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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플래너 Jan 10. 2023

건축 기사 에피소드 - 4

비상 상황! 회장님 현장 점검!

도급 순위 1위 현대 건설, 2위 삼성 물산, 3위 대우 건설.......

대한 건설 협회에서 매년 발표하는 건설 회사 순위는 자체 공사가 아닌 한 해 동안의 공사 수주 금액에 따라 나뉜다. 내가 신입 직원이던 1990년도 초반에는 1~100위까지의 건설회사를 1군 건설사, 101~200위까지는 2군, 201~300위까지 3군. 이런 식으로 급수가 나누어졌다. 그리고 1군 건설사 중에서도 1조 클럽이 있다. 한 해 공사 수주 금액이 조 단위를 넘어가면 1조 클럽 건설사라고 불렸고, 거의 대부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 건설사가 바로 1조 클럽의 영예를 안게 된다. 내가 공사과장으로 근무했던 건설 회사도 계열사가 10개가 넘는 그룹의 모기업이었으며, 1조 클럽 건설회사이자 도급 순위 20위 안에 드는 대형 건설회사였다. 따라서 내가 다니던 건설 회사 오너는 이명박 정권 시절 전국 경제인 연합회 임원이자 그룹 총수였다. 


그런 회장님이 1년에 한 번 하는 연중행사가 있었는데, 자체 공사를 포함하여 전국에 진행 중인 60개가 넘는 모든 현장을 하루에 3~4개씩 총 3주의 기간을 걸쳐서 일일이 방문하는 것이었다. 일단 방문 예정일이 공문을 통해 각 현장에 발송이 되면 그때부터 전 현장은 비상 상황에 돌입한다. 회장님이 현장에 방문하는 이유는 현장 점검과 직원들의 격려, 그리고 현장의 문제점이나 애로사항들을 직접 듣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또한 각 현장 공사 진행 사항에 대한 공정률과 수익 분석, 본사 요구 사항들은 현장 사무실이 아니라 공사 중인 외부 작업 현장에서 직원이 직접 작성한 종이 차트를 넘겨가며 설명하는 현장 소장 브리핑으로 직접 보고를 받았다. 회장님의 현장 점검 일정이 공문으로 접수되자마자 우리 현장 소장님도 다른 현장과 마찬가지로 현장 브리핑을 위한 종이 차트를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고 매일 혼자서 큰 소리로 연습하기 시작했다. 공사 현장에는 매일같이 용역 20~30명을 동원하여 현장 외부 경계에 설치된 가설 휀스 주변의 작은 자갈돌까지 청소를 하였고, 마침 골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현장이라 안전 시설물 보완과 형틀 자재 정리 정돈 또한 칼같이 진행하였다. 


회장님의 현장 점검이 시작되자 먼저 점검을 받은 각 현장에 대한 이야기는 전국의 현장으로 삽시간에 퍼졌다. "야 oo 현장은 지저분하다고 회장님이 현장 소장 촛대뼈를 깠데!", "oo 현장은 잘했다고 칭찬받고 금일봉까지 받아서 거하게 회식했데!" 현장 점검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나자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회장님이 현장에 내일이라도 당장 도착하기를 바랐다. 매일같이 소장님의 잔소리와 작업자 안전 관련 사항 점검, 현장 정리 정돈 철저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장님 혼자만 현장에 방문하는 것이 아니다. 건축 본부장, 토목 본부장, 관리 총괄 책임자, 그리고 임원 3~5명이 함께 방문한다. 이미 점검을 받은 현장 이야기로는 검은색 에쿠스 5대가 동시에 현장 출입구를 통해 들어온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우리 현장하고 4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조금 전 회장님이 자신들의 현장 점검을 끝내고 우리 현장을 향해 출발했다는 것이다. 소장님은 전 직원들에게 회장님 도착 10분 전까지 현장 주출입구에 모이라고 지시하고 브리핑을 위해 급히 현장으로 이동하였고, 나는 재빠르게 모든 직원들에게 각자 맡은 구역 청소 상태와 작업 상태에 대한 긴급 점검을 지시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온 몬이 땀으로 흠뻑 젖는 6월의 한 낮이었다. 12명의 현장 직원들이 현장 입구에서 부터 일렬로 나란히 도열해 회장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불현듯 내 눈에 이동식 화장실이 들어왔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건설현장에서는 현장에서 작업하는 근로자를 위해서 이동식 간이 화장실을 설치한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것이 이동식 간이 화장실이다. 옛날 쪼그려 앉아서 볼일을 보던 재래식 화장실 방식의 간이 화장실이다. 아마 여행지나 캠핑을 가서 한 번쯤 다 사용해 보았을 것이다. 더운 여름날 내부는 찜통 사우나가 되고, 강한 암모니아 냄새는 코를 찡그리게 만들고, 엉덩이 밑으로 보이는 배설물엔 하얀색의 구더기가 내 다리를 기어오를 것 같고, 담배꽁초와 누런색의 용변이 묻은 휴지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이동식 간이 화장실


