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소설>
25시, 섣달 보름
남자는 온종일 산비탈을 오르내린다. 얼어버린 호스를 녹여 얼음을 털어내고 골짝에 호스를 대 물이 나오는지 시험하기를 반복한다. 땅속에 묻은 호스가 언 것인지 땅 밖에 나와 있는 호스가 언 것인지 온종일 씨름해도 물은 물통에 쏟아지지 않는다. 방법을 달리해서 남자는 새 호스를 찾아 깔아 물을 댄다. 남자가 온종일 산그늘 아래서 파랗게 얼어가며 노동을 할 때 여자는 난로가 활활 타는 거실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다 됐어?”
여자는 후줄근한 모습으로 들어온 남자에게 따끈한 차를 내민다.
“아직 안 뚫리네.”
“내가 도울 거 없어?”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거다.”
손재주 좋은 남자랑 사는 여자는 좋다. 부지런한 남자랑 사는 여자는 더 좋다. 자상한 남자랑 사는 여자는 더욱더 좋다. 남자의 좋은 점만 나열하면 착한 여자로 알겠지만 착한 여자 아니다. 뭐든지 여자에게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랑 사는 것은 고달프다. 뭐든지 자기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랑 사는 것은 더 고달프다. 뭐든지 남자가 시키는 대로 여자가 해야 하는 남자랑 사는 것은 더욱더 고달프다. 착한 여자 아닌데 착한 여자인 척하고 살아야 하는 여자는 고달프다 못해 이젠 무심하다.
“당신이 옳아. 알아서 하세요.”
남자에게 여자의 경험은 무가치하다. 남자는 여자 말을 안 듣는다. 아니, 안 믿는다. 옳든 그르든 안 듣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젊어서는 싸우기라도 하고, 파들파들 성질부리기도 했지만 이제 느긋하다. 옳게 가든, 거꾸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고, 스스로 고생길로 들어설 뿐이지 여자를 부리려고 들지 않으니 여자는 여왕이고 남자는 머슴이다. 이제 여자는 그런 남자가 좋다. 집 안 밖 살림을 다 살아주니 편하다. 여자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다. 남자가 시키는 것만 해 놓고 자유부인으로 사는 게 좋다.
그렇다고 여자가 밖으로 도냐 하면 아니다. 여자는 온종일 집만 지고 사는 달팽이다. 달팽이로 사는 것을 즐긴다. 혼자 잘 노는 여자다. 혼자 할 일이 많은 여자다. 여자에게 하루는 금세 간다. 하루가 24시간이란 것이 불만스러울 때도 많다. 게오르규의 소설 ‘25시’를 읽었을 때가 언젠지 기억조차 안 난다. 갑자기 왜 25시가 생각났을까. 순박한 시골 청년이었던 요한 모리츠처럼 자기 의지와 달리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탈출하고 또 달아나도 수용소를 벗어날 수 없던 한 남자의 일생이. 자신이 원한 길이 아니라 타자에 의해 끌려 다닌 삶이지만 그것은 그 남자의 운명이다.
여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비록 소소한 일상 줍기지만 자신의 일생을 기록하는 것이다. 여자가 죽고 나면 여자가 쓴 글은 한 갓 휴지조각으로 변해 불쏘시개가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여자는 좋다. 죽을 때까지 글을 쓰고 싶다. 여자에게는 남매가 있다. 여자의 재능을 물려받은 두 아이는 작가가 꿈이다. 여자는 두 아이가 작가의 꿈을 이루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을지 모른다. 죽음 후 영혼이 두 아이를 지켜보게 되겠지만 장담하건대 두 아이는 두 아이의 인생을 알차게 살아갈 것이다.
해거름이 내린다. 마당의 잔설은 녹지 않고 다시 얼어붙고 추녀 끝에 매달린 고드름은 다시 길어진다. 난방 시설이 없는 따뜻한 나라에 눈이 내리고 영하로 떨어지는 나라가 있어 난리란다. 이상기온은 세계 어디든 마찬가진가 보다. 중국에도 난리라는데. 한국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여자가 사는 고장에도 17년 만의 한파란다. 남녘이라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내는가 했더니 꽃샘추위에 다리 밑 거지는 분명 동태가 되었을 한파다. 또 가난한 생명들 이승 떠난 소식 들리겠지.
여자는 따뜻하게 사는 것이 미안해진다. 살인한파 속에서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지키는 젊은이들이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자발적인 농성이다. 인간애가 살아있는 젊은이 소식은 고맙다. 그들과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힘을 보탠다. 따뜻한 밥 차가 도착했다는 훈훈한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애국심은 주입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되면 행동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늘 영하 25도 강추위란다. 게오르규의 소설 ‘25시’가 왜 생각났는지 알 것 같다.
어둠을 뚫고 불쑥 남자가 나타났다.
“해결 됐어요?”
“그래. 새 호스를 연결해 놨는데 밤에 또 얼면 내일은 지하수 퍼 올려라.”
“그럴게요. 그나저나 물통이 넘치면 그 주위가 온통 얼음바다가 되겠네.”
“그렇겠지. 미끄러운데 산에 올라갈 생각 마라.”
남자의 일침이 매섭다. 뭐 하나 야무지게 못하는 여자가 또 일 저지를까 봐 미리 방패 막을 편다. 여자는 남자가 고맙고 안쓰럽다. 저녁이라도 맛깔스럽게 챙겨야지. 여자는 조기 탕을 시원하게 끓인다. 사랑은 외골수가 아니다. 서로 주고받는 거다. 사랑은 양에 상관없이 마음 씀에서 나온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 달빛이 창안으로 들어온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1월 25일이자 섣달 보름이네.’ 달빛에 비친 잔설이 참 곱다. 여자는 잔설을 밟고 가슴 깊이 달빛을 들이마신다. 달님이 늦둥이 선물로 안 주나. 꿈도 야무진 여자는 환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