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처음>
바람 언덕에 핀 꽃
오월 중순이다. 넓게 펼쳐진 보리밭에는 도대체 푸른색이 없다. 황금빛이다. 보리누름이 되려면 아직 열흘은 남았는데. 대원은 샛노란 보리밭에서 실오라기 같은 푸른색을 찾고 싶다. 길섶에 차를 세우고 가드레일을 넘어 논두렁을 밟았다. 보리알은 탱탱하게 여물었고, 쭉쭉 뻗어 올라온 보리까슬이는 날카로웠다. 대원은 보리깜부기라도 찾을 요량으로 논두렁에 쭈그리고 앉아 보리밭을 살폈다. 보리깜부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빠, 저게 뭐야?
보리깜부기
먹는 거야?
아빠 어릴 때는 따 먹기도 했어. 배가 고팠으니까.
나도 먹을래.
아빠가 어른이 되어서 알게 됐는데. 보리깜부기는 보리이삭이 병든 거래. 그래도 먹어 볼래?
그렇구나. 아빠가 건강해서 다행이야.
예닐곱 살짜리 아이가 보리밭사이로 새처럼 날아다니며 반복했다. ‘아빠가 건강해서 다행이야.’ ‘아빠가 건강해서 다행이야.’ 대원은 논두렁에서 벌떡 일어섰다.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변하면서 몸이 휘청 흔들린다. 대원은 다시 퍼질러 앉았다. 눈을 꼭 감았다 떴다. 누런 보리밭이 대원을 바라보며 살랑살랑 흔들렸다. 대원은 가까스로 일어나 승용차가 있는 길섶으로 나왔다. 가드레일을 잡고 새삼스럽게 보리밭을 다시 봤다. 새들이 ‘아빠 여기, 아빠 여기’하면서 포로롱 날아올랐다가 보리 골로 숨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이다.
대원은 승용차에 올라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실었다. 30년 만에 가는 길이었다. 서울에서 대진 고속도로를 탔었다. 고속도로가 끝나는 통영에서 내려 국도로 들어선 길이다. 거제로 가는 길은 미로를 향하는 길 같다. 길은 강을 따라 흐르기도 하고, 들판을 지나기도 하고, 아파트가 즐비한 도시를 울타리 삼아 지나기도 한다. 강을 따라 흐르는 길은 여유와 평화로움이 있다. 길은 일차로 보다 넓고, 이차로 보다 좁을수록 마음이 편하다. 사 차선 길에 서면 삭막하다.
대원은 방음벽이며 가드레일이 없는 길을 찾아 에돌았다. 금계국이라든가. 혹은 천인국이라든가, 노란 꽃이 길섶을 온통 장식하고 산자락까지 노랗게 물들였다. 대원은 강을 따라 달렸다. 강물 속에 거꾸로 매달린 금계국이 물속에서 웃고 있다. 살아온 날이 물속에서 잠수를 하는 것 같다. 라디오를 켰다. 세월호 소식을 알려준다. 아직 실종자를 모두 찾지 못했단다. 3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한 달 보름이 되도록 마무리 짓지 못했다. 대원은 가슴이 쥐어짜듯 아프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을 명치에 대고 숨을 몰아쉰다. ‘그래, 가자. 가서 만나자.’ 중얼거렸다. 어쩌면 이번 길은 현이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영혼이 된 꽃다운 소년소녀의 넋이 그를 이끌고 있는지 모른다.
대원은 서둘러 내비게이션을 작동시켰다. 거제관광안내소를 쳤다. 신 거제대교를 건너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곳에 당도해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육중한 성곽이 앞을 가로막았다. 오량성이다. 거제의 관문, 고려시대에 역이 있던 곳이며 무신의 난 때 폐위되어 거제도로 추방당한 의종이 쌓은 성이라는 설도 있고, 조선시대 연산군 때 쌓은 성이라는 설도 있지만 오량성은 대원에게 낯설지 않은 장소다.
대원은 성에 올랐다. 성곽 위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여러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느티나무 아래 퍼질러 앉았다. 성 안에는 여전히 마을이 있고 논밭에는 곡식이 자라고 있다. 동네가 좀 더 크진 것 같지만 가지런하게 정리정돈 된 논밭에는 옥수수, 상추, 감나무, 대추나무 등 온갖 것이 자라고 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모습이었다. 대원은 어렴풋이 떠오르는 고향집을 찾았지만 어디가 어딘지 통 알 수 없다. 대원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새삼스럽게 진갑을 바라보는 나잇살을 헤아리며 중얼거렸다.
‘좀 더 일찍 올 수도 있었는데. 미안하다. 현아.’
