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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고들꽃 Apr 20. 2022

개나리, 풀꽃

제게도 꿈이 있어요, 제 꿈을 꺾지 마세요

공원 안쪽에 있어 전지의 위기를 모면한 개나리(좌)         산책로 옆에 자리한 이유로 줄기가 잘려나간 개나리

 개여뀌와 닭의장풀이 다 자라기도 전에 예초기에 잘려 급한 마음에  피운 꽃
개여뀌 개화(좌)                                                                                닭의장풀의 개화(우)

 우리나라의 고유식물로 가지가 아래로 늘어지는 특징을 가진 개나리는 관상용과 생울타리용으로 많이 심어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지금 한창 만개중이다. 노란색의 꽃은 3월에서 4월 잎보다 먼저 피고 암수딴그루로 자라며 줄기가 2~5미터까지 높게 자랄 수 있는데 줄기의 속이 군데군데 비어있어 낭창낭창하게 휘어진다.   

 개여뀌는 숲 가장자리나 길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한해살이풀로 키는 20~50센티에 이르고 줄기가 땅에 닿으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곧추 자란다. 6~9월에 핑크색의 꽃이 피는데 꽃의 크기가 워낙 작아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매력을 도통 알아차리기 힘들다. 꽃이 피기 전의 모습을 힐끗 스치고 지나칠 때는 좁쌀만 한 크기로 붉은색의 오돌토돌한 알갱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꽃봉오리를 활짝 열어보이면 오묘한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닭의장풀 또한 전국의 들판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한해살이의 풀로 15센티에서 크게는 50센티까지 자라는데  7~8월에 짙은 파란색의 꽃이 핀다. 닭장 근처에서 잘 자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제게도 꿈이 있어요! 제 꿈을 제발 꺾지 말아 주세요 ***

 3월,

아직은 쌀쌀한 바람 속에서 감히 누구도 근접할 수 없도록 청아하고 고고한 아우라를 풍기며 푸른빛의 청매화가 피고, 노란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려 봄인가 하면 역시나 꽃샘추위가 찾아와 겨울 끝자락은 그리 호락호락 길을 내주지 않는다.

 4월, 따사로운 햇살에 개나리가 샛노란 색으로 꽃잎을 활짝 열어 도로변과 공원을 물들이며 드디어 진정한 봄이 왔음을 알린다. 낮은 곳에서 개화가 시작되어 산에 이르기까지 개나리꽃이 활짝 피게 되면 봄은 절대로 뒤로 밀릴 수 없는 막강한 힘을 갖는다.

 눈이 가는 곳마다 벚꽃, 조팝꽃도 화려하게 장식을 하고, 특히 백목련은 잎보다 먼저 백색의 큰 꽃송이를 가득 매달아 가지가 버틸 수 있으려나 싶다. 또 자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를 뿜어대고, 진달래가 동산마다 핑크빛으로 물들어 눈이 닿는 곳마다 꽃의 향연이 펼쳐져 마음이 덩달아 화사해진다.


 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요즈음 아무리 피곤해도 집 앞 공원을 걷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보는 것 만 같아 퇴근을 하고 급한 마음에 곧바로 공원으로 향했다. 발걸음도 가볍게 설레는 맘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정작 처음으로 맞닥뜨린 모습은 개나리가 모두 같은 키로 전지 된 상태로 꽃을 달고 있는 모습이었다. 옴짝달싹 못하게 촘촘히 심어 놓아서 몸을 비틀 수도 없을 텐데 가지까지 싹둑 자르니 빽빽한 가지들 속에서 숨이나 쉬어지겠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개나리가 이렇게 외치고 있는 듯했다.

