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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Oct 31. 2024

인연, 굴레를 벗다

<장편소설 1- 5>

 방문이 흔들렸다. 안으로 걸린 고리는 흔든다고 열릴 리 없지만 나는 희미한 방문 쪽을 노려보았다. 주인아줌마 혜주 언니다. 나를 친 동생처럼 보살펴 주고 편하게 해 주는 사람이다. 내가 3년 째 이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것은 혜주 언니와 정이 든 탓이고 이 집이 편하기 때문이다. 주인아저씨가 건축업을 하기 때문에 집을 자주 비웠다. 그러다보니 언니와 나는 흉허물 없는 사이가 되었다. 

 3년 전 구월이었다. 진주에서 산청으로 발령을 받아 오는 차 안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낯선 사람과 친해지기 어려운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사람이 혜주 언니다. 알고 보니 여학교 선배이기도 했다. 셋방을 구해야 한다니까. 당장 자기 집에 와 있으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커다란 집에 어린 애 둘만 데리고 혼자 있는 날이 많단다. 작은 주방도 딸린 옆방을 세 놓으면 어떨까 생각하던 중이었다며 같이 지내자고 했다. 나는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낯선 곳에서 셋방 구하려 다니는 일이 얼마나 고역스러운 일인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익혔다. 고마웠다. 

 그날 사무실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업무를 인계 받은 후 이 집을 찾아 왔다. 깔끔한 양옥집의 대문을 열자 잔디가 깔린 마당이 나오고 장미와 국화 등이 심어진 화단에서 베란다 위로 올린 타원형의 울타리에 걸린 붉은 여주 열매에 매혹 당했다. 멍게처럼 우둘투둘하게 생긴 것이 풋것은 녹색이었고, 익은 것은 선홍색이었다. 봉숭아 열매처럼 손만 대면 탁 벌어지면서 까만 씨알을 떨어뜨렸다. 노란 꽃이 손바닥처럼 생긴 잎 사이에서 벙글거리기도 했다.

 "먹어볼래? 아주 달단다."

 "먹어도 되는 거예요?" 

 "그럼 맛이 괜찮아. 씨가 많아서 그렇지. 약이 되는 귀한 거래. 언니라고 불러주면 좋겠어. 이상하게 첫 인상이 남 같지가 않아."

 정말 그랬다. 혜주 언니가 내미는 열매를 받아 입에 넣으며 인연이란 참 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선홍색 붉은 속살의 여주, 새까만 열매, 달착지근하고 풋풋한 정이 느껴졌다. 다음 날 당장 두 동생을 불러 이삿짐을 날랐었다.   

 혜주 언니가 몇 번이나 와서 문을 흔들었다. 

 "무슨 일인지 말 좀 해. 아까 사무실 친구라면서 전화가 여러 번 왔었어. 또 그 사람이 전화 했더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너 어디 가고 없다고 했다. 석혜야, 무슨 일인지 말 좀 해 봐라. 답답해 죽겠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래. 가끔은 쉬고 싶기도 하겠지. 직장 일이란 게 얼마나 피를 말리는 일인데. 나도 격어 본 나머지라서 알아. 혹 사랑 싸움 한 것은 아니겠지? 그 사람 목소리가 축 쳐졌던데. 내가 또 쓸데없는 소리 하지? 간다. 그럼 쉬어."

 그 사람, 나의 가슴에 싸하고 찬바람이 지나갔다. 여태까지 아니 정확하게 어제 오후 한 시까지 그 사람은 나에게 푸른 평원이었다. 나는 그 평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어린 사슴이었다. 

 5년 전 초파일이었다.

 내가 다니는 보현사의 혜강 스님으로부터 도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연등 접수를 받는 일이었다. 그 절에서 그를 만났다. 운수행각을 나와 그 절에 묵고 있던 젊은 학승이었다. 행자 시절부터 혜강 스님과 같이 공부를 한 도반이라 했다. 혜강 스님은 연등 접수대에 앉은 여섯 처녀 총각에게 그를 소개하면서 망경이라는 그의 법명을 기억하라고 했다. 후일 탄허 스님이나 만공 스님 같이 유명한 분이 되실 귀하신 스님이라며 다른 곳으로 떠나려는 스님을 초파일 행사만 도와주고 가라고 겨우 붙들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의 첫 인상은 달마 스님을 연상케 했다. 보통 사람들보다 큰 덩치와 키에 비해 부리부리한 눈은 우수를 머금었다. 동굴처럼 어둡고 깊은 눈빛이 이상하게 나의 가슴에 강하게 꽂혔다. 그 눈빛은 캄캄한 굴속에 촛불 하나가 타면서 밝히는 여운처럼 나의 가슴을 물결치게 했다.

 오색 연등이 불야성을 이루던 그 밤, 북적거리던 사람들이 다 돌아간 뒤, 나랑 같이 연등 일을 도와주던 불교 청년회 회원 여섯 명은 그가 묵고 있던 승방에 모여 차를 마셨다. 회색 승복을 입고 앉아 차를 다리는 그의 모습은 한 폭의 단아한 정물화 같았다. 또한 그는 놀랍도록 해박했고 달변이었다. 여운을 남기는 목소리며, 몸짓 하나하나가 나의 관절마다 박혀 빛났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강한 자석에 끌리듯 그에게 다가가는 몸짓을 거부할 수 없었다. 나와 같이 있던 회원들 역시 그의 불교 철학사나,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매료되어 밤이 깊어가는 줄도 잊었다. 