대원은 성에서 내려와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수더분한 여직원이 관광해설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친절하게 관광지도를 챙겨 준다. 대원은 관광지도를 승용차 보닛 위에 펼쳐놓고 돌아보고 싶은 곳을 손가락을 꾹꾹 눌렀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거제포로수용소부터 들리기로 작정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대원은 내비게이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도심을 지나고 다시 한적한 국도를 달렸지만 거제포로수용소유적지는 보이지 않았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다 갓길에 차를 세웠다. 너무 멀리 온 것 같았다. 쌩쌩 지나치는 차량을 붙잡고 물을 수도 없어 차를 돌려 길가의 주유소에 들어갔다.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을 입은 사내가 ‘어서 옵소’하며 달려왔다.
“가득 채워 주시오. 그리고 길 좀 물어봅시다.”
“옙 말씀만 하이소.”
“거제포로수용소를 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지나친 것 같아서......”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네 예. 오던 길을 다시 돌아 가이소. 거제시청만 찾아 가모 될 깁니더. 그 주변에 가서 물어 보모 금세 압니더.”
“거제시청을 지나친 것 같은데. 포로수용서 흔적이 없었어요.”
“싹 단장을 새로 했다 아입니꺼. 원래 포로수용소가 있던 고현과 수월리, 그 일대는 완전히 달라졌지 예. 아파트가 줄줄이 들어서는 바람에 도로도 싹 바뀐 기라요. 여게 살아도 도깨비가 장난치는 것을 보는 것 같습니더. 하룻밤새 건물이 쑥쑥 자라는 것 같다니깐요.”
“그렇군요.”
“거제는 처음입니꺼?”
“오래전에 떠난 곳이라 낯설군요.”
“그럴 깁니더. 그라마 무조건 거제시청만 내비에 치고 가이소. 산 쪽으로 눈여겨 보모 포로수용소 유적지가 있습니더.”
“옛날에 그쪽은 완전히 허허벌판에 철조망만 쳐져 있고 부서진 건물잔해만 남았던 것 같은데.”
“그걸 다 축소해서 옮겨 놨다 아입니꺼. 유적은 그대로 두어야 제 맛이 날 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조건 새로 맹그는 기 좋다니까. 오롯한 옛것은 없는 거지 예.”
대원은 더 이상 말을 섞기 싫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사내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기름통을 빵빵하게 채웠다. 주유가 끝나고 대원은 오던 길을 되짚어 달리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목소리는 ‘좌회전하십시오. 우회전하십시오.’ 하면서 지시사항을 잘도 읊조린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아버지가 있던 곳이다. 아니, 현이의 손을 잡고 주말이면 가끔 나들이를 하던 곳이기도 하다. 현이에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산교육을 시키던 장소이기도 했다. 현이는 유별나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좋아했다. 외모나 행동거지도 할아버지를 닮았다며 ‘너거 아부지가 환생했는 갑다 야.’ 어머님은 신기해했다. 현이는 할아버지 이야기라면 듣고 또 들어도 싫증을 내지 않았다. 대원이 주말에 좀 쉬고 싶은데도 현이의 손에 끌려 그곳을 찾곤 했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아버지가 육이오 동란 때 반공포로로 잡혀 몇 달을 살던 곳, 공산포로와 반공포로의 반목으로 폭동이 일어났을 때 죽을 만큼 얻어터진 것이 빌미가 되어 반공포로를 비밀리에 석방했을 때 아버지는 초주검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었다. 아버지는 그 길로 돌아가셨다. 세 살이었던 대원은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진 날 갠 날 없이 손톱 밑에 흙 알갱이 채우며 호미 들고 산 어머니, 외아들인 자신을 키워 낸 어머니, 장가들어 손자 현이를 안겼을 때는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던 어머니셨다.
그러나 그 일이 터진 후 서울로 이사를 갔지만 어머님은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 ‘금쪽같은 내 새끼 우야꼬, 우야꼬.’ 하시면서 차마 눈을 감지 못하시던 어머니, 달 밝은 밤이면 남산에 올라 달을 봤다. 어머니는 달 속에서 다소곳이 손자를 안고 대원을 내려다보셨다. ‘어머님, 잘 계시죠? 저도 잘 있어요.’ 대원은 늘 보름달만 뜨면 남산에 올라가 달을 바라보며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받곤 했다. 어쩌다가 툭 어머니 자리에 낯선 여인이 앉아 현이를 안고 있는 것 같을 때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던 시절도 있었다. 낯선 여인, 대원은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에게 언제부터 낯선 여인이 되었을까.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대원은 바로 눈앞에 서 있는 표지판을 읽었다.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낯설었다. 허허벌판만 생각하고 왔던 길이라 도심 가장자리에 위치한 유적지는 상상이 안 됐다. 일단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빈자리가 별로 없다. 주말이라 관광객이 많았다. 대원은 표를 사고 계단을 올라갔다. 여기가 아닌데. 기억 속의 거제포로수용소는 넓은 공터와 철조망과 포탄자국이 남은 건물의 잔해와 원형의 밥솥이었다. 유적공원을 다 돌아본 후에야 이유를 알았다. 1983년에 유적 관을 만들어 그 당시의 사진과 장비 및 의복 등을 축소 복원해서 전시한 것이었다.