회장 도착 5분 전, '설마 지체 높은 회장님이 현장의 이동식 간이 화장실을 사용하진 않겠지?'라고 생각하며 급히 이동식 화장실 문을 열어보았다. 내부의 상황은 끔찍했다. 하루에 용역 20명 이상을 매일같이 불러서 현장 정리 정돈과 청소를 깨끗하게 했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고 현장 입구의 간이 화장실은 원래 더러운 곳이라 생각하며 신경을 안 쓴 것이다. '설마가 사람 잡을 수 있다. 회장이 이동식 화장실을 사용할리 없지만 그래도 청소를 해놓자.' "반장님! 모래 한 삽만 빨리!!!!" 도열해 있는 직영 반장에게 모래를 한 삽 떠오라고 지시하고 나는 빗자루로 이동식 화장실 내부의 휴지와 담배꽁초등을 쓸어서 변기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모래로 발을 디디는 평평한 곳 전체를 덮어버렸다. 


이윽고 검은색 에쿠스 부대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먼지를 일으키며 현장입구에 차례대로 주차를 했다. 180cm 넘는 키에 노란색 뿔테 안경을 쓴 카리스마 작렬 회장님이 현장에 모습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럴 수가 현장에 들어서자마자 이동식 간이 화장실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헉 알고 보니 소변이 급한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휴~~'하고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이동식 화장실을 나온 회장님은 웃으면서 현장 소장님과 악수를 하고 직급 순서대로 차례대로 전 직원들과 악수를 하였다. "안전! 공사 과장 ooo입니다."라고 나도 절도 있는 경례와 함께 관등 성명을 외쳤다. 현장을 한 바퀴 돌고 거푸집을 해체한 지상 3층 슬라브 위에서 현장 소장님이 30분 정도 브리핑을 진행하였고 회장님은 금일봉을 전달하고 다른 현장으로 출발하였다. 모든 비상 상황은 종료되고 저녁에 회식 장소를 정하라고 관리 과장에게 이야기하고 소장님도 현장 사무실로 올라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현장을 오기 전에 점검한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이동식 화장실 청소 및 위생 불량으로 회장님이 노발대발하여 현장 소장의 안전모를 금일봉으로 내려치면서 엄중 경고하였다고 했다. 아마 우리 현장에 도착해서 용변도 용변이지만 아마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확인차 사용하였을 것이다. 현장 소장님은 회식 장소에서 회장님이 이동식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아뿔싸!' 하고 크게 놀랐다고 했다. 만약 회장님 도착 5분 전 내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발생하였을 것이다. 아무튼 소장님에게 고맙다는 칭찬과 함께 전 직원이 즐거운 저녁 회식자리를 가졌다. 설마가 사람 잡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 했다. 이동식 화장실의 면적에 몇 백배가 되는 곳을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했다고 하더라도 1제곱미터의 면적 밖에 안 되는 곳이 더러웠다면 전체가 엉망인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아직도 그때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르지만 건축 현장의 에피소드 중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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