 연등이 밝혀진 산사의 밤은 은근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조용히 승방을 나와 심호흡을 했다. 쌀쌀한 밤공기에 가슴의 열기를 식혔다. 은은한 연등의 불빛은 적막하도록 괴괴한 절간을 돌았다. 나는 연등과 연등 사이를 돌며 간간히 촛불이 꺼진 연등에 새 초를 갈아 끼워 불을 붙이면서 그의 눈빛을 생각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순간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 생각나면 짜릿한 현기증이 일면서 온몸이 화끈 달아오르곤 했다. 나는 나도 알 수 없는 이 감정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몰라 나무 관세음보살만 신음처럼 읊조렸다. 스님이라 부르는 학승에게 강한 남성을 느끼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의 눈빛이 불손한 내 속내를 꿰뚫어 볼 것 같아서 승방에 들어가는 것이 주저되었다.  

 "꽃 보살님은 이 깊은 산속이 무섭지 않아요?"

 석탑 주위를 돌며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깜짝 놀라 우뚝 섰다. 그가 대웅전 앞의 계단에 걸터앉아 나를 바라보며 나직 하게 말했다. 내가 멍청히 그를 바라보고 서 있자 그는 일어나 내 곁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가 금세 떼었다. 나는 그의 손길에 휘청거렸다. 활활 타는 잉걸불이 어깨에 떨어진 것 같았다. 

 "하마터면 고운 머리 결을 태울 뻔 했군요."

 그는 반쯤 타고 있는 불꽃을 보며 말했다. 연등 하나가 불에 타면서 그 등에 붙었던 이름표가 나의 어깨에 떨어졌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그의 손길에서 열기를 느꼈던 내 불경한 속내를 읽어낼 것 같아서 서둘러 승방으로 돌아왔다. 뒤 따라 들어온 그는 여전히 온화한 표정이었다. 그의 맑은 눈빛을 보며 나는 깨달은 이의 눈빛이 저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 여름 바닷가만 아니었으면. <만다라>의 지산 스님을 닮고 싶다던 그를 그리워만 하면서 살았을지 모른다.

 "이젠 더 이상 나를 속일 수 없어. 중이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면 벗을 수밖에. 당신만 허락한다면 나 승복 벗을게. 우선 내 아기를 갖고 싶어. 혜야? 내 말 듣고 있니?"

 언제였든가. 더 이상 스님과 불자 사이가 아닌 연인 사이가 되어 남의 눈을 피해가며 만나던 날 그가 했던 말이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화르르 웃으며 내가 했던 말은 이랬다.

 "결혼도 안한 여자보고 먼저 아이를 낳아 기르라니 말도 안 돼. 스님,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녀요? 나와 결혼이라도 할 생각이에요?"

 "그래. 진심이야."

 "하지만 내 답은 NO! 이대로가 좋아요. 난 아직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도 않고요. 독신녀를 고집하진 않지만 혼자 살고 싶거든요. 난 할 일이 있어요. 막내 동생 공부도 시켜야 하고 혼자 먹고 살 터전도 마련해야 하고. 복잡하네요. 저는 우리 부모님이나 동생들을 져버릴 만큼 스님을 좋아하지 않나 봐요. 제겐 갚아야 할 빚이 엄청 있거든요. 전생의 업 같은 거. 지금도 업을 짓고 있는 것 같아 속이 불편한데. 나더러 더 큰 업을 지으라고요? 말도 안 돼. 난 사랑만 하고 싶어요."

 그랬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와 결혼 같은 걸 약속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아마도 나는 그를 덜 사랑하고 있었겠지. ‘그래요. 우리 결혼해요. 당신과 결혼해서 평범하게 사는 꿈을 꾸곤 했어요. 우리 같이 살아요. 지옥 불에 떨어진다 해도 당신과 함께라면 행복 할 테니까.’ 라고 말했으면 어찌 됐을까. 아님 ‘당신은 절대로 그럴 수 없어요. 당신은 부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사람이지요.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는 이치를 당신은 더 잘 알면서 그런 말을 해요? 파계승이 되어 당신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을 나보고 지켜보라고요? 차라리 만나지 않음만 못하지.’ 그렇게 말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를 만나면 나는 늘 아버지를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서 아버지의 서늘하면서도 따사로운 눈빛이 떠오르곤 했다. 그와 아버지 사이엔 아무런 끈도 없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부녀지간이라기 이전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봄 날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게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꼬집을 수 없지만 무엇인가 있었다.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교차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 미묘한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이며 사춘기를 겪었었다.

