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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Aug 30. 2024

01. 저와 홀딩하시겠습니까?

원, 투, 쓰리-, 파이브, 식스, 세븐-

5호선과 6호선 환승 구간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줄을 섰다. 퇴근 시간대라 사람들로 붐볐고 정신없이 서로를 스쳐 지나는 순간이었다.


“나 너무 우울해.”


입 밖으로 튀어나온 우울은 시야를 뿌옇게 만들었고 소리는 물속에 가라앉듯 먹먹했다. 그래도 나는 이 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걸어가야만 했다. 이 자리에서 멈추면 진짜 멈출 것 같았다. 어서 집에 가자.




올해로 결혼 3년 차. 나는 내적 이상형을 만나 아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즐기는 중이다. 나도 이런 행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에게 연애는 고민 중의 고민이었다. 외사랑도 많았고 연애도 참 어려웠었다. 만나는 상대마다 외로움이 많은 사람들이었고 자신들의 틀 안에 나를 끼우려고 했었다. 그 때문에 만남도 길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러니 내게 문제가 있나 싶었다. 20대에는 취업, 연애가 참 고민이었는데 30대가 되어서도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가 나오나 싶기도 하고. 자책은 금물이라며 더 나은 나 자신을 만들기 위해 살사를 배웠다.


‘몸치, 박치인 내가 춤이라니? 더구나 살사!’


살사의 시작은 대학동기의 꿈을 위해서였다. 미래의 남편과 쿠바 해변에서 살사를 추고 싶다며 같이 배우게 된 것인데 그녀는 남자친구와 함께였고 나는 혼자 살사 동호회에 들어갔다. 홍대 어느 연습실에서 수업이 끝나면 다른 동호회 사람들과 또는 살사인들이 모이는 바(Bar)로 자리를 옮겼다.

어두운 조명 아래 살사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추는 사람들. 주말 저녁에 술자리 대신 춤자리에서 흥을 푸는 사람들이었다. 그곳은 초급자들부터 고수까지 다양한 레벨의 사람들이 소셜 댄스를 추는 곳이었다. 말 그대로 사교와 오락을 목적으로 춤을 추며 술도 가볍게 하는 건전한 판이었다. 이때 만난 것이 지금의 남편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레벨이 높아서 같은 동호회 사람이어도 수업 장소가 달랐다. 바(Bar)에 가서 소셜댄스를 춰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강사들이 소셜댄스를 춰야만 실력이 늘어난다는 부추김에 반 강제로 가야 했다. 초보였던 나는 배운 것도 익히기 빠듯했기에 제자리에서 베이직 스텝만 밟았다.


'원, 투, 쓰리-, 파이브, 식스, 세븐-.'


살사는 총 8박자 안에서 움직이는데 4번째와 8번째 박자에서는 스텝을 밟지 않는다. 하지만 스텝이 없을 뿐 박자는 있기에 한 박자만큼은 쉬고 다음 스텝을 밟아야 한다. 박치인 나는 이 한 박자 쉬는 것이 어려워 춤을 출 때 상대의 발을 밟거나 버벅거렸다. 리듬과 내 몸의 밀당에서 항상 내가 지게 되니 전의를 상실하며 동기들과 같이 벽의 꽃(Wallflower)처럼 벽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쳐다만 봤다. 내 대학동기도 나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여서 씨익 웃었다.



이곳에서는 본명 대신 별명을 쓰고 있어서 현실에서의 나와 춤판에서 나를 다르게 설정할 수 있었다. 기본 옵션이야 같겠다만 현실에서 움츠리고 있었다면 춤판에서는 넣어두었던 흥과 기쁨을 마음껏 방출할 수 있었다. 이 당시에 나는 삶이 재미없고 지루하기만 했던 터라 잘 웃지도 않았다. 그런데 춤이 뭐라고 사람을 크게 웃게 했다.


“저와 홀딩하시겠습니까?”


