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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경남작가상 소식을 듣다.

<촌부일기>

by 박래여

경남작가상 수상 소식을 듣다.


경남작가상을 받게 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어떤 상이든 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경남 작가상 준다네.’ 덤덤하게 말했다. 경남 작가상을 제정한지 몇 년인가. 경남작가회의가 주관하여 그 해 작품집에 실렸던 작품 중에 우수작을 뽑아 상을 준다. 글 잘 쓰는 작가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문우들 사이에서는 안다. 한 동아리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문우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상이라 귀한 상이다.



노인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자괴감이 들 때면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던 동아리 활동도 접어야 할 시기가 아닌가. 반문하게 된다. 등단한지 이십 년도 더 되었건만 아직 소설집 한 권 묶지 않고 사는 내게 경남작가상은 요원한 일이었다. 작가로 살면서 내 이름으로 된 소설집 한 권 묶고 싶은 욕심이 왜 없겠는가. 선후배 문인들이 해마다 작품집을 발간하여 보내줄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보답하는 의미에서 내게 온 책은 완독을 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내발로 뛰어야 얻어지는 것이 있다. 노력하지 않고 그저 줍는 것은 없다. 폐품도 거두어서 고물상에 가져가야 돈이 된다. 가만히 있는데 누가 알아주거나 도움 주나. 맞는 말이다. 한 때 ‘자기피알’ 시대라는 말이 흔했다. 자기 스스로 ‘내가 누구다. 나는 무엇이다.’ 자신을 광고해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며 가만히 있으면 바보 취급받는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나를 소개할 때 작가라는 말보다 촌부라는 말이 편하다.



단단한 땅에 스미는 물은 급하게 붇는다고 잘 스며들지 않는다. 급하게 부으면 땅바닥에 상처가 나지만 천천히 흘러 보내면 땅의 형체 그대로를 살리면서 촉촉해진다. 세상 사람들 이목도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꾸준히 글을 쓰다보면 인정해 주는 독자도 있겠지. 내 대에 작품집 못 엮으면 사후에 자식들이라도 작품집 한 권 엮어주겠지. 안 엮으면 또 어떤가. 동인지든 뭐든 작품을 실어 발표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또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가.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장 나답고 행복하다면 잘 사는 인생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요즘 시골 노인도 주식 이야기를 한다. 주식해서 돈 벌었다는 이웃은 없지만 투자했다는 말은 심심찮게 듣는다. 자식들이 부모의 호주머니 털어 주식투자를 하는 경향도 있단다. 처음 코로나19가 확산일로에 있을 때, 주식이 폭락했을 때 ‘우리도 주식 사 볼까? 이럴 때 주식투자하면 돈 벌겠는데.’ 농부의 말에 아들도 동의를 했지만 나는 반대였다. ‘주식에 주자도 모르면서 투자라니. 그렇게 돈 벌어 뭐할래요?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삽시다. 아들에게 헛바람 넣지 마소. 주식도 도박인데. 우리는 천성대로 정직하고 우직하게 사는 것이 낫소.’ 농부는 ‘당신은 진짜 수구골통 보수다. 왜 그렇게 변화를 두려워하는지.’ 혀를 찼다. 부자로 살기는 애초에 글렀다. 죽느냐 사느냐 목숨을 걸어봐야 하는데 나는 늘 안정제일 주의로 산다.



한때 나도 문단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아직 그 욕망을 완전히 접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하고 칭찬하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어느 순간 프랑스 작가 로맹가리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문단에서 이미 나이 들었다는 것, 내 글에서 젊음의 참신함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것, 현실보다 과거에 집착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다. 로맹가리는 그런 문단의 쓴 비평을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에밀 아자르라는 가상인물을 내세워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고 문단의 기린아로 등장한다. 그는 자살을 하면서 비로소 에밀 아자르가 로맹가리라는 것을 밝힌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글을 쓰는 것은 남에게 보이거나 인정받기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유일하게 몰입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글 쓰고 책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2020년을 거쳐 오며 모든 문단 활동도 접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모든 바깥 활동을 접고 칩거하며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이나 실컷 보며 쓰고 싶었던 소설이나 주구장창 지치도록 써보자고 작정했었다. 농부를 따라다니며 농사짓는 것도 만성 기저질환에 시달리는 내겐 힘든 일이다.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 쓰는 일이다.



문단 등단이후 왕성한 창작욕에 불타던 시절에는 글쓰기에 대한 갈증으로 허덕였다. 글이 쓰고 싶은데 해야 할 일은 산더미였다. 아내와 며느리와 엄마의 자리만 있고 내 자리는 없었을 때다. 돌아보면 그런 갈등이 몸을 망친 것은 아닌가. 내 능력이 이것뿐인가. 앎의 깊이가 너무 얕다고 느껴질 때면 왜 인생 전반에 대해 깊이 아우르는 생각을 못할까 나 자신이 한심하고 절망스러울 때도 많았다. 밖으로 향한 눈을 내 안으로 돌리자고 수도 없이 다짐해도 내 그릇이 이것 밖에 안 되는구나. 포기도 했었다. 온종일 글 쓰고 책만 볼 수 있는 삶을 원한 적도 많았다.



이젠 나를 위해 살자고 생각할 때는 이미 노인대열에 서 있는 나를 보았다. 상노인에 대한 것도 자식에 대한 것도 젊어서는 짐이라는 생각조차 못했다.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당연한 삶이라고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내가 늙어가면서 내 몸의 주인조차 될 수 없다고 느낄 때 자식도 부모도 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짐도 달라지고 있다. 두 노인이 자식에게 짐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나도 내 자식에게 짐이 되어가고 있구나싶어 짐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야지 다짐할 때가 많지만 늙어가는 육체를 무슨 힘으로 막겠나.



어쨌든 축 쳐진 내 어깨를 경남작가상이 어루만져주는 것 같다. 심사위원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린다. ‘우리는 지는 해고 두 아이는 중천에 뜬 해니 아이들 의지에 따라 삽시다. 돈 벌 욕심도 내려놓고 명예를 좇는 마음도 내려놓고 하루하루 행복하기로 합시다.’ 농부와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어거스트 러시’란 영화 속 천재 소년을 생각한다. 마음으로 듣는 소리의 파장을 음미해 볼 일이다.



**이 글은 몇 년 전 경남작가상 소식을 듣고 쓴 글입니다. 새삼스럽게 여기 올려봅니다. 나잇살 늘어도 글의 깊이는 깊어지지 않는 것 같아 쓸쓸한 가을 바람 같은 마음입니다. 천천히 가야 할 때라는 것만 압니다.

모두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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