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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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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Dec 06. 2024

아름다운 나의 나라

 아름다운 나의 나라     


 한밤중에 가슴이 쿵 떨어졌다. <속보, 긴급 비상계엄 발령> 문자가 떴다. 뭔 일이래? 전쟁 터졌나? 육이오 때처럼 북한이 남침했나? 속전속결, 용산 대통령궁이 강타당했나? 여기저기 뉴스를 뒤적여도 내용이 없다. 유튜브를 검색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야당의 행위로 국정이 마비되었다며 종북 좌파를 척결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한다고 했다. 저 사람, 술 취해서 헛소리 하나? 지금이 19세긴 줄 아나? 한 나라를 이끄는 수장의 사고가 저 정도라니. 


 1979년, 시월 26일이 생각난다. 주말을 맞아 고향집에 갔던 나는 엄마랑 도토리를 주워 오던 길이었다. 이웃 동네 이장이 헐레벌떡 뛰어오며 전쟁이 터졌다고 했다. 비상계엄령이 선포 됐으니 빨리 숨으라고 했다. 길에 다니다 총 맞는다고. 엄마와 나는 길가의 구멍가게에 들어가 라디오를 경청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었다. 그리고 1981년 전두환 쿠데타에 의한 비상계엄령 선포가 있었다. 그리고 2024년 대통령에 의한 비상계엄령 선포였다. 대통령이 독재정치를 하기 위해 비상계엄령 선포? 누가 저기 동조했지? 군 통솔권자와 대통령의 비밀회담으로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대통령이 제 무덤 파고 있는 것 같네. 무슨 저런 황당한 일을 벌이나. 설마 미얀마 사태처럼 되는 것은 아니겠지. 대통령이 『서울의 봄』 영화에 매료당했나? 그럴 만큼 국방부와 단단한 기반을 다져 놓기나 했나? 국민의 대다수가 등을 돌린 마당인데 대통령 놀이 하려니 질려서 그냥 독재로 넘어가려고 작정했나? 지금이 어느 시댄데. 봉건주의로 돌아가 타락한 왕 노릇이라도 해 보고 싶나? 착각도 자유지만 이건 상식 이하네. 민주주의를 군사독제국가로 돌리겠다는 망상에 빠졌나? 누가 부추겼지? 베갯머리송사도 저 정도면 연산군의 장녹수 뺨치겠네. 


 새벽 2시가 넘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완전무장을 한 군인과 경찰들이 국회의사당을 에워싸고, 국회의사당 앞에 몰려든 시민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목소리와 하늘로 치솟는 주먹을 봤다. 군인이라고 생각이 없겠나. 21세기를 사는,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 세상에서 대통령이 벌일 일은 아니었다. 해프닝으로 끝나겠지. 아니지. 국회에서 비상계엄령 해지를 요구하고, 대통령이 받아들여야 일단락 나지만 그다음이 문제네. 대통령과 계엄사령관으로 지정받은 국방부 장관은 빨리 해외로 도피를 하거나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해야 끝날 것 같네. 계엄군이 시민에게 총이라도 발사한다면 피바람이 불겠지. 그렇게 되면 대통령은 핫바지가 되겠지. 그만큼 똑똑한 사람이 누가 있지? 국회에 모인 여당야당 국회의원이 만장일치로 비상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는데. 대통령은 스스로 무덤 속에 뛰어든 격이야. 이제 대통령 탄핵의 확실한 증거를 줬으니. 대통령이 독재를 하기 위해 법을 어겼으니 당연히 그 죄를 물어야지.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꿈을 꿨다. 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 자신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권력을 잡으면 놓고 싶지 않은 것도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돈과 권력, 죽을 때까지 붙잡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어리석다는 말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옛날 왕조 시대에도 백성을 위하는 왕은 명군으로 인정받았다. 백성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구사하는 것이 명군의 첫째 조건 아닌가. 시대가 바뀌었지만 대통령이 된 자는 자기 이득에 연연하기보다 민생부터 챙겨야 한다.


 오일장에만 가도 고달픈 삶이 보인다. 물가가 너무 치솟아 시장보기 두렵다는 민생이다. 코로나가 만연할 때보다 더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국민들, 돈과 권력을 쥔 사람은 죽었다 깨도 모르리라. 이 풍요로운 세상에서도 끼니 걱정을 하며 굶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삶의 음지는 여전히 존재한다. 노숙자는 여전히 구걸을 하고 하룻밤 잠자리 걱정을 한다. 누가 노숙자가 되고 싶어 됐겠는가. 서울에만 해도 현재 노숙자가 400에서 600명으로 추정된단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자기 아내의 특검과 자신의 과실을 숨기고 민주당을 잡아들이기 위해 내란죄를 범하다니. 정신적 문제가 확실한 사람을 우리는 아직도 대통령으로 불러야 하나. 


 오늘도 두 사람이 북망산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여자는 칠십 초반, 남자는 예순서너 살, 이젠 조금 느긋하게 살아도 될 나이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그들 역시 열심히 살았을 것이고, 살고 싶었을 것이다. 진짜 죽어도 되는 사람은 명이 길고, 진짜 죽기 아까운 사람은 일찍 죽는다는 말이 있다. 악착스럽게 돈 모아 쟁여놨다는 남자는 그 돈 한 푼 못 써보고 죽어 원통할 것이라는 험담도 들었다. 여자는 미혼모로 살다 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정치는 아무 의미도 없지 않았을까.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사는 국민의 한 사람에 불과하다. 


 하지만 참 치졸하고 어리석다. 빠른 시일에 국정이 안정되고 국민의 불안을 가실 수 있게 잘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하야하는 방법이 최선인데 그럴 수 있을까. 국회의원들 역시 어리석긴 마찬가지다. 제 밥그릇부터 챙기고 권력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는 군상들 같다. 국민이 뽑은 정치꾼들,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꾼들, 국민의 삶을 위해 희생해야 마땅한데. 제가 잘나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된 줄 아는 사람이라면 개선의 여지가 없지 않을까. 


 밤잠을 설쳤더니 피곤하다. 거울 앞에 서서 노인의 길을 걷는 촌부의 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본다. 대한민국, 아름다운 나의 나라, 참 살기 좋은 나란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인데. 왜들 이러나.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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