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온종일 비를 바라보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 아무리 애를 태워도 젖은 날은 단감을 딸 수 없다. 일요일은 비가 그칠 것이라지만 그날은 문중 시제 날이다. 조상도 모셔야 한다. 이미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없지만 조상이 있어 후손이 있는 거다. 내 속의 짜증 불을 끄는 방법은 다른 일에 몰두하는 거다. 읽다만 책을 펼쳤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 빠져 들었다. 한강의 소설이 읽기가 어렵다는데 나는 참 읽기가 편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술술 읽히는 책, 과거와 현재, 영혼의 만남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는 소설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과 작별하기 위해 유서를 쓰던 내가 친구의 부름을 받는다. 제주 산간 외딴집에 사는 인선이가 손가락이 잘려 서울 병원으로 온 것이다. 그 친구를 만나고 친구의 부탁으로 친구가 키우던 앵무새를 살리기 위해 제주로 향하면서 소설은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 영혼과 조우하면서 인선과 나눈 이야기 속에 빠진다. 제주 4.3 민간인 학살 사건의 전말에 대해. 인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제주 민간인 학살의 희생자였고 생존자였다는 것이다.
거기에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 자료가 요소요소 배치되어 역사를 조명한다. <소년이 온다>와 비슷한 맥락의 글이지만 역사의 소용돌이에 희생당한 민간인의 삶과 그 딸의 아픔이 절절하게 그려진 소설이다. 한강의 소설은 대부분 조용하게 읽힌다. 작가의 성격이 어느 소설에서건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다. 작가가 현실보다 내면의 자신과 마주하거나 꿈과 영혼, 현실과 환상이 몽롱하게 오가는 소설이다. 작가의 단편들 역시 그랬다. 작가의 특징이 아닐까. 작가는 작중 인물과 합일을 이루어야만 이야기를 풀어낸다. 내 소설을 읽은 독자도 ‘작가님 모습이 소설 속에서 보여 미소 짓게 해요.’ 그런 말을 했었다. 작가는 자신이 쓰는 글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가을비는 환영받지 못하는 비다. 그 비덕에 장편소설 한 권을 읽어낼 수 있었으니 고마워해야 할까. 생일 선물로 보내준 세 권의 책 중 겨우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어냈다. 침침한 눈, 노인성 시력저하는 정해진 길을 가는 일이다. 무리하지 않게 독서를 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집중해서 읽어야 책의 활자가 살아난다.
책을 덮고 창밖을 본다. 은행 알이 떨어지고 나뭇잎이 떨어져 구른다. 빨갛게 물들었던 느티나무 잎은 거의 떨어져 앙상한 가지가 더 많다. 조락의 계절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긴 폭염 탓에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더위에 취약한 나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과나무 역시 앙상하다. 몇 개 달린 모과도 크지를 않는다. 느티나무도 은행나무도 모과나무도 죽어가는 것 같아 안쓰럽다. 죽고 사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 어쩌지 못한다. 순리대로 따라 사는 것이 인생이다. 큰 나무가 죽으면 작은 나무가 큰 나무가 된다. 순환이다. 인생은 순환의 고리를 따라 돌고 도는 것이다. 조용히 빗방울을 바라본다. 젖은 마당의 잔디도 기운을 잃었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가는구나. 오후부터 비가 그쳤다. 인생에서 작별하지 않는 것이 있던가. 생명은 어느 것이나 살고 사랑하고 죽는다. 나도 머잖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가볍게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추하지 않게 늙고 싶은 노년은 모든 노인의 바람일지 모른다. 그 바람대로 살다 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지난 시월 중순 경 도산 아저씨가 밤새 안녕했단다. 유언 한마디 못하고 자는 잠에 갔단다. ‘죽을 복은 타고났네. 그러니까 평소에 자식이든 남편이든 아내든 유언을 해 놓아야 해.’ 서둘러 이승 떠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도 떠날 때가 되면 떠나게 되어 있다. 평소 죽을 준비를 하며 사는 것도 잘 늙는 길이다.
202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