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을 수밖에
우리 집 앞에서 동네로 가는 길의 가로수는 매실나무고 재를 넘어가는 구불구불한 길의 가로수는 벚나무다. 어린 벚나무를 심을 때는 저게 언제 탐스러운 꽃을 피우나 싶었는데 몇 년 사이 벚꽃이 피면 탄성이 나올 만큼 화사한 꽃길이 되었다. 무더운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벚나무가 며칠 사이에 나뭇잎을 떨어뜨린다. 단풍이 되어 떨어져 구르는 나뭇잎을 보며 조락의 길을 생각한다. 한 해 삶이 끝나면 아낌없이 잎사귀를 털어버리고 나목으로 우뚝 서는 벚나무다.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 수필이 저절로 떠오른다. 수필의 한 대목을 옮겨본다.
//벚나무 아래에 긁어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낮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가제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낙엽 타는 냄새는 좋다. 상큼하다. 예전에는 나도 낙엽을 긁어모아 태우곤 했다. 시댁에 살 때도, 이웃의 남의 집을 빌러 분가를 했을 때도 대빗자루로 마당을 썰어 모인 낙엽을 마당 구석에서 태우곤 했었다. 커다란 드럼통이나 깊이 판 구덩이에 쓰레기를 태우곤 했었다. 부지깽이를 들고 낙엽이 잘 타도록 뒤적거리다보면 장난 끼가 발동하고, 아이들과 불장난을 하며 깔깔대곤 했었다.
몇 년 지나는 사이 동네에서 뚝 떨어진 산속에 터를 잡으면서 산불 걱정을 하게 되었다. 쓰레기 태우는 것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쓰레기 분리수거가 시행되지 않았을 때였다. 불에 안 타는 쓰레기는 따로 모았지만 불에 타는 쓰레기를 태우는 것이 문제였다. 불 때문에 두어 번 혼이 난 후로는 아이들도 나도 자나 깨나 불조심이었다. 바람 잠잠한 날 쓰레기를 조금씩 지정된 쓰레기장에서 태우는데 항상 들통에 물을 가득 담아 놓고 대기 했었다. 잔디를 깐 마당의 낙엽은 긁어모을 일은 없다. 낙엽이 떨어져 굴러도 지저분하지 않다. 저절로 썩어 거름이 되거나 바람이 청소를 해 주는 덕이었다. 돌담이나 구석에 모인 낙엽은 긁어다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면 되었다.
또 몇 년이 지나는 사이 농촌에서 쓰레기분리 수거가 시작되었다. 동네에 공동 쓰레기장이 생기면서 집에서 쓰레기 태울 일이 없어졌다. 쓰레기를 분리해서 동네의 공동 쓰레기장에 갖다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불 때문에 가슴 졸일 일도 없었고 타지 않는 쓰레기 때문에 골치 아플 일도 없어졌다. 분리해서 모아놨다가 공동쓰레기장에 갖다 놓으면 해결되었다.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아직도 쓰레기봉투 사는 돈이 아깝다고 집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촌로가 있긴 하지만 흔하지 않다. 그것은 풀과의 전쟁이라는 농촌의 여름철, 풀을 죽이는 농약, 제초제는 촌로의 대 환영을 받았다. 제초제 덕에 논두렁밭두렁 태우는 일도 없어졌다. 논밭에 김을 매거나 풀을 베던 호미나 낫, 괭이의 쓰임새도 줄어들었다. 제초제를 과다 사용하면서 농약 중독의 무서움이 드러났다. 다시 참살이 바람을 탔다.
우리 집 마당은 넓다. 온통 풀과 나무다. 무더운 여름이면 잔디 깎는 것도 노동이고, 나무울타리 다듬는 것도 노동이다. 주로 농부의 담당이지만 농부도 노인이 되었다. 예취기 작업이 힘들단다. 산속 집은 몇 달만 방치하면 숲이 될 터이다. 집 주변을 들며나며 풀을 뽑던 나도 힘에 부쳐 손 놓기 일쑤다. 온갖 풀은 비만 질금거리면 안하무인이 되어 기세 좋게 뻗어간다. 그 잡초가 눈에 거슬렀다. ‘자갈 깐 곳이나 뒤꼍에는 제초제 치면 좋겠다. 완전 풀밭이잖아. 풀이 자잘할 때 뽑아야 하는데 이게 게을러서 풀 못 뽑겠다.’ 툴툴거리면 ‘예취기로 베면 된다. 신경 쓰지 마라.’ 단칼에 잘라버린다. 신경 안 쓰고 싶지만 눈에 보이는데 신경이 안 쓰이나. 며칠만 방치하면 칡넝쿨이 벽을 타고 오르겠는데.
그러나 어쩌겠나. 내가 할 수 없으면 내려놓는 수밖에. 벚나무 잎이 구르는 길섶을 바라보며 가을향기를 느끼듯이 싱그러움을 잃어가는 숲을 바라보며 가을이 깊어짐을 사랑하면 되는 일이다. 소나무를 감아 오른 칡넝쿨에 보랏빛 꽃이 조랑조랑 달렸다. 칡꽃 향기가 기막히다. 텃밭 가의 야생 벚나무에서 노랗게 물든 낙엽 몇 개가 노랑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온다. 나는 가만히 손을 내민다. 애 태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니 탁 접어버리고 풍월이나 읊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