 "무지막지한 가위가 들어오더니 내 팔을 싹둑 자르고 지나갔습니다. 이제 난 바람이 불어도 이곳저곳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저 앞과 옆, 뒤로 꽉꽉 채워진 친구들의 몸과 몸이 차렷 자세가 된 채 꼼짝할 수 없습니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뒤꿈치를 들 수도 없고 그저 앞의 친구와 맞닿아 숨소리만 듣습니다. 저 넘어 강도 보고 싶고, 조잘조잘 대는 어린아이들의 눈길도 받고 싶고, 내 옆에 와서 인생 샷을 찍는 사람들의 한컷에 들어가고도 싶지만 그 누구도 꿈이 잘린 내 옆에서 관심을 주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난해 키가 훌쩍 자라 올해엔 저 강 건너 마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내 꿈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개나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낭창낭창 휘어지는 줄기를 자기 마음대로 뻗으며 넓은 세상 구경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비록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수는 없어도 바람이 오른쪽에서 불어올 때는 이웃에 사는 조팝나무가 하얗게 꽃 피운 것을 보고, 저 멀리 벚나무의 화사함도 느끼고 싶을 것이고,  바람이 왼쪽에서 불어올 때는 상큼한 향을 내뿜는 수수꽃다리와 자목련도 보고 싶었을지 모른다.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으니 이제부터 흙이 있는 곳이라면 풀들이 땅을 뒤덮을 것이다. 공원을 관리하는 입장에선 풀들과의 전쟁이 다가올 것이다. 내 기억으론 예전에는 꽃들을 심어놓은 곳에 풀이 나면 약을 치거나 직접 뽑아서 제거한 것 같은데 근래에 들어서는 공원마다 시시때때로 예초기를 든 사람들이 투입되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벌초하듯 풀들을 제거해 버린다.

 풀이 이기느냐 사람이 이기느냐의 전쟁에서 풀들은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 원래 크기의 키만큼 자라기도 전에 잘려나간다. 위기의식을 가진 풀들은 종족을 번식시키는데 키보다는 꽃을 선택해 땅에서 줄기를 5센티도 안 올리고 급하게 작은 키로 꽃을 피우느라 정신이 없다.

 개여뀌도 닭의장풀도 본인이 타고난 특성만큼 키를 키우지 못하고 급한 마음에 작은 키로 꽃을 피웠다. 더 높게 자라 꽃을 피웠다면 개나리와 마찬가지로 바람에 줄기를 맡기고 이리저리 나부끼며 이웃의 꽃들도 구경하고 대화도 하며 여유 있게 자라 곤충을 더욱 쉽게 불러 수정을 했을 터이다.

 


 두메산골에서 나고 자라며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면서 미래에 대한 꿈을 꾸지 못했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이게 마련인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동화책 한 권을 구경하지 못하고 자랐다. 그러다가 서울에서 농촌 봉사활동 나왔던 대학생들이 일기를 써오라는 숙제를 냈고, 농촌봉사활동을 나와 준 대학생들에게 엄청 고맙다는 내용을 엄마가 불러주는 대로 써서 제출한 일기로 상을 타게 되었다. 그래서 상품으로 책 한 권을 받았는데 가난한 사람이 토끼를 길러 저축을 해서 돈을 모았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1980년대 중고생들은 과외를 쉽게 받을 수 없었고 학원도 거의 없어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아  '한샘국어' '성문영어' '수학정석' 등의 참고서가 필독서가 되던 시절이었다. 참고서를 사서 오롯이 혼자 공부를 해야 했는데 '수학 정석'을 사서 몇 장을 넘기고는 도무지 진척이 되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흥미를 전혀 갖지 못했던 수학이 없었다면 조금은 공부에 흥미를 느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 보곤 했었다.

  줄기를 5미터까지 길게 뻗어 꿈을 키울 수 있었던 개나리의 줄기를 잘라 버린 것이 그 당시의 내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때 나의 특성을 캐치하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 주변에 있어 재능을 키워주었다면 지금 내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핑계같지만 잠깐 해본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그렇게 소중한 것인 줄 몰랐다. 사람에게 꿈이 있다는 것은 살고자 함이고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것을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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