살짝 곱슬곱슬한 머리에 뿔테안경을 낀 남자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웃으니 토실한 쿼카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사진: Unsplash의Scott Broome


살사에서 홀딩은 살세로(남자)와 살세라(여자)가 서로의 손을 맞잡은 상태인데 홀딩을 하기 전에 상대에게 손을 내밀며 춤을 신청하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다. ‘Shell we (dance)?’ 같은 춤의 신청 인사랄까. 보통 살세로가 먼저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사 고수는 아닌 것 같았지만 이 사람은 날 편안하게 리드하며 호흡을 맞춰주었다. 그의 밀고 당기는 춤의 텐션은 나에게 최적화된 사람 같았다. 이 사람과 출 때면 긴장했던 몸이 편안했고 자신감이 생겼다. 매주마다 연습하기 좋은 상대였지만 내게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이었다.


살사 동호회는 토요일마다 수업이 있었는데 인사와 연습 몇 번 하더니 2020년 2월 코로나가 발병했다. 살사를 배운 지 한 달 만에 동호회를 못 나가게 되었고 살사 수업은 중단되었다. 오래간만에 재밌는 취미를 발견했는데 참 아쉬웠다.

코로나는 점점 심각해지고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에 이어 집합금지 명령으로 활동이 제재되었다. 동호회에서는 잠잠해지면 곧 재개하겠다는 연락이 왔지만 전 세계에 닥친 재앙이 수그러들리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가 한창인 4월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SNS에서 어떻게 나를 알고 찾아냈는지 아직도 알려주지 않지만 우리의 인연은 SNS 메시지로 다시 시작되었다. 그는 잘 지냈냐는 인사와 함께 곧 수업도 재개할 것 같으니 굳어버린 몸을 풀 겸 같이 연습하자고 하였다. 살사에 대한 갈망이 식지 않았기에 흔쾌히 수락을 하였는데 둘이서만 연습할 줄은 몰랐다. 당연히 동호회 사람들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숙했지 뭐.


첫 연습하기로 한 당일, 두 달 만에 만난 그는 내가 알던 곱슬머리 뿔테 총각이 아니었다. 머리는 깔끔하게 정리하고 안경을 벗은 모습이었고 생각보다 괜찮은 차림새였다. 그에 비해 나는 오전에 미용실에서 짧은 단발로 자르고 펌까지 하여 파마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심지어 청바지에 청자켓, 겨울 조끼 그리고 배낭까지 매고 있어 자동차 정비사라 봐도 될 법한 차림이었다. 어차피 살사 연습으로 만나는 건데 꾸미고 만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훈훈하게 정리된 상대를 보니 '아차...' 싶었다. 남편은 그날의 나를 회상하면 자신에게 정말 관심이 없었구나 싶었다고 한다. 정비사 같았다고 한 것도 그가 말한 것이다. 순둥하게 생긴 쿼카 같은 모습이 있긴 했지만 그는 살사의 템포로 빠르게 직진하며 다가왔다. 무슨 자신감으로 낯짝 두껍게 다가오나 싶었다.


두 번째 연습에서 그는 자신감 화수분을 허리에 끼고 온 사람처럼 눈을 반짝였다. 나는 치마라는 것을 입고 연습에 임했다. 연습 후 이자카야에서 술 한 잔 기울이다 그는 우리의 밝은 미래를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취하기 전에 진심을 말하고 싶다는데 나를 얼마나 봤다고 이런 고백을 하나 싶었지만 이틀 뒤 못 이기는 척 넘어갔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 반, 호기심 반으로 만났다. 덕분에 이성에게 사랑받는 것과 존중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본인에게 맞추지 말고 있는 그대로인 ‘너의 모습’으로 다가오라고 하였다.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한 유일한 남자였다.


홀딩 몇 번 하고 오래전부터 앓아온 고민을 끝낼 수 있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홀딩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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