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끝났다. 야심 차게 '의식주 윤리' 단원을 펼쳤다.
나: "요즘 패스트 패션의 트렌드가 주 단위로 바뀌면서 과소비, 동조소비가...또 의류 산업의 환경 문제가…"
(반응이 미지근)
나: "너희 옷 쇼핑 어디서 해?"
남고생 1: "엄마가... 옷장에 검은 옷을 넣어두십니다."
남고생 2: "전 바람막이 2-3벌이면 일 년 가뿐합니다."
(아, '의복 윤리‘ 대화가 안 통한다.)
심기일전하여 '음식 윤리'로 넘어갔다.
나: "햄버거 커넥션! 어쩌고저쩌고… GMO식품 안전성문제! 어쩌고저쩌고… 가공식품 첨가물! 어쩌고저쩌고… 그리고 요즘 '저속노화' 라는 말 많이 들어봤지?"
남고생 3: "저속노화요? 그게 뭐죠?"
남고생 4: "쌤... 그거 쌤 알고리즘에만 추천되는 거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아, 듣고보니 그럴수도 있겠다. 흑...)
남고생 5: "딱 봐도 장사 속인 것 같아요."
그때, 한 학생이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남고생 6: "선생님. 저희가 너무 생활 배경지식이 없는 것 같아요. 솔직히... 오늘 수업이 칸트나 롤스보다 더 어려운 거 같아요."
띠용!!!!!!
우리 삶에 가장 달라붙은 실천 윤리 주제가, 저세상 철학자들의 이론보다 더 어렵단다.
연휴가 너무 길었던 거니? 오늘따라 유난히 깊어진 가을 하늘 아래, 가을을 타는 중인 거니? 멍한 아이들의 눈빛을 보다가, 그 덕에 나도 오늘따라 하늘을 참 오래 올려다봤다.
'생활지능'이 정말 레어템이 되어버린 시대, 그 생생한 현장을 오늘 난 교실에서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