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곰 Jun 07. 2022

마당있는 집을 갖기까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20년 넘게 아파트에서 살았다.
편리했다. 하지만 층간소음은 어느 아파트를 가든 항상 따라다녔다. 이사를 해도 잠시 괜찮다가 이내 시끄러웠다. 네모진 공간에 갇혀 사는 것이 점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주거공간은 그저 먹고자는 곳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펴본 일기장에서 나의 꿈은 '마당있는 집에서 개를 키우며 사는 것'이라는 문구를 다시 보게되었다. 장래희망이 '개 키우미'였나 본데 마당있는 집도 없고 개도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꿈이 다시 떠올랐다.


정원 가꾸는 것도 기력이 있을 때 해야 한다고… 갑자기 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당이 있는 주택을 찾자, 리모델링을 하든 아니면 땅이라도 찾아서 집을 짓자! 그 무렵 방송에서는 집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특히 EBS '건축탐구 집'은 이런 결정을 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았다.

아파트는 주거의 편리함과 미래에 대한 투자도 가능한 훌륭한 주거형태지만 내가 원하는 생활(=개키우미 feat.마당)과는 동떨어졌음을 느끼고 단독주택을 찾기 시작했다. 문득 어디선가 보았던 구절이 떠올랐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처음에는 서울 단독주택을 찾아봤다. 사실 대부분이 다세대주택이다. 예산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주로 북한산 둘레 쪽을 살폈다. 개발제한구역인데도 평당 1,500만원*을 훌쩍 넘었다.

*지금 시세와 차이 있을 수 있음, 지역별 차이도 천차만별


도심은 더욱 비쌌다. 성북동 골목골목을 올라가야 있었고 다 쓰러져가는 집이었다.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던 때라 단독들도 때맞춰 오르고 있었고 재개발 이슈라도 있을라치면 하루가 다르게 몸값이 올라갔다. 조금만 괜찮다싶으면 누군가 나타나 순식간에 채갔다.


게다가 망원동 등 그야말로 힙한 동네는 적당한 매물도 없을뿐더러 이미 많이 비쌌다. 포털에 올라온 부동산 매물은 다 외우고 있을 정도로 보고 틈 날 때마다 돌아다녔다.

일반 주택뿐만 아니라 한옥도 봤다. 고쳐서 살 생각까지 해서 서울시 한옥지원센터* 상담도 받았다.

*서울시 한옥포털 : https://hanok.seoul.go.kr/front/index.do 종로구 계동에 사무실이 있다.


하지만 한옥이든 양옥이든 다닥다닥 붙은 서울 동네에서 작은 마당이 있는 적당한 집을 찾기란 너무 어려웠다. 누구는 3년을 걸려 찾았다는데 미처 1년이 되지 않는 시간으로는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집은 너무 언덕이어서도 안 되었고 고쳐서 살만한 수준의 집이어야 했다. 빌라 사이에 끼어 있지 않은 집을 찾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해가 들지 않은 단독은 의미가 없었다. 다세대 주택을 리모델링하거나 협소주택으로 재건축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나에겐 '마당'이 핵심이었다.


생각을 바꿔 테라스를 가진 아파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예산범위 내 아파트들은 모두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오를대로 오른 아파트값과 실제 가본 집들은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 중에 드물게 있다. 탑층 또는 펜트하우스 형태거나 저층 필로티 위 또는 계단식 논처럼 2-3개 층이 단독 동형태로 있는 경우 등 다양하다.


(번외편) 매물을 하도 보다보니 부동산 소갯말도 번역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 단독매물 기준임을 밝힌다.

조망이 좋은 집 = 언덕이다

리모델링 된 집 = 어느정도 살 수는 있다

조금만 손보면 예쁜 집 = 리모델링이 필수다

리모델링 하면 예쁜 집 = 지금은 귀신 나올 것 같다 보고 놀라지마라


매물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었다.


그걸 알아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게 흠이라면 흠인데 그동안 다른 누군가가 가져가기도 한다. 그 사정을 모르고 놓쳤을 때는 아쉬워했다가 몇번 겪게 되니 그저 나와의 인연이 없었던 것이겠거니 하게된다.


서울 단독주택들을 보면서 겪었던 몇가지 예시를 들어볼까 한다.


1. 한끗차이

한끗차이로 구역이 달라져서 건폐율 몇십프로가 왔다갔다 했다. 협소주택도 지을 생각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토지이용계획확인원*을 떼어보니 붙어있는 옆집과 구역이 달랐다. 심지어 구청 조례로 더 제한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구청에다가 전화하니 심의를 거쳐야한다고 했다. 될지 안될지 모른다고 신축을 포기하고 리모델링을 알아봤으나 워낙 노후된 탓에 신축같은 리모델링 비용은 2억**을 훌쩍 넘었다. 포기했다.

