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풀꽃 같은 인생
뒤꼍비탈에 닭장풀꽃이 파랗게 피었다. 녹색 풀밭에 맑은 파란색이라 눈에 확 띈다. 닭 벼슬을 닮았다 하여 닭장풀이라 하던가. 이슬이 촉촉한 풀을 살짝 건드린다. 유리구슬 같은 물방울이 또르르 구른다. 파란 하늘과 파란 닭장풀꽃을 번갈아 보며 ‘오늘도 덥겠다.’ 중얼거린다. 입추가 열흘쯤 남았다. 입추 지나면 아침저녁 기온이 뚝 떨어진다. 바람의 맛부터 달라진다. 쇠매미도 참매미도 열심히 운다. 새들도 열심히 지저귄다. 저들도 폭염과 소나기에 지쳤던가보다. 햇살이 좋아서인지 지저귐이 맑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오늘 일기는 풀 먹인 삼베옷처럼 까슬까슬했으면 좋겠다. 붉은 고추를 손봐놓고 빨래를 넌다. 가정주부의 일상은 나이와 상관없이 변함없다. 문득 내가 아파 드러눕기 전까지는 벗어날 수 없는 족쇄 같다. 요즘 젊은 남자는 앞치마 두르고 끼니 챙기고 애들 돌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데. 나는 아직 아들도 남편도 부엌에 서면 마음이 불편하다. 평생 부엌을 못 면하고 산 가정주부의 습관일까. 일꾼 뒷바라지 할 때는 밑반찬 만드는 것도 일이었다.
“김장거리 안 심어도 되겠다. 아직 김치 많이 있네.”
남편이 말한다. 지난해 김장이 아직 남아 있다. 시댁도 일꾼도 없어졌으니 김장이 남아돌 수밖에 없다. 백여 포기하던 김장이 세월에 따라 줄어들고 지난해는 겨우 30여 포기했는데도 김치 통이 차 있다. 여름철에는 햇김치를 담갔었다. 텃밭에는 열무가 자랐고, 붉은 고추 몇 개 따서 육수에 양파, 마늘, 식은 밥 한 덩이 넣어 믹스기에 갈아 열무김치를 담가 먹곤 했었다.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리자 불 앞에 서는 것이 괴롭다. 냉방기를 털어놔도 금세 땀이 줄줄 흐르고 옷이 젖는다.
이것도 나이 탓일까. 끼니마다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는 남편과 달리 나는 신 김치에 젓가락질이 안 간다. 발효식품이라지만 생김치를 좋아하는 식성은 변하지 않았다. 나 먹자고 땀 흘리며 햇김치 담그기도 싫다. 묵은 김치로 만들던 온갖 반찬도 귀찮아서 안 만든다. 노동에 시달릴 때는 내가 한 반찬도 맛만 좋았는데. 지금은 내가 한 반찬도 입에 넣어 간하는 것조차 싫다. 대충 먹자. 나만 대충이지 농부에게 대충은 없다. ‘자작하게 끓인 된장이 맛있는데.’ 해 달라는 뜻이다. 육수를 붓고 된장을 끓인다.
“된장이 와 이리 들치건 하노?”
“양파 쪼끔 넣었는데 우째 그리 잘 아요?”
“양파 넣지 마라니까.”
“앞으로는 안 넣을게요.”
“당신 맘대로 해라. 그냥 묵지 머.”
화난 목소리다. 나도 내 고집대로 해서 문제다. 시집온 이래 평생 시아버님 입맛, 남편 입맛, 애들 입맛, 일꾼들 입맛에 맞추어하던 음식이다. 이젠 내 입맛에 맞춰 먹어보고 싶은데 남편의 입맛은 갈수록 더 시아버님을 닮아간다.
단맛 난다고 된장에 양파를 못 넣게 하는 남자다. 나는 양파 조금 넣은 된장의 부드러운 맛이 좋다. ‘당신 먹을 거는 당신이 만들어 드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당신이 싫어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내가 싫으니 어쩌겠소. 각자도생 해야지. 졸혼도 흔한 세상인데 나 좀 편하게 삽시다.’ 쏘아주고 싶은데 꿀꺽 침 한 번 삼키고 만다.
사실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내가 문제다. 사십 년이 되도록 시집살이했으니 시댁 입맛에 길들어야 하는데 아직도 나는 내 입맛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음식 하나를 해도 깔끔하게 차려내야 하고, 채를 썰어도 자잘하게 썰어야 하고, 격식을 갖추어 밥상을 차려야 하는 남편 밥상이 양반밥상이라면 이것저것 섞어 볶거나 비벼서 한 그릇에 담아 먹고 마는 내 밥상은 거지 밥상이다. ‘거지 밥상이면 어떤가. 내가 편한 게 좋지.’ 삐죽거린다. 온종일 손에 물마를 날 없이 설거지통에 담가야 하는 주부의 삶이다.
시어머님의 손을 생각한다. 집안일, 들일을 할 때는 쩍쩍 갈라져 반창고를 붙여야 했던 손이 일을 하지 않자 아기 손처럼 부드러워졌었다. 손은 거짓말을 못한다. 거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손을 다듬어도 거친 것을 감출 수 없다. 펜대만 굴리고 사는 사람은 아무리 노동을 한다고 해도 손을 보면 들통이 난다. 중국의 문화혁명 시절에 지식인을 색출해 내는 방법이 손 검사였다고 하던가.
설거지를 해 놓고 커피를 타고 과일을 깎아 내주고 뒤꼍 닭장풀꽃을 바라본다. 닭의 벼슬을 닮은 푸른 꽃이 앙증맞고 곱다.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저 혼자 제 멋에 겨워 피었다 지는 꽃의 순리를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 평범하게 살다가 이승 하직하는 사람들이 저 야생화와 같다. 나도 내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걷다가 갈 닭장풀꽃 같은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