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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 Aug 22. 2023

생각은 내가 하기 나름이거든

우울할 때마다 생각을 비우기

딱 지금 같았던 작년 8월의 어느 날, 사촌 언니와 느긋하게 평일에 만났다. 언니는 흔쾌히 내가 사는 동네까지 찾아와 주었다. 가까운 곳에 괜찮은 카페가 있어서 언니와 나는 이야기를 나누며 카페까지 갔다. 그날 스케일링을 받고 나왔던 나는 잇몸이 아팠고 이가 시렸지만 오랜만에 언니랑 만날 생각에 아픈 것도 잊었다.


언니가 사준 무화과 얼그레이 케이크


카페에서 커피와 무화과 얼그레이 케이크를 시키고 앉으면서 본격적인 우리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이직을 준비하고 있던 나와 얼마 전 퇴사를 한 언니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내가 꿨던 꿈, 내가 봤던 타로점을 이야기하고 요즘은 이렇게 지냈고 저렇게 지냈다 하며 쫑알쫑알 언니에게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언니가 그랬다.

“엄청 건강해 보인다.”


언니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았다.




우리 집은 유난히 연년생의 사촌들이 많다. 그리고 우애가 좋은 어른들 덕분에 사촌들도 가깝게 지냈다. 사촌들 중에서 나보다 5개월 먼저 태어난 동갑내기 사촌 언니가 있다. 그냥 언니가 먼저 태어나서 언니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그래도 언니라서 그런지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현명한 사람이다.


내가 늘 우울하고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항상 언니를 만났고 언니에게 폭포수처럼 내 감정을 다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언니는 나를 받아주었고 위로의 백 마디와 조언의 한 마디를 해주었고 나는 힘든 시간을 항상 언니의 말을 곱씹으며 버티곤 했었다.


코로나가 막 시작되었을 때였다. 누구나 다 힘든 시간은 거치기 마련이지만 내가 마주한 그 시간은 다른 것 같았다. 약간 빌런 중의 빌런, 뭐 그런 느낌. 거기다 거리 두기로 인해 사람을 만나기는커녕 외부 활동 자체가 안 되던 때라 더 고립되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나는구나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나도 내 기분과 생각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당시 언니는 해외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고 언니의 자가격리 기간이 끝난 뒤, 우리는 약 2년 만에 만나게 되었다. 그때는 누구에게도 내 생각이나 감정을 말할 수가 없었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언니를 보자마자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날 언니가 사준 커피와 케이크


결국 그날, 미안하게도 언니에게 나의 온 감정을 쏟아부었다. 초밥을 먹다 말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말하는 나를 보며 언니는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그냥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지금 너무 힘들다고.


내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을 다 받아들여준 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게라도 말하고 나니까 속은 시원하더라. 진짜 아주 조금은 후련해진 마음으로 나는 용기를 내어 내 마음을 천천히 돌아보며 스스로를 돌봐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밥은 무엇을 먹을까, 면을 먹고 싶은데.

오늘 날씨도 좋은데 노래 들으면서 산책할까?

집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네, 가보자.

움직이기 귀찮네, 그럼 오늘 하루는 조금 쉬자.

갑자기 빵이 먹고 싶네, 사러 가자.

괜찮아, 어차피 나는 잘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자.


요즘 내가 하는 평범한 보통의 생각들이다. 나는 인생이 망했고 그냥 내가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고 그때 그랬고 저 때 저랬다 하는 생각들에 비하면 진짜 평범한 생각들이지.


너무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에 찌든 내가 불쌍해서라도 생각을 비우고 딱 부정적인 생각만 덜하자, 딱 그뿐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은 가볍게, 긍정적인 생각은 무겁게.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정말 생각은 내가 하기 나름이었다.




지금까지 언니는 나를 잘 돌봐주었다. 늘 나에게 맛있는 밥을 사주었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의미 있는 선물들과 조언을 아낌없이 주었다. 언니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언니 덕분에 인생을 다시 살게 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언니의 관심과 보살핌에 보답을 하고 싶어서 더 열심히 살아가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 죽지 않고 잘 살아있다고. 언니가 준 핸드워시도 잘 사용하고 있고, 식물도 잘 키우고, 고기도 잘 먹었고, 책도 잘 읽고 있다고.


사실 가끔씩 미래를 그리다가도 참담한 현실에 불쑥불쑥 올라오는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생각을 비우며 금방 우울감을 털어낸다. 이것도 요령이 생기고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는 우울에서 완전히 벗어나 더 행복한 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로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먼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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