* 토지이용계획열람 : https://www.eum.go.kr/

** 해당 금액은 규모, 노후도 등에 따라 매우 달라질 수 있음


2. 폐가

어떤 집은 버려진 폐가였다. 하지만 양 옆이 빌라가 아닌 주택인데다 산책로가 가까이 있고 버스정류장은 코앞이었다. 왜 이렇게 좋은 위치 매물이 나가지 않았을까 궁금하여 부동산에 물어보니 4년동안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주인이 처음부터 시세보다 높게 내어놓았고 절대 네고가 가능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이라 했다. 앞도 트여있었고 정남향에 잘 고치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가족들과 함께 그 집을 보고 온 날, 동생은 악몽을 꾸었다고 했다. 시커먼 손이 우리집에 불쑥 들어왔는데 콱 물어 쫓아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폐가에 딱 들어가는 순간 빈 집이라 싸한 기운이 돌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어쩐지 나도 잠자리가 뒤숭숭하더라니...

좀더 알아보다보니 다른 사정이 있었다. 왜 버려져있었는지도 알 것 같았고 그래서 결국 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 결정을 하고 나서야 동생이 꿈 얘기를 해주었다. 아, 샀으면 큰일 날 뻔 했겠다.

이 집을 계기로 매물 의심병이 생겼다. 좋은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나가지 않았다면 필시 사정이 있을 것이다!

*가정집 용도의 폐가가 아니었음을 밝힙니다. 폐가라고 모두 이런 것은 아니니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덧붙입니다.


3. 언젠가 잘려나가는 땅

원하는 동네에 새로운 매물이 올라왔다. 리모델링이 필요한 오래된 낡은 집. 몇번 건폐율에 당하다보니 매물 올라오면 주소부터 확인해 토지이용계획확인원을 봤다. 처음보는 선이 매물 중간에 그어져 있는게 아닌가. 검색을 해봤더니 도로가 날 계획이란다. 이런 집을 사서 신축하면 땅 경계선 기준이 아닌 도로가 들어올 기준으로 건축선이 들어간다고 했다.
잘려나갈 땅을 사다니 안될 말이다. 보상은 둘째치고서라도 워낙 서울은 땅 면적이 작아 안그래도 작은데 또 잘려나가면 정말 정말 협소주택이 된다. 계단 오르내리다 무릎 도가니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포기했다.


4. 언덕위의 언덕위의 언덕집

리모델링이  조망이 좋은 집에 가보았다. 언덕을 오르고  오르고  올라갔다. 차도  가는 골목, 어마어마한 계단을 올라가니 보이는 것은 아랫집 지붕이요, 올라가 눈이 마주친 것은 아랫집 지붕 위의 진돗개라 배달 아저씨가 같이 올라가다가 혀를 내두르고는 계단 기념사진을 찍어갔다.
이런 곳은 눈이 오고 비가 오면 답이 없었다. 올라가니 경치는 끝내주게 좋았다. 하지만 언덕은 힘들다. 예전에 자전거를 타다가 무릎을 다친 나는 오르내리는데 어려움이 있다.


5. 한옥들

성북동, 가회동, 삼청동, 혜화동 등등 한옥이 많은 곳을 다니며 여러 매물을 보았지만 한옥은 정말 협소했다. 골목 사이사이에 있어 리모델링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아담한 한옥을 찾았다. 좋은 위치에 왜 매물이 나왔냐 하니, 그 옆집에 부모가 살고 이 집은 아들집인데 부모는 아깝다고 팔지말라 했지만 아들이 현금이 필요해서 그렇다고 했다. 잘 고치면 예쁜 한옥이 될 것 같아 썩 맘에 들어 밤, 낮, 궂은날 여러 번을 찾아가봤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느 날은 조용했는데 어느 날은 조용하지 않았다. 옆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어떤 날은 흘끗 내다보더니 대문을 쾅쾅 닫았다. 아들집이 매물로 나온 것에 대한 심기 불편함이 단번에 느껴졌다. 아, 이런 집에 들어가면 마음이 불편하겠구나... 그렇게 마음을 접었다.


이 외에도 집은 리모델링 되어 깨끗한데 동네가 지저분하다든지 무엇 하나 마음에 쏙 드는 곳이 없었다. 지적도를 보면 엉망진창으로 옆집뒷집앞집과 침범한 곳들도 있다. 이런 곳은 신축하게 되면 측량을 다시 하게 되고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있다고 했다. 생각보다 너무 복잡했다. 그래서 또 포기.

발품을 팔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들, 아파트와 또 다른 영역이었다.


이렇게 서울 단독 매물은 접고 서울을 벗어나 전원주택을 알아보기로 한다.

그 후로도 수많은 매물을 보러 다니다가


땅을 사고 결국 집을 짓게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