그렇지. 그가 거제를 떠날 즈음 한창 공사 중이었지.
대원은 기억을 더듬으며 걸었다. 유적지 한쪽에서 비로소 대원은 자신이 찾던 것을 보았다. 아버지가 밥을 짓던 솥, 미군들이 춤을 추던 곳, 현이는 그곳에만 가면 부엌에 나무 단을 안고 낑낑대는 할아버지 흉내를 냈고, 둥근 원탁 위에서 깡깡 춤을 추며 미군 흉내를 내 그를 행복하게 했었다. 대원은 계단에 퍼질러 앉았다. 현이도 따라와 앉았다. ‘아빠 고마워.’ 뜬금없이 아이는 고맙다는 말을 했다. ‘뭐가 고마워, 너에게 참 미안하지.’ 대원은 아이를 안듯이 손을 휘저었다. 옆에는 아무도 없다. 다시 아이가 옆에 와 앉으며 대원을 빤히 바라본다.
아빠, 전쟁은 나쁜 거야?
그래,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지.
아빠, 할아버지는 독립투사였어?
그래, 할아버지는 김구 선생님을 따르셨대.
김구 선생님은 누군데?
민족통일을 원하신 큰 어른이야
민족통일이 뭔데?
너도 학교 들어가면 배울 거야. 집에 가면 위인전에서 찾아보자. 백범 김 구 선생님에 대한 것이 있는지. 없으면 사다 줄게.
나도 후제 할아버지처럼 독립투사 할 거야
현이는 영특했다. 일곱 살 나이에 비해 의젓하고 조숙했다. 책을 좋아했고, 그림을 잘 그렸다. 남자애가 좀 우락부락했으면 싶은 것이 아버지 마음이었을까. 태권도도 가르치고, 축구도 가르쳤지만 현이는 그런 활동적인 것보다 조용하게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선천적으로 따뜻한 아이였다. 외모는 대원을 닮아 미남형이지만 성격은 아내를 닮았다. 아내, 대원은 한순간 멈칫했다. 아내라는 말, 얼마 만에 떠올린 단어인가. 기억에서 완전히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던 여인, 가슴 바닥에 박힌 잡초의 뿌리처럼 뽑아내고 싶어도 뽑아낼 수 없었던 여인,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했지만 세월은 약이 될 수 없었다. 대원에게 그 사건은 지독한 통증이었고,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황무지였다.
30년 전 그 해 봄, 사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한 흰 꽃이 오월 중순도 되기 전에 산과 들을 온통 도배했다. 매화가 지기도 전에 벚꽃이 전국적으로 만개를 하더니 오월의 꽃으로 불리던 아카시아가 사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했다. 아카시아, 찔레꽃, 이팝나무 꽃, 산딸나무 꽃, 산 목련 등, 흰 꽃이 며칠 새 완전히 만개를 해 버렸다. 흰 꽃이 유난히 탐스럽게 핀 봄이었다. 날씨는 한 여름을 방불케 했다. 사람들은 날씨가 미쳤다고 했다. 날씨가 미치면 사람도 미치는 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원은 한창 젊음의 혈기에 차 있던 30대라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든 바로 돌아가든 무심했다. 자신의 일에 푹 빠져 살았다고나 할까.
주말이면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동호회 활동에 열을 올렸다. 산을 찾고 낚시를 하러 다니고 밤에는 색소폰과 운동을 다니며 정신없이 삶의 진동을 따라 흔들렸다. 일곱 살이었던 상현은 늘 대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함께 있어주길 바랐지만 가끔 거제포로수용소나 바람 언덕에 데리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주는 것으로 아비 노릇을 다 했다. 아내는 가족 나들이를 싫어했다. 대원은 그런 아내가 늘 못마땅했다. 온종일 집에 있으면서 피곤하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어머님과 논밭에 곡식을 심어 거둔다는 것은 알지만 온종일 직장에 시달리다 주말을 맞은 남편에게 꼭 아들을 떠맡겨야 하는지.
