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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Feb 17. 2022

비이겁한 변명일 뿐입니다!

5주 차

저녁 8시 현재 기온 영하 5도, 체감온도 영하 10도쯤.


말 그대로 개(?)춥다.

개가 추울 정도로(??) 춥다.

개소리 나올 정도로(???) 춥다고요...


체감 온도 영하 10도라는 매서운 날씨에 맞서 어기적어기적 모인 우리 네 명의 어머님들은 추운 날 야외 훈련이 처음도 아닌데 실내 훈련에 대한 미련을 아직 못 버린 눈치다. 일단(실내 훈련도 염두에 두겠지만 웬만해선 어림도 없다는 뜻) 따뜻하게 입고 오라는 선생님의 카톡에 모자부터 장갑, 기모 레깅스, 넥워머까지 든든히 갖춰 입고 왔음에도 은연중에 서로 주고받는 눈빛엔 실내 훈련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이 묻어있다. $$님, 너두? 야, 나두!


그래도 수업 시작 전 패스 연습도 하고 몸을 좀 데웠더니 추위가 생각보다 매섭진 않아서, 그리고 막무가내로 늘어나는 이런 코로나 같은 놈 때문에 실내는 약간 불안하기도 하고... 한파의 날씨 속 야외 훈련에 다시 한번 도전해본다. 아자아자!


오늘 훈련은 세 군데에 포인트를 두고 짧고 길게 패스를 주고받으며 포지션 이동을 하다가, 마지막엔 롱패스를 받아 슛 때리는 연습. 각 지점에 놓인 폴대 뒤로 이동하면서 공간을 만드는 감각도 익히고 수비수 대신 세워진 장애물을 피해 연결하는 쓰루 패스도 해본다. 역시나 처음엔 어디로 패스를 줄지 몰라 당황했지만 몸으로 하다 보니 이내 익숙해졌다. 심지어 와우, 이거 재미있다고 생각이 드는 중에...


 "어허이~ 이 사람 오늘따라 왜 그렇게 힘이 없어? 이상한데? 하기 싫어서 그런 거야?"


헐, 이게 무슨 소리람? 구석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한마디 했다. 다름 아닌 마지막에 골대로 슛을 때려야 하는 지점에서 힘없이 인사이드로 얌전히 밀어 넣기만 하는 내가 이상하다는 것. 옆에서 '강하게!'라고 외치는데도 우물쭈물하다가 공을 놓쳐버리거나 자신 없이 차는 모습이 마치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사람처럼 보였단다. 밥을 안 먹고 와서 그러냐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옆에 대표님까지 와서 지켜보고 있으니 부끄러워서 그러냐고 놀려도 본다. 쒸익쒸익, 아니라고...


아예 모르는 것보다 어설프게 아는 게 더 무섭다고, 공차기 자세를 배운 이상 이제 나에겐 공을 '찬다'는 것은 '디딤발을 제대로 놓고 발등으로 공 가운데를 세게 찬다'는 일련의 과정이 착착 진행된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공이 눈앞에 오면 디딤발을 어떻게 놓아야 할지부터 생각하기 바빠진다. 비-이겁한 변명일 뿐이지만 멋진 자세로 강한 슛을 때리고야 말겠다!는 고집일지도 모르겠다. 다들 지켜보고 있는데 안차면 안찼지 헛발질은 부끄러워서 못차겠다!는 허세일 지도 모르겠다. 아, 모르겠고. 제대로 된 자세가 아니면 발이 안 나가는 걸 어떡해!


자, 그럼 제대로 마음먹고 찬다면 백발백중 멋진 자세의 강한 파워 슛이냐? 노노놉. 발이 나가도 똥볼일 확률 83.2% 정도인 게 함정(머쓱코쓱). 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굳이 정확하고 멋진 자세가 아니라도 패스해주는 공을 발로 맞춰 골대로 잘도 날리는 다른 팀원들을 보니 머릿속으로 자세 101이 어쩌고 하면서 변명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제이, 그냥 때려! 일단 발을 뻗으라고! 꼬발이든 헛발이든 어때?!


훈련 때도 맥아리 없이 굴더니 연습 경기도 실망스럽다. 노마크 찬스도 놓치고, 공은 차는 족족 비껴나가니 오늘따라 골대가 더 작게 느껴진다. 안 그래도 겨우 무릎까지 오는 아동용 미니 골대인데! 반면 상대팀 중 한 명은 발을 뻗는 대로 골~ 아, 님 오늘 컨디션 좋으시네요. 부럽습니다.


경기는 6:5로 비슷하게 마무리됐지만 나에겐 첫 패배. 승패의 결과 때문이라기보다 경기력이 너무 실망스러우니 확실히 재미가 없다. 경기 때도 덜 흥분했고, 끝나고 남편이 찍어 준 경기 영상도 한번 보고 나니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이런 게 축구 선수의 마음일까...라고 약간의 착각도 해본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시간은 축구에 진심이니까 ;)


그나저나 큰 아이 대표팀 팀원은 8명, 우리 어머님반은 고작 4명인데 경기 영상 조회수는 우리 어머님반이 2배가량 높은 거 실화입니꽈?? 아 못말리는 우리 어머님들의 열정, 열쩡, 열쯔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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