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연대기] - ②
스타크래프트와 2000년대의 e스포츠라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 스타크래프트의 황제, 'BoxeR' 임요환. 임요환은 1.5세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한국 e스포츠의 아이콘이었다. 비록 스타크래프트의 몰락과 e스포츠 산업의 성장으로 과거의 인물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e스포츠의 역사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임요환은 스타크래프트가 한국에 출시하자마자 스타크래프트에 발을 들였다. 임요환은 리그가 방송에 나오기 시작한 1999년, e스포츠 무대에 등장했다. 임요환은 프로 데뷔 전까지는 스타크래프트에 존재하는 테란, 프로토스, 저그 세 종족 중 프로토스를 주 종족으로 했다. 하지만 프로 데뷔 직전에 프로토스가 너프를, 테란은 큰 버프를 받자 테란으로 종족을 변경하고 데뷔했다.
임요환은 온게임넷과 더불어 게임TV, MBC GAME 등의 게임 방송국과 온, 오프라인 대회가 활발하게 주최되던 2000년대 초반부터 명성을 높여갔다. 그는 당시 다른 프로게이머들에 비해 독보적인 실력과 대회 성적으로 e스포츠계에서 'SSamjang' 이기석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직후 임요환은 각종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게임을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도 본격적으로 임요환의 존재가 알려지고 있었다.
2001년은 임요환의 진정한 전성기였다. 2001년에만 국내에서 3개의 대회를 우승했다. 이어진 2001 WCG(World Cyber Games) 스타크래프트 종목 국가대표 선발전을 10전 전승으로 통과, 본대회에서도 10전 전승으로 우승을 기록했다. 당시 임요환을 이길 수 있는 선수는 전 세계에 아무도 없었다. 임요환은 2002년에도 KPGA(Korea Pro Gamer Association) 투어 1차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최초로 당시 양대 리그 우승자가 됐다. 2002 WCG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스타크래프트 유일한 2 연속 우승자로 남았다.
하지만 2001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에서는 'GARIMTO' 김동수에게 패배하며 우승 신화는 깨졌고, 'YellOw' 홍진호와 'NaDa' 이윤열 등 당시 신예 프로게이머들과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게 된다. 임요환이 이들과 경쟁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임요환은 이들보다 0.5세대 정도 앞선 선수이기 때문이다. 임요환은 그럼에도 2003년 중반까지는 최정상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리그 전승 행진을 펼치며 아직 건재한 면모를 보였고, 각 대회에서 4강 및 결승에는 계속 진출하며 경쟁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2003년 말부터 임요환은 휘청거렸다. 질레트 스타리그 2004 본선에 진출 실패하며 스타리그 연속 진출 기록이 9 연속 진출로 마무리되었고, 2004년에는 양대 리그 모두 진출하지 못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EVER 스타리그 2004에서 기량을 회복했다. 4강에서 홍진호와의 그 유명한 라이벌전 '임진록'에서 승리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 접전 끝에 최연성에게 패배했지만, 임요환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대회였다.
So1 스타리그 2005에서도 임요환은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4강 전에서 'PuSan' 박지호를 상대로 패패승승승 대역전승을 기록한 경기는 아직까지도 e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역전승 중 하나로 기억된다. 하지만 결국 결승에서 또 한 번 무릎을 꿇으며 임요환의 마지막 전성기를 마무리한다. 이후 임요환은 군 복무를 위해 2006년 공군 ACE에 입단한다.
임요환은 전역 후에도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활동을 이어갔지만, 이미 떨어진 기량과 신세대들의 등장으로 큰 성과를 받지는 못했다. 그는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로 전향을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뚜렷한 족적은 남기지 못했고, 결국 2012년 코치직으로 전환하며 사실상 프로게이머로서 은퇴했다.
한편, 임요환은 뛰어난 두뇌를 활용하여 2013년부터 현재까지 프로 포커 플레이어로 활동하고 있다. 나름 괜찮은 실력을 보여주며 총 상금 595,005불을 기록 중이다.
모두가 박수칠 때 아름답게 마무리된 임요환의 전설은 아니지만, 임요환이 e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콘 중 하나인 이유는 따로 있다. 임요환은 한국의 e스포츠 인식을 바꾸고 e스포츠가 '팀' 문화로 자리 잡아 현재의 파이를 가지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임요환은 우선 e스포츠 선수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임요환이 신성처럼 등장할 때, 기성세대에게 프로게이머는 '양아치'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당시 큰 키와 훈훈한 외모에 실력까지 겸비한 임요환은 그 인식을 바꿔놓았다. 스타크래프트 시장에 여성 팬이 늘어난 것도 임요환의 등장과 함께였다.
임요환의 이러한 이미지 덕분에 방송사들도 프로게이머를 하나의 '스타'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프로게이머들도 스스로 외모 관리를 시작했다. 임요환은 <아침 마당>, <출발 드림팀> 등 다수 방송에도 출연했다. 게다가 그는 2003년 '참여 정부 문화 산업 정책 비전 보고'에 초청받아, 프로게이머 최초로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유니폼이 그 어떤 정장보다 나를 훨씬 더 잘 표현해 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정장이 아닌 유니폼을 입고 청와대를 찾았다.
이처럼 임요환은 프로게이머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으며, 기업들을 e스포츠 시장에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아무런 스폰서 없이 2002 WCG에서 우승했으며, 동양 오리온의 스폰서를 유치해냈다. 하지만 임요환은 만족하지 않았다. 임요환은 개인 스폰서를 넘어 '팀'을 후원하는 대기업이 있어야만 e스포츠와 프로게이머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임요환은 개인 스폰서를 고집하던 동양 오리온과 계약을 파기하고, 스폰서 없이 '4U'라는 팀을 만들었다. 당시 4U는 사실상 임요환의 사비로 운영되었으며, 제대로 된 유니폼도 없었고, 차 수리비가 없어 대중교통을 타고 경기장에 나서기도 했다. 숙소도 단칸방이었으며 밥 먹을 돈도 부족했다고 한다. 하지만 임요환은 포기하지 않았다. 4U의 열약한 환경에서도 소속 선수들은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고, 임요환과 4U는 꾸준히 팀을 창단할 대기업을 찾아다녔다.
임요환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SK텔레콤이 4U를 인수하며 임요환과 함께 SK텔레콤 'T1'을 창단한 것이다. 이는 대기업이 e스포츠에 직접 참여한 첫 사례였으며, 프로 리그와 e스포츠 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사건이었다. 당시 SK텔레콤의 실무자는 SK텔레콤 고위 관계자에게 "임요환은 한국의 허재 정도를 넘어 NBA의 마이클 조던이다"라는 말을 하며 결재 서류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임요환은 현재 T1에서 스트리머로도 활약하며 후배 프로게이머들과 활발한 교류를 이어나가고 있다. e스포츠의 전설이자 황제, 임요환은 앞으로도 e스포츠를 위해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