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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un 03. 2024

자유로운 삶

자유로운 삶    


 딸이 왔다. 지리산 2박 3일 종주계획이 있단다. 농부가 지리산 입구까지 데려다주고 올 때도 마중을 가기로 했다. 아들에게 누나 도착했다고 문자를 날렸다. 아들이 부럽단다.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누나가 부럽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학교 일이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다는 아들 목소리에 피곤이 묻어있다. ‘대충 해라. 건강 챙기면서 즐겨라. 즐길 수 없으면 무심해져라.’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주어진 책임과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직장에 얽매인다는 것, 겪어봐서 안다. 얼마나 튀어나가고 싶었던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것이 얼마나 버겁든가. 책상 앞에 앉아 서류 뒤적거리는 일은 간단하고, 틈틈이 책 읽고 빈둥거려도 직장에 매인 몸이란 것이 족쇄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봉급에 목을 매고 사는 것 같을 때,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오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싶은 자유를 갈망하며 살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결국 그 편한 철 밥통조차 벗어던져버리고 농사꾼 총각에게 시집왔던 젊은 날을 생각한다. 내 나이쯤 되면 그때 그 시절이 참 치기 어린 생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닌 것 같다. 그 나이 때면 누구나 얽매임을 싫어하고 자유롭고 싶지 않을까. 농사꾼 아낙으로 전원의 꿈에 부푼 삶도 잠깐이었다. 삶은 생존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젊은 나이가 아니었을까. 물론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할 일은 없지만 농사꾼 아낙의 삶은 고단하고 힘들었다. 벗어던지고 싶었을 때는 두 아이의 어미였다. 


 그래, 내가 택한 길 내가 책임진다. 그런 각오도 했었지. 안빈낙도 운운하며 풍월을 읊을 처지도 아니었다. 책 한 줄 읽을 시간이 없어 공황상태에 빠진 적도 있었다.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도 있었다. 삭막한 마음에 무엇을 담을 수 있겠나 싶기도 했다. 틈새에 이는 바람보다 더 간절했던 것은 혼자만의 방이었지 않았을까. 나를 잡아주고 지탱해 줄 뭔가가 필요했고, 나는 글을 썼다. 삶의 끈이 필요했던 것이다. 작가의 꿈을 접지 못한 탓이기도 했다. 일상에 젖어 나를 잊고 싶지 않았다. 아내의 자리, 며느리의 자리, 엄마의 자리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 하는 것이었다.  


 딸은 고학력인데도 직장을 마다하고 자유인으로 사는 길을 택했다. 돈이 필요하면 허드렛일을 해서 필요한 만큼 벌어 쓰면 된단다. 제 아비와 어미의 단점만 물러 받아서 그렇다고 당당하게 말할 때는 할 말이 없다. ‘그래, 그 나물에 그 밥이 어디 가겠냐. 네 인생인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니. 고생을 해도 네가 할 텐데. 네가 행복하면 된다.’ 그렇게 내 마음을 다스리다가도 딸의 노후 생각하면 안타까워진다. 늙은 어미가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잠깐이다. 이젠 딸 걱정도 힘에 부친다. 내 마음에서 딸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지 않다. 


 그 딸이 지리산 종주를 간다며 집에 왔다. 부부만 살다가 여러 사람이 합치니 몸이 되다. 시어머님이 명절 같은 거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자식들이 와도 불편했던 것은 엄마라는 마음자리가 아니었을까. 둘이 조용히 살다가 여럿이 북적이는 것도 힘에 부치는 노인의 길이다. 자식들에게 귀찮다고 오지 말라던 노인들 말을 이해하게 된 것도 내 몸이 힘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아닐까. 두 어른 돌아가시고 나면 그토록 소원하던 자유가 주어질 줄 알았는데. 툭 하면 손님치레를 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젊은 딸은 어미가 힘든 줄 머리로는 알아도 몸으로는 모를 나이다. 


 나는 자꾸 사람 오는 것을 거부한다. 예전에는 손님 오는 것이 그렇게 즐겁고 행복했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다며 먹어주는 사람들,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고 부어라, 마셔라, 그 뒤치다꺼리를 해도 고단한 줄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이젠 엄마의 자리조차 부담스러워지다니.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든가. 조용히, 편하게 있고 싶다. 번거롭지 않은 나날이고 싶다. 빠르게 변하는 세태를 따라갈 생각도 없다. 뒤처지면 어떤가. 그런 생각들 탓은 아닐까. 자유로운 삶이 과연 있기나 할까. 


 그래도 딸이 있어 웃을 일도 많다. 살갑고 다정다감한 딸, 그냥 데리고 살까?

            202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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