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H 0.35
어쩌면 난임은 예견된 일이었다. 몇 년 전, 제주에서 만 2년 정도 혼자 살았었는데 섬 생활이 지치기도 하고 질병이 생겨 급하게 서울로 올라왔었다. 그 당시 병명은 자궁내막증. 발병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스트레스가 심하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내가 개복치만큼 예민한 사람이란 걸 몰랐다. 심지어 예민하다고 받아들인 것도 최근이다.
제주에서 수술할 수도 있었지만 몸에 칼을 대는 일이고 여성으로서 중요한 수술해야 했기에 고향인 서울로 돌아왔다. 모로 가도 서울이라고 분명 내게 더 나은 방법을 제안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혼자 끙끙거리면서 회복하자니 너무너무 서러웠다. 독립이란 것이 이렇게 외로운 건가. 섬에서 독립을 해서 그런가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멀었다. 비행기 덕분에 타 지역에 비해 이동시간이 많이 단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비행기가 이륙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급한 일로 새벽이라도 가야 하는데 비행기나 배가 아니면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섬에 산다는 것은 꽤나 큰 단절이었다. 그래서 가족들 품에서 편안히 어리광 부리며 회복하고 싶었다. 물론 서울로 왔기 때문에 훗날 남편을 만날 수도 있었고.
사촌언니가 알아봐 준 아산병원 교수는 감정 없이 병증을 가지고만 얘기하는 사람이었다. 상급병원 교수 대부분이 무미건조한 느낌이긴 한데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려면 감정에 얽매여서는 안 되겠지. 오히려 담백하게 얘기해서 내 병증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효과가 있었다.
복강경으로 왼쪽 난소에 있던 내막을 제거해야 하는 수술인데 유착 부위가 넓으면 아예 난소를 절제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소리를 하시다니요.'
겁이 났지만 어차피 해야 하는 수술이었다. 알겠다고 했지만 슬쩍 눈물이 차올랐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분명 다음 번은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
수술은 잘 끝났고 난소는 20% 정도 남긴 상태라고 했다. 난소와 내막이 엉겨 붙은 부위를 세심하게 잘라낼 수는 없지만 최대한 많이 살려냈다고 했다. 경과가 좋으니 지켜보자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장기 일부를 떼어냈다는 것이 참 서글프더라. 못된 사람에게 내 소중한 것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누굴 탓할 수도 없어 결국 내 잘못이지 라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저는 왜 이런 병에 걸렸을까요, 선생님?’
‘이 병증의 원인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어요. 스트레스가 심하면 생기기도 하고 여성의 출산 시기가 점점 늦어져서 생길 수도 있습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거죠.’
퇴원하면서 담당 교수는 출산할 생각이 있으면 결혼하자마자 임신을 하라고 했다. 그게 좋을 거라고.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몸소 깨우쳤다. 자연의 섭리를 거슬렀다는 말이 우스웠는데 내 몸은 자연 그대로였다. 자연은 친숙했지만 가차 없었다.
난임 병원 진료실, 응급 상태에 빠진 우리 둘. 내 씁쓸함이 주마등처럼 스치자 앉은자리에서 울고 싶었지만 멋없는 것 같아 담담하게 눈만 깜빡였다.
'그럼, 저는 어쩌죠 선생님?'
내 마음 소리가 들렸는지 담당 선생님은 어느 누구에게나 여러 번 얘기했을 말투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옛날 담당 교수보다 상냥한 말투였을 뿐 담백하게 병증을 얘기하는 건 똑같았다.
‘그래 나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어? 아예 가망이 없다고 하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지.’
우리는 바로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기로 하였다. 우리에게 치명적인 것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늦을수록 나는 자연의 섭리대로 노화가 진행될 테니까. 난소나이검사(AMH)에서 AMH 0.35라는 결과는 정말 처참했다. 내 나이에서는 2.0 ~ 3.0 사이의 값이 나와야 하는데 1.0도 나오지 않은 나는 이미 40대였다. 다른 장기들과 내 세포가 젊을 때 빨리 시도를 하는 것이 임신 확률이 높을 것이다. 난 아직 청춘이란 말이다!
시험관 아기 시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몇 가지 검사를 했다. 병원에서는 본격적인 시술에 들어가기 전 난임시술 지원금에 대해 알아보고 지원금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직 이 시술이 와닿지 않아서 알겠다고 하고 병원에서 나왔다.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나는 얼떨떨했다.
70점은 될 줄 알았는데 10점이라니.
인생 쉽지 않네.
여보, 우리... 잘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