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야외에서 훈련할 예정이니 최대한 옷을 따뜻하게 입고 와주세요."
서.. 선생님, 영하 8도인데요? 이 날씨에도 추.. 축구를 하나요?
합디다.
아들놈 축구 경기를 여러 번 따라다녀봤지만 그림자 1도 없이 더워 죽을 것 같은 날도,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도,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낀 날도, 땀이 피부에서 배출되자마자 바로 얼어버릴 것 같은 영하의 날씨에도! 하더라고요, 축구를. 절레절레.
대충 기모 내의에 기모 반팔티에 최강 따뜻한 양기모 맨투맨을 입고(대충이 아닌데??) 비장한 각오로 나섰다. 조금만 뛰어도 갓 태어난 새끼 기린처럼 다리가 후들후들 꺾이는 근육감 제로의 순살 100%의 다리인데 이 추운 날 잘못 디디기라도 했다간 깁스행이다! 다치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
이 날은 아들 훈련 때 어깨너머로나마 들었던 인사이드-아웃사이드 볼터치에 대해 배웠다.
공을 발의 아치 부분이 있는 안쪽으로(인사이드) 톡톡 쳐서 두 번 앞으로, 발등에서 이어진 발 바깥쪽으로(아웃사이드) 톡톡 쳐서 두 번 앞으로. 고깔 모양의 콘을 피해 지그재그로 전진하는 훈련인데 눈으로 보는 것과 내가 직접 하는 것은 역시나 천지차이. 뻥- 하고 힘을 줘서 찬 것도 아닌데 아주 약간의 힘이 더해지면 공이 그냥 튀어나가 버린다. 도망가듯 멀리도 간다. 그렇다고 힘을 너무 안 주면 나 혼자 거북이처럼 처져 제자리다.
아- 어쩌란 말인가. 순간, '답답하면 너네가 뛰어라'라고 했던 기성용 선수의 분노가 담긴 싸이월드 대문글이 생각났다. 내가 뭣도 모르고 욕만 했죠? 나 이제 그 말 너무나도 이해해요, 기 선수.
지난 도쿄올림픽 때 배구 경기를 보면서 화들짝 놀랐던 사실 하나가 있는데, 배구에서 떨어지는 공을 발로 걷어내거나 수비해도 된다는 것. 뭐? 배군데 왜 발을 사용해? 어머 나 너무 깜놀이다. 배구잖아? 축구 아니 아니 아니잖아? 남편 왈, 그 동그란 공을 손으로 컨트롤하는 게 쉽겠냐, 발로 컨트롤하는 게 쉽겠냐. 손으로 하는 게 훨씬 쉽고 정확한데 더 어려운 발로 하는 거? 오케이다, 유남쌩?
그렇다. 공을 발로 컨트롤하는 행위.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 것이다. 모난 곳 하나 없이 동글동글해서 성격까지 좋을 것 같은 공은 생김새와는 다르게 자꾸 나한테 야속하게만 군다. 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질 않니... 게다가 안으로 바깥으로 안 쓰던 근육을 쓰며 발을 놀리다 보니 기어이 한 명이 탈이 났다. 오른쪽 허벅지에 근육이 올라와서 파스도 뿌려봤지만 다리를 절면서 뛴다. 경기를 하다가 넘어지거나 서로 부딪혀서 다치진 말아야겠다 정도로만 생각했지 이렇게 허무한 실패를 할 줄은 몰랐다. 그저 NO근육, NO체력에서 오는 YES부상.
그러고 보니 한 주에 한 명씩 아픈데, 다음 주는 제 차롄가요? (과연)
또 다시 돌아왔다. 나 혼자 느끼는 마음의 부담감, 그 시간. 연습 경기!
나름 축구 경기니 전후반 나눠서 하는데, 전반에만 체감상 20분은 뛴 것 같은데 겨우 8분 지났다는 얘기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첫 수업 때가 기억난다. 오늘은 또 얼마나 저질체력을 뽐낼지 나도 내가 기대되는 시간. 하지만 나란 반!전! 있는 여자, 부담된다는 말이 무색하게 2골인지 3골인지 성공시키고 나름 준비해 간 세리머니도 했다. ㅎㅎㅎ
한 시간의 뿌듯해 마지않는 시간이 지나고(정말이지 수업이 끝나면 행복하다 못해 한 시간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 열정이 샘솟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이 찍어준 연습 경기 영상을 봤다. 어디... 나 얼마나 잘하는지 볼까...?
왓? 왓 더...????
뭐지? 내 영상 맞아?? 난 정말 목에서 피맛이 날 정도로 뛰어다녔는데, 공만 열심히 쫓아가고 열심히 차고 다녔는데, 나 왜 걸어 다녀?? 왜 움직이질 않냐고, 왜 이 사람아... 왜...
단톡방에 유튜브로 올린 영상을 공유해주니 팀원들 모두 기함한다. 어머 우리 왜 걸어 다녀요? 난 분명히 뛰어다녔는데? 모두 한 마음 한 뜻. 경기에서 내가 직접 뛰며 느끼는 체력의 한계와 제 3자가 보는 경기력의 차이는 천지차이임을 다시 한번 느끼며. 기성용 선수, 내가 다 미안해요.
그리고 우리 팀은 오늘도 다짐한다.
우리 다치지 말고 오래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