의[351] 원인입니다.
초고령화 사회는 사회복지의 급격한 증가, 의료 시스템의 과부하 등 복지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상실했습니다. 또한, 저출산으로 급격하게 인구가 감소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사회가 대부분 소멸했습니다. 그리고, 생산인구의 절대적 부족으로 세금을 걷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문제는 이로 인해 빈부 격차가 극심해졌습니다.
사회 불균형은 가속화되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정부는 이 상황을 오랫동안 내버려 뒀습니다. 코리안 아포칼립스’는 대한민국이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게 써로게시 프로젝트와 무슨 관계니?
이어서 말씀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저출산을 해결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할 과제라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결혼 적령기의 젊은이는 아이의 양육을 두려워해 거부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출산 자체를 삶의 영유하는 데 행복의 요소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사회적 현상으로 변화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지속하면, 대한민국은 존립하기 어렵다고 잠정적 결론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대리모 프로젝트가 무엇이니? 답답해.
사회민주주의 체제로 변한 대한민국 정부는 출산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정했습니다.
이해와 설득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그리고 1세대 즉, 2100년 출생자를 시작으로 머리에 칩을 심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은 이를 모릅니다.
예방접종이라 말하며, 혈관을 통해 칩은 뇌로 이동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의 생각을 존중합니다.
무엇도 통제하거나 관리하지 않습니다.
다만, 출산과 관련한 생각은 우리가 통제하고 관리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거니?
현재 위치한 스테이션은 모든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요원님은 출산과 관련해 부정적인 생각을 지닌 마음을 지우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출산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유도합니다.
또한, 마음을 지운 대상자는 대테러진압대에 보고해감시를 일임합니다.
이것이 써로게씨 프로젝트의 골자[352]입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써로게씨 프로젝트는 현재까지 성공적입니다.
그렇다면, 보호할 요인이라는 게 대한민국 국민 전부였어?
그렇지 않습니다.
만 18세 이상의 결혼 적령기의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가임기가 끝난 여성은 보호 대상이 아닙니다.
남성은 가임기가 일정하지 않기에, 만 80세까지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보호합니다.
그래, 알겠어. 이제 내 뇌를 그만 헤집고 밖으로 나와.
9. 엘로스의 설명으로 모든 게 혼란스러워. 엘로스 말대로면, 태어나면서부터 칩을 머리에 박고 살아간다는 소리네. 머리는 아니고. 뇌인가? 모르겠어. 여하튼, 이 프로젝트가 왜 극비인지 알 것 같아.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권을 침해[353]하면서 이러한 일을 진행하는 게 옳은 걸까? 하긴, 그래도 출생률은 증가했어. 결과가 좋으니 좋은 일이네. 국가가 국민을 해한다는 상상은 안 될 생각이야. 트리플엑스 요원으로서 더욱더. 다만, 대테러진압대에서 요인의 감시를? 그러니까 마음을 지운 자를 관찰하는,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최하진이 앞으로 맡을 업무일지도. 하진은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야, 이러한 태도[354]는 불손[355]해. 엘로스가 알아챌지도 몰라. 그럼 업무에서 배제[356]돼. 안돼.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엘로스, 출생을 방해하는 생각이라는 게 있어? 너무 막연해.[357] 있다손 치더라도, 무슨 수로 잡아내? 그 정도로 능력자라 생각하지는 않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든 국민의 마음은 돔에서 관찰합니다. 돔에서 선별해 위험한 마음은 스테이션으로 넘어옵니다. 스테이션으로 넘어온 마음은 위험등급을 부여합니다.
1단계: 보고 없이 관찰 (마음삭제대상 아님)
2단계: 보고 후 관찰 (마음삭제대상)
3단계: 보고 후 포괄적 감시 (마음삭제대상)
4단계: 보고 후 집중 감시 및 구금[358] 가능 (마음삭제대상)
5단계: 보고 후 바로 특수학교로 이송 (마음삭제대상)
요원님은, 2단계 이후의 대상자를 보고하는 업무입니다. 지금부터 업무를 시작합니다. 모든 사건을 단계별로 배당해 요원님께 전달합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저를 떠올리면 됩니다.”
“잠깐만, 마지막으로 국장님께 보고해야 하는데, 요인의 어느 단계부터 보고해야 해? 그리고 대테러진압대에 직접 요인을 보고해?”
“3단계부터입니다. 유민서 요원님은, 대테러진압대와 직접적인 접촉은 없습니다. 3단계 이상의 대상자 마음을 지우면, 자동으로 요인의 정보를 전송합니다.”
엘로스는 뭉게구름에 숨은 눈송이처럼 서서히 사라지네. 사라진다는 느낌도, 착각일지도. 돔을 통해 스테이션으로 넘어오는, 수많은 마음이 보이기 시작해. 익숙하지는 않아. 수많은 생각이 몸을 통과하는 기분이야. 멀미가 나. 곧 익숙해지겠지. 하긴, 이것도 착각이야. 누군가 본다면, 아마도 잔다고 생각할 거야. 모든 게 혼란스러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많은 마음은 내 안의 뉴런을 빛나게 해. 각 뉴런의 다양한 빛은 내게 사건을, 그러니까 대상자의 마음을 빠르게 전달해.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의 다리가 빛나기 시작해. 강력한 빛이 다가와. 누군가의 마음이야.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내 몸도 챙기기 버거워. 이런 내가 누구를 만날 수 있어? 혼자 사는 게 답이야. 그깟 독신세 내고 말지. 그런데, 독신세를 낼 수는 있을까?”
“헤어져. 너란 사람은! 사람이란 게 싫어졌어. 어떻게 넌 너만 생각해? 적어도 사람이라면, 그러면 안 되잖아. 너란 여자, 지금도 회피만 해. 정말로, 정말로, 죽을 것 같아. 그만해. 그만하자고.”
“자기? 날 이용했어? 왜 답이 없어?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래서 자기를 위해서 이 짓까지 했어. 그런데, 왜, 왜, 왜! 원하는 것을 얻어서 그래? 아니야, 미안해. 자기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흥분했어. 부탁이야. 아무 일 없다고 해줘. 내가 오해했다고 말해 줘. 너무나 힘들다고. 힘들어. 자기야. 자기야, 돌아와 줘. 사랑해.”
2단계 발령입니다. 색출대상자의 마음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삭제되었습니다.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어.
더는 힘든 일이 오지 않기를.
행복해지고 싶어.
---------------------------------------------------------------------------------------------------------------------------
“어디 가?”
“화장실, 음료수를 너무 마셨어.”
“빨리 와.”
to be continued......
[346] 분명(分明―): 모습이나 소리 따위가 똑똑하고 뚜렷하다.
[347] 감시(監視): 경계하여 주의 깊게 지켜봄.
[348] 봉착(逢着): 어떤 처지나 상황에 부닥침.
[349] 근절(根絕): 뿌리째 없애 버림.
[350] 본디의 모양이나 형태를 바꿈.
[351] 기현상(奇現象): 기이한 현상.
[352] 골자(骨子): 일이나 말의 요점이나 핵심.
[353] 침해(侵害): 침범해서 해를 끼침. 침손.
[354] 태도(態度): 사물이나 사태에 대처하는 자세.
[355] 불손(不遜): 겸손하지 못함.
[356] 배제(排除): 물리쳐서 제외함.
[357] 막연(漠然): 뚜렷하지 않고 어렴풋하다.
[358] 구금(拘禁): 피고인 또는 피의자를 교도소·구치소에 가두는 일.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019333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019334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83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