그날따라 아내의 기분이 저조했다. 아니, 똥 씹은 얼굴이다. 또 어머님과 다투었나 싶어 대원도 화가 솟구친다. 청상과부로 대원만 바라보고 산 어머닌데 며느리가 그 어머니 심기를 수시로 건드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내가 밖에 나가면 어머니는 대원을 붙잡고 하소연하기 일쑤였다.
“현이 에미가 시에미를 아주 우습게 본다. 참말로 복장 터져 몬 살것다. 고마 옆집 순이한테 장개 가라쿵께 오데서 저런 여시를 데리고 들어왔는지. 내가 내 명에 몬 살기다.”
“어머니, 저 사람 심성은 고와요. 농사일 안 해 본 사람이라 농사를 지으려니 힘들어서 그럴 거예요. 어머님이 너그럽게 품어주세요.”
“내가 온제 특별나게 굴었나. 시집살이는 누가 하는데.”
어머님은 찬바람을 일으키며 힁허케 밖으로 나가시곤 했다. 대원은 아내를 사랑했다. 대원이 지방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을 때였다. 대원은 학원 가까운 곳에 하숙집을 구하기 위해 처음 찾아간 날, 문을 열어주는 처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감전되었다. 소설 『11분』을 쓴 작가 파울로 코엘로는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시간은 단 8초에 불과하다 했든가.
대원은 아내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으며 서울 생활 1년 만에 경남지방공무원 공채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아내를 데리고 거제 집으로 왔을 때 어머님은 처음부터 아내를 반기지 않았다. 싹 깎은 밤톨같이 깍쟁이 기질이 다분한 서울 처자라고 싫어했지만 그 속내는 다른 곳에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웃집 처녀를 며느리 감으로 점찍어 두고 있었던 것이다. 대원은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감행했다.
그리고 현이가 태어났다. 현이가 태어나자 어머님의 아내에 대한 태도가 나아지긴 했지만 아내는 시간이 흐를수록 시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대원은 집에 일찍 들어오는 것이 자꾸 부담스러워졌다. 주말이면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다가도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끼어 온몸에 바늘이 꽂히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이 상수였다. 그럴 때면 무조건 배낭을 메고 등산을 간다며 집을 나서거나 이 것 저 것 배운다며 거제 시내에 있는 학원으로 내뺐다. 아내는 그런 대원을 지독히 경원하고 미워하는 단계까지 왔다.
그날도 그랬다. 모처럼 어머님이 진주 이모 님 댁에 가시는 바람에 아들을 사이에 두고 오붓한 주말이었다. 아내에게 점수를 좀 딸 수 있을 것 같아서 대원은 신이 났다.
“우리 현이 데리고 바람 쐬러 갑시다. 모처럼 가족 나들이 하겠네.”
아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원에게 찬물을 확 끼얹었다.
“나도 좀 쉬자고요. 어제 온종일 마늘을 뽑았더니 허리가 내려앉아요. 만사 귀찮으니 당신이 아이 좀 데리고 다녀오세요.”
“날마다 집에서 쉬면서 따로 쉴 게 뭐 있남? 직장에서 온종일 시달리는 나도 있는데.”
“뭐라고요? 그럼 어디 바꾸어 살아봅시다. 당신이 어머님과 농사일해요. 나는 직장 다닐 테니까.”
“말 되는 소리를 해라.”
“말 되는 소리니까 하는 거예요. 내가 이 집에서 부리는 소예요? 어머님과 도저히 한 집에 못 살겠으니 시내로 이사 가요.”
“어머니를 혼자 두고? 이 사람이 정신이 있나 없나”
대원도 목소리가 높아졌다.
부부싸움이란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 구전재전 이야기까지 쏟아져 나와 결국엔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엔 아내 입에서
“이혼해요. 나 더는 못 살겠으니 갈라서자고요.”
“뭐, 이혼? 그래, 이혼하자. 그렇게 살기 싫으면 나가면 되잖아. 안 잡는다.”
대원도 화가 꼭지까지 올라 맞받아치며 거실의 탁자 위에 놓인 책을 들어 벽에다 패대기를 치고 현관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문 옆에 서서 잔뜩 질린 얼굴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아들을 봤다. 대원은 아차 싶었지만 아들에게 일별도 주지 않고 집을 나와 버렸다. 아들이 그의 등에 대고 무어라고 중얼거렸지만 기억하기 싫어서 묻어버렸다. 막상 집을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다. 집 옆 공터에 세워놓았던 픽업을 탔다. 말단 공무원이었던 그는 사무실에 가서 밀린 일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페달을 밟았었다.
그리고 그날, 현이는, 현이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