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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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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Dec 15. 2024

무파라면에 물 건너간 졸혼

무파라면에 물 건너간 졸혼  

   

 농부랑 말다툼을 했었다. 

 부부만 살아도 마음 맞추기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노 부부 중에 졸혼을 선택하는 사람들 마음을 알 것 같다. 아옹다옹하다가 한쪽이 떠나면 그제야 그립고 아쉬운 것이 사람살이다. 함께 있을 때는 원수 같다가도 없으면 그리운 것도 사람살이다.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있을 때 잘해.’ 그 말은 진실이지만 있을 때 잘하기 어려운 것은 왤까. 각자 생각의 폭이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고, 각자 타고난 성품대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길이기 때문이다.


 부부사이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것은 너무 익숙한 탓도 있지만 몇십 년을 한 이불 덮고 살아도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이기심이 탓은 아닐까. 부부가 자존심 세울 일도 없으려니 싶지만 살아보면 그 알량한 자존심이 문제의 발단이기 일쑤다. 어려서 읽은 동화처럼 황소를 몰고 시장에 가서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바꾸어 오는 영감을 보고 ‘잘했소.’할 수 있는 아내가 있기나 할까. 나는 그러고 싶은데 참 안 된다. 아내의 말 한마디에 골을 내고 갈기를 세우는 농부를 보며 아내에게 쌓인 게 많은 것 같다. 


 우리 부부는 노인의 길을 걷고 있다. 젊을 때 서로에게 쌓인 앙금은 노인이 될수록 더 견고해지는 것은 아닌지.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는 것은 남일 때만 해당하는 것 같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지만 살아보니 아니었다. 부부사이에는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는데 그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 것도 썩은 자존심이다. 말 한마디에 수 십 갈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와 응어리를 만들어 쟁이기 때문은 아닐까. 털어버리고 싶어 하면서도 털어버릴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 같다. 한량없이 넓은 마음으로 포옹하고 이해하는 것도 순간에 불과한 것 같다. 


 중생의 마음은 조석지변이다. 하여 도를 구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마음을 닦아야 한다고 했던가. 버리고 비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쌓이는 정이란 것이 있다. 세월을 되새겨보면 우리 부부도 젊을 때와 달리 쉽게 화를 내고 쉽게 다투지 않는다. 오는 말이 미울 때도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할 정도의 여유도 생겼다. ‘여보, 당신 좋아하는 깍두기 담갔는데. 맛이 어떤지 볼래?’ 아내는 애교작전으로 나가기도 한다. 남편은 ‘익어야 맛을 알지.’라든가. 슬그머니 식탁에 다가와 깍두기 한 개 주워 먹고 돌아서며 ‘익으면 맛있겠다.’ 선심을 쓰게 된 것도 큰 변화 아닌가. 


 농부는 여전히 몸이 안 좋은 것 같다. 쯔쯔가무시에 의한 발진티푸스라는 확정을 받고 약을 먹는데도 기운이 안 돌아오는 모양이다. 점심을 먹고 방에 들어가 눕는다. 나는 살그머니 칼을 챙겨 텃밭에 든다. 무를 뽑았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따뜻한 날이 계속된다. 다른 지역은 폭설도 내렸다지만 우리 고장은 비조차 뿌리지 않았다. 조만감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질 것 같아 서둘러 무를 뽑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농부가 닦달하는데 지금은 무를 뽑아낼 생각도 않는다. 내가 해 치울 수밖에 없다. 


 무는 씨앗을 뿌린 시기에 따라 굵기가 다르다. 가장 일찍 심은 무는 너무 굵다. 제일 늦게 뿌린 무는 내 주먹보다 자잘해 무청김치 담그기 딱 좋고, 중간에 뿌린 것은 가장 먹기 좋게 자랐다. 동치미용으로 제격이다. 무를 분리해 뽑아 가지런히 놓고 한숨을 쉰다. 저 많은 무를 김치 담그려면 내 허리가 견뎌낼까. 굵은 무는 무청을 잘라 내고 컨테이너 박스에 담았다. 두 박스나 된다. 중간 것과 자잘한 무는 일을 삼고 가렸다. 


 이 많은 무시 다 우짜 끼고?

 농부가 언제부터 나와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쩌기는 겨울 내내 먹어야지. 무김치, 무채나물, 무 볶음나물, 무 맑은 국, 무 된장국, 무파라면, 깍두기, 시래깃국, 시래기 밥, 기타 등등.

 뱅글뱅글 웃으며 손가락을 곱자 농부도 어이가 없는지 따라 웃는다. 

 저 무를 구덩이 파고 묻을까? 아이스박스에 담아 둘까?

 구덩이 파고 묻으면 파내기 귀찮다며? 작년에 아이스박스에 담지 않았나?

 그랬지. 아이스박스에 담아놔도 노란 무순이 자라나더라. 그 무순도 나물 해 먹었잖아.


 지난해는 무가 적었다. 자잘하기도 했다. 그 무를 무척이나 아껴 먹었다. 올해는 무가 풍년이니 일을 삼고 먹어치워야겠다. 그래야 잔소리 안 듣지. 농부는 저장할 무를 창고에 갖다 놓고 아이스박스를 챙겨준다. 나는 신문 한 아름을 갖다 놓고 무를 싸서 저장하고 이불로 덮어 다독이는 사이 농부가 또 사라져 버렸다. 트럭이 없다. ‘감산에 갔나? 일하기 싫으면 안 해야지. 잘 됐네.’ 무를 다듬으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데 트럭이 마당을 들어선다. 농부는 대나무 몇 개를 베어왔다. 그 대나무를 덧댄 평상 위 지붕 아래 걸친다. 거기에 시래기를 걸친다. 솜씨꾼 농부는 무엇이든 척척 만들어낸다. 처마 밑에 시래기가 보기 좋게 걸렸다.


 농부는 시래기를 걸어놓고 다듬어놓은 무를 수돗가로 옮겨준다. 

 저기 평상 밑에 있는 큰 고무다라이 갖다 주고 통 들고 가서 소금 서너 되 퍼다 줘요.

 나는 작은 다라기에 물을 받아 무를 담갔다. 대충 흙을 털어 큰 고무다라기에 담고 소금을 쳤다. 사십 년이 되도록 밥 순이 노릇을 한 주부의 손은 마법의 손이다. 손대중으로 소금을 쳐도 간이 대충 맞다. 무김치가 짜면 맛이 없다. 심심하고 시원해야 식탁에서 잘 팔린다.


 마지막에 소금을 잔뜩 물에 풀어 그 물을 큰 다라기에 붙는다. 무가 자작하게 잠길 정도로. 마지막에 우거지용으로 덮고 그 위에 소금을 고르게 살살 뿌리고 작은 다라기로 눌러준다. 물간을 하면 간이 고르게 밴다. 

 오늘 저녁은 내가 무파라면 끓인다. 당신은 허리 좀 펴.


 여보, 들기름은 냉장고에 있어.

 나는 어둠살 내린 마당을 바라보다 느긋이 책을 편다. 무채를 써는 농부의 칼질 소리가 흥겹다. 이럴 때는 부부싸움 칼로 물 베기가 맞는 것 같다. 옳으니 그르니 하며 핑퐁 게임이라도 했다면 부부 싸움이지만 일방적으로 당한 난데도 억울하지 않다. 농부가 스스로 미안해하니까. 몸이 고단하면 짜증은 자연스럽다. 졸혼까지 생각했지만 생각에 그치고 만 것이 어디 이 번뿐인 가. 부부로 살아갈 동안은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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