 나는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말없는 아이였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께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니 뜻이 그라모 그래야제. 너거 옴마는 일언지하에 반대다. 니가 이해해라. 다 큰 가스나를 밖에 내 놀라쿵깨 걱정이 돼서 그라는 기다. 니 하기에 따라 니 동생들의 앞길이 열리게 되모 더 좋제. 이 골짝에서 니 중학교 보내는 것도 우리 형편에 힘들었다. 하지만 너거 선생이 추천서까지 써 줌서 니를 보내라쿠기도 하고, 니가 공부를 더 하고 싶다니께 내 말리지는 않으마. 사실 애비가 돼서 니한테 면목이 없지만 우짜것노. 우리가 풀뿌리로 연명하는 한이 있어도 너거들 공부는 시키고 싶다만 형편이 이러니 니가 성공해서 어린 동생들을 책임지고 돌봐 주모 좋것다. 니한테는 저 머스마가 후제 든든한 울이 되는 기라. 심들어도 니 하고픈대로 해 봐라." 

 아버지의 말씀은 이어졌다.

"나는 공부에 포원이 진 사람이다. 지지리도 가난한 산골 소작농 집에서 태어나 서당에 다닐 형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이십 리 길을 걸어가야만 당도하는 일본인이 세운 소학교에 다닐 엄두는 애초에 낼 수가 없었다. 남의 집 꼴머슴으로 들어가 잔뼈가 굵어지면서 어깨너머로 글자를 깨쳤니라. 참 아득한 세월이었제."

 아버지는'참 아득한 세월이었제’ 하시며 먼 산을 보셨다. 아버지의 눈은 남쪽으로 열린 봉창 너머로 멀리 지리산 봉오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작은 아씨!’ 아버지는 속삭이듯이 작은 아씨를 불렀다. 나는 그날 아버지의 이마 위에 새치가 드문드문 난 것을 보았다. 

 갑자기 아버지가 폭삭 늙어 보였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는 해 고향을 떠났다. 하루에 서너 번 밖에 다니지 않는 지리산 밑의 오지마을에서 공장이 밀집해 있는 마산이란 도시로 나왔다. 마산 한일 합섬 주식회사에서 사원 모집을 한다는 광고지와 학교장 추천서 한 장과 주민등록 등본, 본인이 원하면 야간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으며 기숙사를 제공한다는 전단 한 장 들고 도시의 그늘에 섰을 때 오히려 숨이 탁 틔었다. 내가 비비고 살아야 할 자리를 찾은 것처럼 자신감에 넘쳤다. 나는 낮에는 캐시미론 이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밤에는 한일 실업 여자 고등학교 야간부를 다녔다.

 그리고 이 년 후에는 남동생 영호와 영진이를 데리고 와서 00중학교에 입학시켰다. 나는 기숙사를 나와 동생들과 자취를 했다. 고등학교 3년 가을에 경남 지방 공무원 공채 시험에 합격하여 공순이를 면할 수 있었다. 나의 첫 발령지가 다행히 마산이었다. 쥐꼬리만 말단 공무원의 봉급으로 두 동생 학비를 대기만도 버거운데 내 욕심은 끝이 없어서 다시 야간 대학을 다녔다.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초, 중학생 과외를 하면서 야간 대학을 졸업했을 때 졸업장을 받아 본 아버지는 집안의 자랑이라 하셨고, 어머니는 기쁜 표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난 표정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피는 못 속이는 법'이라며 혀를 찼다.

 뒤 돌아보면 나의 이십 대는 사랑을 할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아온 날들이었다. 연애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때는 이미 서른을 코앞에 둔 노처녀였다. 서글펐다. 그 마음을 부처님 앞에서 위로받고 싶었다. 어릴 적에 할머니의 손을 잡고 다니던 절간을 다시 찾게 되었고, 그 사람을 만났다. 내 나이 스물일곱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나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듯이 그 사람에게 빠져 들었다. 짝사랑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지금 내 나이 서른 둘, 나는 막다른 길에 내몰린 느낌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무토막같이 뻣뻣한 다리는 감각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창문 곁으로 한발 옮기자 갑자기 눈앞이 부옇게 변하면서 휘청거렸다. 창틀을 짚고 섰다가 꽃무늬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가슴을 찌르는 순간 눈을 꽉 감았다. 하얀 비눗방울들이 무수히 떠다니다가 나의 망막에 내려앉았다. 현란한 색깔들이 한꺼번에 검은 구멍을 향해 소용돌이치면서 달려들었다. 

 ‘그 사람을 만나야 해. 확인하기 전에 주저앉을 수는 없어. 그는 어디 있지?’

 눈을 떴다. 차가운 겨울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눈을 똑 바로 뜨고 악에 받친 여자처럼 해를 쏘아 보았다. 듣기 싫은 기계나 자동차 소음들이 바람을 따라 사정없이 밀어닥쳤다. 해가 서쪽으로 기우뚱 했다. 어제 내려 쌓인 눈에 반사된 저녁 햇살은 고향집 텃밭에서 자라는 봄동처럼, 차디찬 눈 속에만 핀다는 복수초처럼, 서쪽 하늘을 아름답게 태우고 있었다. 지금쯤 그 텃밭에도 서릿발이 하얗게 돋아 있으리라. 

 아버지의 머리 결도 서릿발이 성성하겠지.

 여행용 배낭에 간단한 일용품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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