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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Sep 06. 2024

02. 우리는 이 상태를 응급이라고 말합니다

나의 고민에서 우리의 고민으로

내가 결혼한다고 하였을 때 나의 지인들은 깜짝 놀랐었다. 천방지축 같은 내가 생각보다 빨리 결혼한다는 말에 나도 일부 수긍하는 바다. 지인 대부분은 축하 인사와 함께 나를 데리고 가준 남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내 입장에서는 억울했지만 그에게 무척이나 감사하고 있다.


30년 이상을 다르게 살아온 남녀가 한집에 사는 것치곤 큰 소리 없이 잘 지내었다. 일방적으로 내가 심술을 부리긴 했지만 남편은 한 번도 내게 화를 낸 적이 없었고 이해와 노력으로 나와 사는 법을 터득해 갔다. 신혼 초에 한 번은 그에게 크게 잔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같은 잔소리가 반복이 되자 언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 잔소리꾼이 되는 건 아닌지 내적갈등이 심해지다 보니 짜증이 났었다. 한참을 풀이 죽은 상태에서 얘기를 듣던 남편이 차분하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내가 많이 부족하게 느껴지겠지만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노력할게. 대신에 말할 때 예쁘게 말해주면 몇 번을 들어도 짜증 안 내고 하라는 대로 할게.”


도대체 예쁘게 말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걸까? 가족한테도 예쁘게 말한 적이 없는데 꽤나 당혹스러운 부탁이자 선전포고였다. 이 ‘예쁘게 말하기’가 없었다면 우리는 결혼 일주일 째부터 꽤나 싸웠을 것이다. 성내다가도 예쁘게 말하기가 머릿속에 맴맴 돌아서 큰 숨을 내쉬고 말하게 되었으니까. 같이 화내고 짜증을 부렸어도 됐을 텐데 이 사람은 나와 잘 살아가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다. 남편의 배려에 나도 그에게 좋은 아내가 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이상적인 결혼 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가 이렇게 좋아도 되나?



의미 있는 날마다 그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연애사업이 잘 풀리지 않던 시절,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사주풀이 하시는 분이 말씀하시는데 내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가 안 가는 말을 했었다.


'남자복은 없는데 남편복은 있어!'

'아니, 남자복이 없어서 남자를 못 만나는데 어떻게 남편복이 있어요???'

'아휴! 그런 것이 있어! 나중에 봐봐.'


답답해서 갔는데 더 답답한 소리를 들으니 나의 운명은 어디로 흘러가나 싶었다. 혼자 살 팔자인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말이 이 말인가 보다.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의지해야 했고 서로의 부모이자 친구, 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같은 노력을 하는 반려자가 되기로 했다. 다른 생활권에서 살던 남녀가 한 집에 살며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험난하면서도 애틋한 여정이었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갈 준비를 시작했다.




결혼한 지 1년 반이 되자 아이를 갖기로 했다. 서른 넘어서 한 결혼이라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갖으라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특히나 의사가!) 결혼의 이유가 아이를 낳기 위한 것은 아니기에. 나와 함께 사는 사람과 육십 평생을 재밌게 살려고 한 결혼이었다. 연애 기간도 1년 반 밖에 되지 않아서 남편에 대해 모르는 것들도 많았고 결혼하고 나니 알게 되는 것들도 많았다. 남편이 싫어하는 음식이 물컹거리는 식감이라든지, 이유 모르게 툴툴대던 것이 잠투정이었다든지 연애할 때는 절대 몰랐던 것들이 덜할 때쯤 아이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자연주기 임신 시도를 3개월 정도 했지만 소식이 없었다. 먼저 아이를 낳은 친구가 최소 5개월 정도는 걸린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산전 검사를 해보라고 하였다. 기본적인 것조차 하지 않았던 나는 보건소에 산전검사를 신청하러 갔지만 이미 올해의 검사는 예약이 다 찼다고 하였다.


'저출산이라고 하더니 다들 열심히 준비중이네?'


보건소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검사가 가능했는데 기회를 놓쳐버렸다. 할 수 없이 동네에서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비싼 값에 검사를 하였다. 검사 결과는 며칠 뒤 문자로 발송되었다.


[ㅇㅇㅇ님 AMH 농도가 기준 범위 미만입니다.]


이때는 몰랐다. 간단한 내용의 심각성을.

병원에 전화해서 물어봤었어야 했다. 내 무지성에 대한 대가는 1년이 좀 안 되서 정기검진을 받으려고 다시 간 산부인과에서 알 수 있었다. 임신을 원하면서 아직도 병원에 안 갔었던 내가 답답했는지 담당 의사는 가볍게 다그쳤다. 그제서야 나는 내 상태를 알 수 있었다. 난소 나이가 내 나이보다 10살은 높게 나왔다는 걸.


조바심이 나는 마음을 부여잡고 난임 병원을 찾아봤다. 여러 군데 있었지만 자주 내원할 것을 염두하고 집과 회사에서 가기 편한 곳 그리고 유명한 곳으로 선택했다. 서둘러 난임 병원에 초진을 예약했다. 남편과 시간을 맞추어 함께 병원을 갔고 이전에 받았던 산전검사지를 제출했다. 서류를 검토하신 난임 병원 담당 선생님은 담백하면서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얘기했다.


“우리는 이 상태를 응급이라고 말합니다.”


이전까지의 고민은 고민도 아니었음을, 인생 최대의 고민이 새로 쓰였다.



어른이 되면 고민이 없을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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