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가장 행복했던 여행
1.
임산부임에도, 그리고 편히 쉬어도 된다는 남편의 말에도 불구하고 돈벌이가 없어서 괜히 혼자 마음고생을 했던 나는 사실 떠나기 전에는 이 태교여행이 탐탁치 않았다. 맞벌이가 아닌 이상 모을 수 있을 때 바짝 모아야 된다는 생각과 축복이의 출산준비로 돈 들어가는 데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비용을 줄이지 않으면 과연 우리 가족이 매달 돈을 '모으며'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그래서 그냥 여행 취소하고 집에 있으면 안되겠냐고 남편에게 한두번 넌지시 얘기했다. 여기서 내가 남편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를 알 수 있는데, 남편은 나의 불안함을 그냥 괜찮다는 말로만 넘어가지 않는다. 나름대로 정리해둔 금액과 돈의 출처 등을 상세하게 보여주며 여행경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코시국이라 해외 나가기도 어려운데 속초는 꼭 가게 해주겠다는 스윗한 말도 덧붙였다. 이 호텔이 아주 인기있는 호텔이라며. 난 이런 마음이 늘 감사하다.
2.
자주 싸우지 않는 우리는 여행을 할 때는 더더욱 싸움이 없는 편이다. 드라이브를 할 때면 대화가 더 많아지는 데다가 새로운 장소에 놀러간다는 설렘이 있기 때문이다. 먹는걸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행복이 한 10배는 커진 것 같았다.
도착한 호텔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고, 넓은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100번은 든 것 같다. 한숨 자고 일어나 시장에서 맛있다는 음식은 싹 다 쓸어왔다. 시장은 거의 문 닫을때가 되었지만 가게를 닫으려고 하셨다가 볼록한 내 배를 보고 다시 가스불을 켜주신 상인 분들이 많다. 하마터면 못 먹을 뻔 했는데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딸이냐며, 모든걸 다 가진거나 다름없다는 말은 덤으로 :)
술과 안주에 진심인 우리 남편은 음주의 횟수는 많지 않지만 한 번 먹을때는 제대로 먹어야 하는 타입이다. 편의점에서 막걸리 종류 몇가지를 두고 30분 가량 고민한 끝에 지역 막걸리를 골랐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특히 음식과 아주 잘 어울렸다고 한다. 다음번에는 꼭 나도 같이 먹어보고 싶다.
속초의 낮도 정말 좋았다. 좋은 사람과 함께여서 그랬을까 순간순간이 모두 다 행복했다. 특히 호텔에선 꼭 헬스로 아침을 시작하는 남편이 없는 동안 편안하게 즐기는 따뜻한 목욕도 좋았다. 그리고 조식도 꼭 필요한 음식들로만 맛있게 차려져있어서 만족도 100%였다. 또 인피니티 풀도 너무 좋은 기억이었는데 아가를 뱃속에 데리고 다니는 입장에서 물속에 들어가니 물이 아가를 받쳐주어 무릎과 발목이 가벼워졌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에 몇 시간은 물에서 나오지 못했다. 출산 전까지 수영을 해볼까, 생각하게 했던 좋은 기억이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바닷가 주변에 살았던 나는 예전에 비해 해산물을 먹는 양이 부족해 이번 여행에서 꼭 대게를 먹고 싶었다. 그래서 맛좋은 가게를 추천까지 받아서 저녁에 먹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었는데 낮에 너무 신나게 노는 바람에 남편도 나도 깊은 잠에 들어 늦은 밤 깨버리고 만 것. 다음 날은 집으로 출발해야해서 대게를 먹을 시간이 없었던 터라 엄청나게 속상했는데 임신을 해서 그런지 의지와는 다르게 눈물이 펑펑 났다. 남편은 부랴부랴 나를 데리고 나가 문 연 대게집을 찾아 사정사정해서 결국 대게 한 마리를 사는데 성공했다. 손질도 안되어 있었고 게딱지볶음밥도 못 먹었지만 눈물 젖은 대게가 그렇게 맛있었다.
3.
좋은 호텔방과 속초의 기운으로 몸 속에 있는 피곤한 기운을 다 뺀 것 같다던 남편의 말에 나도 동의한다. 모처럼만에 모든 걸 던져두고 진짜 깊은 잠을 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올 쯤엔 남편의 피부에서 광이 나는 걸 목격했다. 나도 행복했지만 남편도 맘 편히 행복하게 즐겼던 여행이었나보다.
우리는 결혼하고 제주도에도, 인천에도 갔었지만 이번만큼 기억에 남는 여행은 처음이다. 특히 제주도는 비싼 호텔에 비싼 음식을 먹으며 돈을 펑펑 썼던 여행인데도 속초 여행이 더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아마 속초의 기운이 우리와 잘 맞는가보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태교여행을 국내로 준비중이라면 꼭 속초도 고민해보시기를 추천드린다.